우리 집 여성들이 제사 직전 다 사라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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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집안에서, 한 집안의 남자들과 혼인했다는 이유로 만나 그 남자집안의 차례·제사 등 가사노동을 떠맡아 온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다.
'큰엄마의 미친봉고'의 백승환 감독도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하기로 한 뒤 "큰엄마 역할로 정영주 이외의 배우를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할 만큼 정영주가 돋보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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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해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연년세세(황정은)'에서 황정은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엄마', '첫째딸' 등으로 부르지 않고 그들을 이름 석자로만 표현했다. 주인공 1946년생 이순일은 어렸을 때 영문도 모른 채 '순자'라고 불렸다. 할머니, 고모, 이모, 어머니 등 호칭이 아닌 그들에게도 존재하던 이름을 찾아주는 소설이다.
[관련기사 : 그저 아이들이 잘살기 바랐던 순자씨 이야기]
설 명절이다. 코로나로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명절이니 큰어머님, 올케, 형님, 동서 등에게 안부를 묻게되는 날이다. 서로 다른 집안에서, 한 집안의 남자들과 혼인했다는 이유로 만나 그 남자집안의 차례·제사 등 가사노동을 떠맡아 온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다.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는 온라인상에서 한 누리꾼이 '큰엄마에게 납치당해 강릉에 갔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영화는 유씨 집안 제사상을 준비하는 그 집안 여성들이 큰엄마 이영희(정영주 분) 주도로 제사준비를 제쳐둔 채 차를 타고 도망치는 내용이다. 소위 가사노동자들의 '파업'이다. 그러자 누워만 있던 유씨 집안 남성들의 좌충우돌이 시작한다. 컵라면과 술로 하루를 버티고, '유씨 집안' '가족'을 강조해왔던 이들이 이기적인 민낯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제사를 앞두고 도망쳤을지 이해될 만한 일들이 벌어진다.
영화의 메시지를 농축한 부분은 유씨 집안 여성들이 불을 피워놓고 서로의 이름을 서로 묻고 답하는 장면이다.
큰엄마 이영희는 작은 어머니 병문안을 갔는데 진단서에 그의 이름을 적지 못했다. 서로 이름조차 모르고 오랜세월 살아왔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에 작은 어머니는 영희에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도 이름을 잊지 말고 살 것'을 당부했고, 자신의 이름을 묻는 영희에게 '영희 옆에는 철수가 있으니 철수로 하자'고 답한다.
이에 유씨 집안 여성들이 제사를 파업하고 모여 한 일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것이다. 큰엄마 이영희의 다음 대사도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다.
“OECD 가입국 여성들의 일주일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31시간, 대한민국은 26시간, 나는 43시간, 시부모님 병수발 7년은 제외. 현재 시급 기준으로 월 평균 180에서 230만원, 연봉으로 따지면 2200만원에서 2800만원까지 받아야 돼.”
이영희는 파업의 대가로 남편에게 문중 땅을 판 값 2000만원을 받았지만 이는 기존 무급이었던 가사노동을 시급으로 환산한 1년 연봉도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림자노동으로 이뤄지는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GDP의 21~33%라는 통계도 있다. 360조원이 넘는 가치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고임금의 남성노동자들이 나타났다. 대신 여성들이 임금노동자의 재생산을 돕는 '성별분업'으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무급의 가사노동을 정당화해왔다. 이 영화는 이러한 불평등한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연출이 다소 엉성하고 한국 코미디 영화 특유의 유치함이 있지만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배우 정영주의 카리스마다. 뮤지컬배우로 유명한 정영주가 유씨 집안의 여성들을 데리고 '제사파업'에 나선 뒤 남편의 카드로 옷을 구매해 새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는 '멋있다'는 감탄사가 어울린다.
최근 정영주는 출연진 전원을 여성으로 구성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제작자로 나설 만큼 '여배우'들이 '배우'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큰엄마의 미친봉고'의 백승환 감독도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하기로 한 뒤 “큰엄마 역할로 정영주 이외의 배우를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할 만큼 정영주가 돋보이는 영화다. 특히 영화 중간 정영주가 '오르막길'을 부르는 장면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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