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엇갈린 LG-SK..이제 공은 특허소송으로
(지디넷코리아=박영민 기자)""30여년 수십조원을 투자해 쌓아온 지식재산권이 보호받게 됐다. SK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에 부합하는 제안으로 하루 빨리 소송을 마무리하는 데 적극 나서달라" -LG에너지솔루션"
""고객사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이 생긴 것은 다행이다. 고객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겠다" -SK이노베이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0일(현지시간) 전기차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의 일부 승소를 결정하자 양사가 보인 반응이다. 지난 2년여간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 끝에 양사의 희비가 엇갈린 순간이었다.
ITC가 최종판결에서 지난해 2월 결정한 조기패소(Default Judgment) 판결을 인용함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 10년간 미국에서 배터리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됐다.
60일 이후 효력이 발생하는 이번 판결에 대해 양사가 합의점을 찾을 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또 이번 소송 결과가 양사가 국내외에서 진행하는 특허소송과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지도 주목된다.
美 ITC "SK이노 10년간 배터리 수입 제한"
이날 미국 ITC위원회는 SK이노베이션의 일부 리튬이온배터리 셀·모듈·팩에 대해 미국 생산과 수입을 10년간 금지한다는 최종결정(Final Determination)을 내렸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고 이 점이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고 봤다. 이는 ITC가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에 내린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사실상 인용한 것이다.
당시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소송의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삭제했고, ITC의 포렌식(과학적 증거물 분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 모독 행위를 했다'는 LG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ITC가 SK의 미국 내 '공익성'을 고려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지만 반전은 없었다.
ITC는 예비결정 이후 SK 측 요청에 따라 진행한 재검토 과정에서 '영업비밀 침해'와 '증거인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ITC는 ▲SK가 LG의 원자재 부품명세서(BOM)와 기타 영업비밀을 탈취해 원가구조를 파악했다는 주장 ▲이를 수주에서 낮은 가격에 입찰하는 데 활용했다는 주장 ▲배터리 제조 핵심 비결(레시피)이 담긴 SK의 사내 이메일 등을 증거로 인정했다.
이번 판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SK가 공급하는 포드 전기픽업트럭 'F-150'와 폭스바겐 'MEB'용 배터리 셀·모듈·팩 등의 수입을 4년, 2년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는 점이다. ITC는 현지에서 판매하는 기아 전기차배터리 수리·교체를 위한 제품 수입도 허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대해서도 양사의 반응은 엇갈렸다. SK 측은 "소송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어서 아쉽지만, 고객 보호를 위해 포드·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둔 것은 다행이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반면에 LG 측은 "제한적으로 수입 허용된 침해 품목에 대해선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통해 보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해석도 나뉘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포드 등 자국 업체들이 소송 결과에 따라 받을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SK 배터리를 생산하는 조지아 공장이 완공되지 않은 시점에서 주어진 2~4년의 유예기간은 완성차 업체들에 다른 공급처를 하루빨리 확보하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SK이노, 항소할까 협상할까…특허·손배소도 남아있어
추가 조사와 전면 재조사 등 예비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판결을 기대했던 SK이노베이션은 즉시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합의를 위한 협상에 서두를 가능성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SK의 기술 탈취 행위가 명백히 입증된 결과"라며 환영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향후 글로벌 경쟁사들의 기술 탈취 행태에 제동을 걸어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며 "30여년간 수십조원의 투자로 쌓아온 지식재산권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보호받게 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 최종 결정을 인정하고 소송전을 마무리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길 기대한다"며 "작년 2월 조기패소 결정에 이어 최종 결정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소송을 계속 소모전으로 끌고 가는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경쟁사에게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판결이 아쉽다면서도 "미국 내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앞으로 남은 절차를 통해 안전성 높은 품질의 SK 배터리와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수 천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공공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60일간의 대통령 심의 기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번 판결에 대해 거부권(Veto)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가 기업의 지식재산권 다툼에 어느 정도로 개입할 수 있을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ITC 설립 이래 기업 간 영업비밀 침해 건에 거부권이 행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특허소송과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 이 소송들의 최종 판결에도 ITC 판결에 따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소송전이 장기화할 수 있다.
LG 측은 "영업비밀보호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승소한다면) 부당이익, 징벌적 손해, 변호사 비용 모두 배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는 2019년 4월 LG가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9월 LG를 배터리 기술 특허침해 혐의로 미국 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LG는 자사 핵심 특허를 SK가 침해했다며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특허소송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어 맞대응했다. LG가 SK에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 판결은 오는 7월 19일, SK가 LG에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 판결은 11월 30일 나온다.
이번 소송 판결을 기점으로 배터리 업계에서 '영업비밀 침해', '기술 유출' 등 공방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비교해 국내는 영업비밀 침해 등의 손해배상소송 처벌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는 주요 수출품인 메모리반도체와 비교하면 생산설비를 구축하는데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 아니다"며 "영업비밀·특허와 같은 무형의 재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영민 기자(pym@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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