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설 안부' 묻다 위구르 꺼내든 바이든..올림픽도 보이콧?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송영찬 2021. 2. 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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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한 월트 디즈니 영화 <뮬란>./ 사진=월트 디즈니 코리아


‘#보이콧뮬란(#BoycottMulan)’

지난해 9월 전세계 소셜미디어에는 이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월트 디즈니 영화 <뮬란>의 관람을 거부하자는 소셜미디어 운동입니다. 영화 공개 직후 이틀만에 구글에서 이 해시태그를 검색한 회수는 1900% 늘어납니다. 영화 보이콧 확산에 크리스틴 매카시 디즈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인정합니다.

<뮬란>은 1990년대 디즈니 최대 인기 애니메이션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디즈니는 2019년 애니메이션 실사화로 대흥행을 거둔 <알라딘>에 이어 지난해 <뮬란>도 실사화해 개봉합니다. 전세계의 큰 기대를 모았지만 흥행은 커녕 개봉 전부터 대대적인 보이콧에 직면합니다. 뮬란 역을 맡은 배우 유역비가 2019년 홍콩보안법 반대 시위 당시 홍콩 경찰 지지 선언을 한 것이 보이콧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보이콧을 확산시킨 것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를 표한다’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의회까지 “중국 당국과 협력해 촬영한 건 암묵적으로 대량 학살 가해자들에게 정당성을 준 것과 마찬가지”라며 문제제기를 하고 나섭니다. 

디즈니 영화 ‘뮬란’ 엔딩 크레딧 중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 공안당국에 감사를 표한 자막.

위구르인 "매일 밤 끌려가 집단 성폭행"

대대적인 영화 보이콧으로부터 다섯 달 뒤, 영국 BBC 방송이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보도를 내보냅니다. 신장 위구르자치구 내의 위구르족 ‘재교육’ 시설에서 수감된 여성들에 대한 집단 강간과 고문, 강제 피임 등이 자행돼 왔다는 폭로입니다. 

이 방송에 증인으로 나온 위구르 여성들은 끔찍한 폭로를 쏟아냅니다. 9개월간 수용시설에 감금됐다가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한 여성은 방송에서 “매일 밤 많은 여성이 끌려나가 정장 차림에 마스크를 쓴 중국인 남성들에게 강간당했고, 나도 세 차례 2,3명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다”고 털어놓습니다. 수감된 여성들에게 강제로 피임기구를 삽입하거나 ‘백신’이라 불리는 주사를 15일마다 맞으면서 불임 시술을 받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어록을 외우지 못하면 암기 실패 회수에 따라 구별된 색깔 옷을 입고 음식 공급 중단이나 구타와 같은 처벌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 신위안현의 위구르족 수용소./ 로이터연합뉴스

위구르족에 대한 당국의 강제 불임 시술 의혹은 이전부터 제기돼왔습니다. AP통신은 지난해 6월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 강제 임신중절과 불임 시술로 위구르족의 출생률이 급감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지역 호탄·카슈가르 시의 1000명당 출생률은 2010년 24.27명에서 2018년 8.17명으로 8년새 급감합니다. 위구르 전체를 놓고 봐도 같은 기간 14.85명에서 10.69명으로 중국 전체 평균(10.94명) 밑으로 내려갑니다.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BBC가 코로나19 관련 방송에서 이 문제를 정치와 연결지었다고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중국 정부 당국자는 “신장의 수용시설은 ‘감금 시설’이 아니라, 직업교육과 훈련 센터”라며 “중국 정부는 모든 소수 민족의 권익을 평등하게 보호하며, 특히 여성들의 권리 보호를 매우 중요시한다”고 밝혔습니다.

