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3選 건배사 했나,안 했나'..나주 술판사건, 진실 공방
참석자들 "3선 출마위한 술판 아니고, 건배사 제안도 안 해"
일각 "사실이라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선거중립 의무 위반"
(시사저널=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건배사'란 회식 또는 모임에서 건배 제의할 때 쓰는 일종의 축사다. 가장 무난한 건배 구호가 '~을 위하여'다. 소위 1세대 버전 건배사로 통한다. 건배사는 '~을'이라는 선창과 '위하여'라는 후창으로 이뤄진다. 건배사도 나름대로 철학이 있다고 한다. 한때는 회사, 국가, 조직, 보스에 대한 충성심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감반의 건배사인 '조국을 위하여'는 과잉 충성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기도 했다. 공직자들이 정치권 행사에서 덕담쯤으로 쉽게 여겼다가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논란에 휘말려 호된 질책을 당하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것이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경우로, 수년 전 새누리당 연찬회에 한 "총선~필승" 건배사가 문제가 됐다. 가장 최근에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2020년 9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여당 20년 집권론을 언급하며 건배사로 "가자 20년, 대한민국 1등 국가"를 제안했다가 야당 측으로부터 해임 요청을 당하기도 했다. 국책은행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나주시장 3선 출마를 위한 '술판'이었나
전남 나주에서도 때 아닌 건배사 논란으로 지역사회가 시끄럽다. 최근 나주시 총무국장 등 시청 간부 공무원과 시의원 등이 술자리에서 강인규 나주시장의 '3선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외쳤다는 소문이 지역에 퍼지면서다. 참석자들이 강 시장 앞에서 '위하여'를 외치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의 3선 고지 달성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는 게 파다하게 퍼진 설(說)의 골자다. 강 시장은 6~7기 재선 단체장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를 강력 부인하고 있어 문제의 건배사를 '했나안했나'를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본지의 취재를 종합하면 나주시청 간부공무원과 시의원 등 4명은 지난 3일 저녁 나주 송월동 한 오리탕 식당에서 술자리를 겸한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저녁 6시 30분쯤 나주시 공직자 4명이 먼저 자리를 잡은 해당 술자리에는 시차를 두고 시의장 출신 박 아무개 농협조합장이 십전대보주(酒)를 가지고 참석한데 이어 강인규 시장도 끝물에 합류했다. 화기애애하게 상호간 덕담을 나눈 뒤 박 조합장이 외부 손님과의 선약을 이유로 먼저 자리를 뜨고, 곧이어 강 시장이 식당 문을 나섰으며, 나머지 참석자들은 오후 8시 40분경 식사 자리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식당에서 십전대보주에 곁들여 소주 3병을 마셨으며, 식사비 6만 2000원은 이날 모임을 제안한 김 아무개 시의원이 자신의 개인 카드로 결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뒤탈이 났다. 식사하던 중 이들의 모습을 홀에서 목격한 시민들은 "시장과 공직자들이 방역수칙을 위반해도 되느냐"고 항의했고, 강 시장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에서는 5인 이상 집합금지 위반 논란 등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이후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강인규 시장의 '3선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했는가에 초점이 이동하면서다. 이 건배사가 사실이라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담은 공직선거법 9조도 위반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또 공직선거법과는 별개로 '공무원은 특정 정당을 지지해선 안 된다'는 국가공무원법 위반 여부도 검토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3선 건배사' 진위 놓고 공직자 vs 여론 충돌
문제가 된 3선 건배사가 실제 행해졌는지, 그 진위에 대해선 서로 입장이 엇갈린다. 지역의 한 인터넷신문은 세간에 강 시장의 '3선 출마를 위한 술판'이라거나 '3선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외쳤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자 당사자들은 나머지 제기된 의혹은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유독 '3선 건배사'에 대해선 철통 방어막을 쳤다.
해당 나주시 간부와 시의원들은 9일 낸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입장문에서 일부 지역 언론에서 제기한 '3선을 위한 술판'이라거나 '3선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외쳤다는 보도는 '사실무근이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들은 "이날 식사 자리는 강인규 시장의 3선 출마를 위한 술판이 아니었다. 그리고 3선 건배사를 제안한 적이 없다"며 "해당 언론에 정정 보도를 요청한 상태"라고 펄쩍 뛰었다.
