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뉴스-충북] 청남대는 다시 열렸는데, 전두환 동상은 그대로?
충북도, 전·노 동상 '철거' 약속은 깨지고 과오 적은 표지석 검토
2020년 한가위에 이어 이번 설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국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직계가족이더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꼭 4명까지만 모여야 합니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직후여서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2020년 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입춘이 지났어도 아직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향 부모님 뵈러 가는 길은 조심스럽고, 자식들 얼굴 보러 움직이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젠 ‘민족 대이동’이란 말도 농경사회 유물로 남을 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이 ‘우동뉴스’(우리동네뉴스)를 준비했습니다. 명절에도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겨레> 전국부 소속 기자 14명이 우리 동네의 따끈한 소식을 친절하고 맛깔스럽게 들려줍니다. 고향 소식에 목마른 독자에게 ‘꽃소식’이 되길 바랍니다._편집자 주
옛 대통령 휴양지 청남대가 봄맞이에 나섰습니다.
2월2일 청남대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2020년 12월21일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문 닫은 지 42일 만입니다. 이설호 청남대 관리사업소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야외 활동을 제한받아 피로도가 높아진 국민을 위해 정상 개관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있는 청남대는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한국관광 100선’ 가운데 한 곳입니다. 충북에선 청남대를 포함해 제천 의림지 등 4곳만 ‘100선’에 들었습니다. 해마다 평균 100만 명 안팎의 관광객이 청남대를 찾습니다. 충북도는 청남대를 기반으로 관광이 활성화하기를 기대합니다.
전두환 동상 훼손한 시민, 벌금 700만원
그러나 걱정도 많습니다. 동상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씨 동상 때문입니다. 청남대 안에 있는 두 동상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기념재단, 충북 5·18민중항쟁 기념사업회 등이 꾸린 ‘5·18 학살주범 전두환·노태우 청남대 동상 철거 국민행동’(국민행동)이 2020년 5월 이후 계속 동상 철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1월19일에는 황아무개(50)씨가 전두환씨 동상의 목 부분 3분의 2가량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황씨는 당시 “평소 전두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충북도가 전씨 동상을 철거하지 않아 직접 응징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청남대 쪽은 이후 출입로를 통제하고, 별도로 동상 관리 인력을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1월 1심 재판에서 황씨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국민행동은 “(황씨의 행위는) 정의로운 양심을 가진 자의 용감한 행동”이라며, 황씨 벌금 마련을 위한 시민 모금 운동을 진행합니다.
청남대가 보수 작업을 한 뒤로, 전두환씨 동상은 멀쩡해졌습니다. 충북도는 동상을 치울 생각이 없습니다. 동상이 관광상품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2020년 12월 “청남대 전직 대통령 동상은 관광 활성화 목적에서 건립된 조형물로, 청남대 관광 자원이면서 충북도 재산”이라며 동상 존치 계획을 밝혔습니다. 반면 국민행동은 “반란 수괴, 부정 축재자의 동상은 관광상품이 아니라 국민의 수치”라며 반발했습니다.
청남대는 전두환씨가 만들었습니다. 1980년 12월 전씨가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해 “저런 곳에 휴양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장세동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등이 움직였고, 1983년 12월27일 청주시 문의면 335필지 182만5647㎡(55만여 평)에 건물 52동, 골프장·양어장·수영장·산책로 등을 갖춘 청남대를 준공했습니다. 애초 이름은 봄을 맞는 ‘영춘재’였다가 남쪽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로 바꾸었습니다.
청남대는 대청호와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지입니다. 한때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1급 보안 지역이었습니다. 역대 대통령이 89차례 찾아 472일을 이용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17일 청남대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개방 안 했을 겁니다”라는 농담과 함께 청남대를 민간에 개방했습니다. 대통령 휴양지 주변이어서 30년을 숨죽이며 살았던 주변 주민들은 노 전 대통령에게 감사의 돌탑을 선물했습니다.
청남대는 ‘한 사람만을 위한 휴양지’에서 ‘국민 휴양지’로 거듭났습니다. 청남대 관리권을 받은 충북도는 2015년 6월 109억원을 들여 이승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설치하고 대통령 기록관을 조성했습니다. 전두환·노태우씨 동상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충북 지역 시민단체들은 전·노씨가 대법원에서 반란수괴죄 등의 혐의로 최종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기에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정한 예우 권리 박탈에 해당한다며 동상 철거를 계속 요구했습니다.
동상 철거 위한 조례안 발의됐다가 파기
2020년 5·18 민주화운동 40돌을 맞아 충북 지역 시민단체뿐 아니라 광주·대전·서울 등 전국의 5·18 관련 단체가 한목소리로 전·노씨 동상 철거를 요구하자 충북도도 흔들렸습니다. 충북도는 2020년 5월14일 낸 보도자료에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취지에 맞지 않는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동상, 대통령의 길, 기록관 등을 조속한 시일 내에 철거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보수 성향 단체 등에서 철거 반대 목소리가 나왔고, 충북도는 ‘철거 근거가 마땅치 않다’며 한발 뒤로 물러섰습니다. 이에 충북도의회가 나섰습니다.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의원 25명이 2020년 6월 ‘충청북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을 공동 발의했습니다. 이 조례안은 ‘전직 대통령이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기념사업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기념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전·노씨 동상 철거를 위한 ‘족집게 조례’였습니다. 충북도의회 의원 31명 가운데 민주당이 27명으로 절대다수인데다, 이시종 충북지사 역시 민주당 소속이어서 조례안 통과와 동상 철거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습 니다.
보수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의회 상임위원회(행정문화위원회)는 조례안 상정을 거푸 미뤘습니다. 2020년 11월에는 조례안을 철회하는 촌극까지 빚었습니다. 그사이 충북도는 애초 ‘전직 대통령이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기념사업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기념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조례안 ‘강행 규정’을 ‘중단할 수 있다’는 형태의 ‘재량 규정’으로 완화할 것을 도의회에 수정 제안했습니다. 이상식 의원은 “충북도와 협의해 의원 절대다수(80%)가 조례안을 발의했는데 기만적인 충북도와 무능한 의회가 끝내 조례를 저버렸다”며 이시종 지사와 의회를 싸잡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조례안이 사라지면서 충북도의 동상 철거 약속도 파기됐습니다.
“청남대 안 가기 운동도 검토”
충북도는 전·노씨 동상을 그대로 두고, 옆에 표지석 형태로 과오를 적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송찬엽 청남대 관리사업소 운영과장은 “대학교수 등으로 이뤄진 청남대 자문위원회가 건넨 전·노씨 사법적 과오 적시 문구 초안을 검토한다. 2월 안에 전체 위원회를 열어 문구 등을 조정, 조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민행동은 ‘전·노씨 동상 철거 시즌2’를 준비합니다. 정지성 국민행동 공동대표는 “전국 5·18 관련 단체와 전·노씨 동상 철거를 위한 법적 대응을 모색한다. 동상 등 기념사업 관련 예산의 적정성을 따지는 감사도 청구할 방침이다. 동상 존치를 결정한 충북지사와 의회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행동과 함께 청남대 불매(안 가기) 운동도 검토한다”고 말했습니다.
봄은 오고 있지만 청남대의 봄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청주=오윤주 <한겨레>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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