 당나라와 겨루던 유목민족

터키의 위구르족 주민들이 10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주재 중국 영사관 앞에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위구르족의 인구는 1100만명 내외로 추정됩니다. 이 중 100만명 이상이 수용소에 갇혀 중국 당국으로부터 이른바 ‘갱생 교육’을 받는다는 의혹이 2018년 제기됩니다. 의혹을 제기한 주체는 다름 아닌 유엔 인권위원회였습니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호주 등 22개국의 주제네바 대사들은 수용소 철폐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개서한까지 보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학대와 고문을 당했다는 위구르인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지만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위구르족은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중 가장 강력하게 분리·독립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위구르족은 원래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번성하던 유목민족입니다. 이들이 741년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세운 위구르 제국은 당나라와 오랜 시간 대립했습니다. 강성하던 위구르 제국에 당나라가 조공을 바쳤다는 설도 제기됩니다. 결국 키르기스족에 의해 멸망하지만 이후에도 코초 위구르국 등의 국가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위구르족을 ‘튀르크계’ 민족으로 구분합니다. 이 구분대로라면 위구르족은 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이나 터키 등과 친척뻘 되는 민족으로 한족과는 거리가 멉니다. 게다가 위구르족은 대부분 무슬림입니다. 공산국가인 중국이 사실상 금기시하는 종교를 가진 인구가 이 지역에만 1000만명이 넘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중국 정부로서는 위구르족의 민족·종교·역사 모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최근 위구르족이 독립 국가를 세운 것은 1944년이었습니다. 위구르족은 1944년 중국의 국·공 내전을 틈 타 반란을 일으켜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을 세웠습니다. 앞서 1933~37년 잠시 존속한 제1공화국을 잇는 두번째 민족국가입니다. 하지만 1949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고 대륙을 장악하며 병합되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됩니다. 2009년 지역의 최대도시인 우루무치에서 1000명 이상의 분리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납니다. 당국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사망자 수가 940명에 이른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국에서 1989년 톈안먼(천안문) 사태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난 시위입니다.

 바이든의 "中, 위구르 인권 남용"

지난 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 정부를 향해 중국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에 대한 더 큰 압력을 요구하는 위구르족 분리독립 운동 시위대 모습./ AFP연합뉴스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에 대한 국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통화에서 위구르 인권 문제를 거론합니다. 백악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바이든 대통령은 음력 설을 맞아 중국 국민들과 시 주석의 안녕과 행복을 빈다고 전했다”며 “중국 정부의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경제 관행, 홍콩 강력 탄압과 신장 지역의 인권 남용 등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를 전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위구르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인권 남용(human rights abuses)’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정상 간 첫 통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강도 높은 표현입니다. 특히 위구르 인권 문제가 상대국이 ‘내정 간섭’이라며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난 5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통화 내용보다도 강합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음력 새해를 맞이해 행복을 빈다는 뜻을 전했다”며 “미국이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을 포함해 인권과 민주적 가치에 대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양국 정상 간 첫 통화와 외교장관 간 첫 통화임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설 덕담이 무색할 정도의 강도높은 발언입니다.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고 가치로 놓고 대외 정책을 펼치겠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철학이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을 향해 “민주주의적인 구석이 없다”며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수용소 내 집단강간을 폭로한 BBC의 보도에 대해 “직접적인 증언을 포함한 보고서에 깊은 불안을 느낀다”며 “이러한 잔학행위는 양심에 충격을 주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미국은 앞으로도 중국에 위구르 인권 문제를 계속 거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위구르 인권도 동맹국들과 함께 거론한다고 한다면 한국에도 ‘남의 얘기’가 아닌 게 됩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에 내정된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두 축의 반중(反中)전선을 제안합니다. 민주주의 10개국(D10)과 안보협력체 ‘쿼드(Quad)’입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두 협력체의 필수 ‘영입 대상’ 중 하나입니다.

이미 한국은 두 곳 참여에 문을 열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미국 아스펜연구소 안보포럼에 화상으로 참석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기간에 선언한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는 6월 한국도 초청받은 주요7개국(G7) 정상회의가 D10(혹은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동안 정부가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만 내비치던 쿼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이 나옵니다. 정의용 신임 외교부 장관은 지난 9일 쿼드 참여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의에 “어떠한 지역협력체와도 적극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진=AP


위구르족 인권 문제는 이제 국제 문제가 됐습니다. 영국과 미국 의회에서는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탄압은 ‘인종 학살(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며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결의안까지 나왔습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포의 후시진 총편집인은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국가들에는 중국이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맞받아치며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피지배 민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처참한 여성 인권 유린. 불과 80여년 전 비슷한 일을 겪은 한국에게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일본의 뻔뻔한 태도로 인해 현재 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또다른 이웃나라에서 80여년 전 우리 민족이 경험한 끔찍한 역사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언들이 나옵니다.

신임 외교수장은 취임 일성으로 “기후, 환경, 인권 비전통적인 안보 분야에 있어서도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도 동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세계 패권을 다툴 정도로 강력한 이웃 국가와의 관계, 우리와 ‘판박이’ 같은 피지배 민족의 눈물 사이에서 우리 외교 당국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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