이와 관련 10일 낮 점심시간 때 시사저널을 만난 식당 주인 A(58·여)씨는 "'위하여'라는 건배사는 뚜렷하게 들렸지만 선창자가 외친 '3선을'이라는 구호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듣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씨의 말을 종합하면 건배사가 행해진 것은 맞지만 '3선을~'이라는 선창을 했는지 여부는 여건상 명확하게 인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나주 공직자들이 식사한 10~11호 방에서 홀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청취해본 결과 엿듣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는 한 청취가 쉽지 않았다. 이 식당은 내실과 홀로 구분돼 있었고, 일행은 식당의 내실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그날 홀에는 인근 스크린골프장에서 운동을 마친 6명의 손님이 두 테이블에 나눠 식사 중이었다. 주인과 그의 여동생은 교대로 카운터와 주방을 오갔다고 한다. 때마침 취재진이 찾은 이날도 내실과 손님 테이블, 계산대 간 거리나 손님 수 등에서 당시와 매우 엇비슷했다.
'위하여'만 남고 '3선'은 날아가…진실 안갯속
이처럼 건배사 성격을 판가름할 선창 '3선' 부분이 공백으로 남으면서 진실 규명은 더욱 안갯속에 빠져 든 모양새다. 당시 홀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손님들도 5인 이상 집합금지 위반에 대한 공직자의 태도를 문제삼았을 뿐 건배사 부분은 시비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들은 당연히 아니라고 발끈하고 나선 형국이다.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하더라도 처벌이 불보듯 뻔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라는 불구덩이에 스스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일을 할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내실에 설치된 CCTV도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수개월 전에 철거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사고는 발생했는데, 블랙박스는 없는 셈으로, 현재로선 진상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위법성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선창 부분을 '3선'으로 섣불리 단정해 채워 넣는 것 또한 무리수다. 이는 '나주발전' '시민 건강' '코로나 퇴치' 등 선거와 관련 없는 다양한 경우가 해당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건배사 하나 갖고 뭘 그렇게 요란스럽게 떠들 필요가 있느냐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건배사 때문에 문제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2014년 국회의원 재보선 당시 울산의 한 현직 구청장이 선거운동 기간 전에 사조직이 주최한 모임에 참석해 정치적인 이야기도 하고, 또 술자리에선 "단디"라는 건배사도 했다. 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제대로"라는 말로 '제대로 좀 밀어 달라'는 뜻이었는데.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들어가 8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또 2008년 제주도에선 김태환 당시 지사의 주민소환이 진행됐는데, 투표를 앞두고 한 도청 간부가 산악인 모임에서 "가지-말자"라는 건배사를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투표하러 가지 말자, 무산시키자'라는 의미가 담겼다는 이유에서다.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은 2015년 8월 새누리당 연찬회에 가서 이렇게 건배사를 했다. 정 장관이 "총선"했고 뒤에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필승"하고 따라서 하면서 문제가 됐다. 이처럼 덕담 차원을 넘는 의도성 건배사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와 공직선거법 9조 위반 여부가 뒤따른다.
"어떤 선거(3선)인지 언급했으면…공무원 중립의무 위반"
지금으로선 차선책으로 '3선 건배사'가 있었다는 '가정'을 전제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여부를 따져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반대의 경우 문제될 게 없어 따질 필요가 없어서다. 전문가들은 어떤 입장일까.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견해다. "일단 정치적으로 내지는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는 건배사 했다고, 완전히 법 위반으로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냐, 이 문제는 엄격성에서 좀 다르다. 법적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고의, 과실 여부를 따져야 한다. 그건 입증하기가 어렵고 본인들도 당연히 아니라고 할 테니까 이게 법적으로 따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발언이 사전 선거운동이었느냐 아니냐를 따져 보려면, 어떤 선거를 이야기한 것인지, 어떤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한 것인지, 당선시켜달라고 한 건지 낙선시켜달라고 한 건지, 누구에게 한 이야기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나주의 경우 '3선' 언급이 사실로 드러나면 사전선거 운동에 정확하게 해당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다른 전문가 황정근 변호사의 견해다. "공직선거법에 '선거운동'은 아니더라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할 수 없다는 게 있다. 그게 2014년에 새로 생긴 조문이다. 그걸 따져봐야 한다. 지위를 이용하는 것은 해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게 아주 추상적으로 규정돼 있는데 그것은 선례가 없다.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그러니까 '선거 결과'뿐 아니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지난 2014년 개정 공직선거법에 새로 들어갔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 선관위는 "지금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 사례를 가지고 미리 결과를 유추해 답변하기는 어렵다"며 "민원이 들어오면 조사하겠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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