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떼여서 투잡 뜁니다"..작을수록 취약하다
조강진 씨는 22년 차 시외버스 운전기사다. 50여 명 규모의 버스 회사에서 일하는데, 오전 5시에 일어나 밤 10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온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월급은 150만 원 안팎이다. 한 가정의 생계를 꾸리기에는 빠듯한 액수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월급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승객 수가 줄면서 근무 일수도 줄었고, 덩달아 월급도 절반 가까이 깎였다는 게 조 씨의 설명이다.
근무 일수가 줄었으니 월급이 줄어드는 건 납득할 수 있는데, 문제는 수당이었다.
회사 측이 지난해부터 미사용 연차수당과 정기 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조 씨는 800만 원 가까운 돈을 받지 못했다. 조 씨와 다른 버스 기사 30여 명에게 미지급된 수당을 합하면 2억8천만 원에 달한다.
관할 노동청은 '임금체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그러나 회사 측은 "코로나로 수익이 반 토막이 났는데, 임금체불은 당연하고 회사가 운영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체불된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월급 감소에다 수당 체불까지 겹쳐 생계가 어려워진 버스 기사들은 대리운전이나 도시락 배달 등 이른바 '투잡'을 뛰며 버티고 있다.
다른 소규모 사업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10여 년째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화물 운송기사 김성호 씨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거의 매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나마 다음날 물건 상·하차를 위해 미리 전날 차고지로 이동하는 건, 사업주가 근무 시간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월 근무시간은 200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이렇게 초과 근로를 하지만 초과 수당은 제대로 받지 못해, 실제 손에 떨어지는 월급은 180만 원에 불과하다.
사업주는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연장 근로 수당과 연차 수당 등은 안 줘도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씨의 말은 다르다. 화물 운송업체 소속 노동자가 5명이 넘는데도 사업주가 서류상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기 위해 회사를 둘로 쪼개놨다는 것이다.
김 씨는 이런 내용을 포함해 임금 천만 원가량이 체불됐다며 노동청에 신고했다.
이에 따라 현재 관할 노동청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데, 노동청에서도 문제의 사업주가 아내 명의로 또 다른 회사를 차려놓고, 실질적으로는 해당 업체를 직접 지휘·감독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 전체 체불액 중 90%가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
지난해 기준, 전체 임금체불액 가운데 73.7%가 30인 미만 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00인 미만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90%를 넘어섰다.
KBS가 노무법인 '노동과인권'과 함께 진행한 임금체불 1심 판결문 천 2백여 건 분석을 통해서도 이같은 경향이 확인된다. 5인 미만 사업장이 임금체불 사건의 35%를 차지했고, 100인 미만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거나 사용자-노동자 간 근로 계약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초과 근무를 해도 수당을 못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규모가 있는 대기업에 비해 경기 불황 등 외부 요인에 취약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상당수 영세업체 사업주들이 '경영 악화'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고용노동부는 경영상 어려움으로 임금체불이 발생했지만 체불 청산 의지가 있는 사업주에게 2.2~3.7% 수준의 융자금을 지원해주고, 이를 통해 체불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노동계는 만연해 있는 소규모 사업장의 임금체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노동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노무사)은 "노동자들이 임금체불 사건을 노동청에 신고하면 입증 책임도 져야 한다"며 "출·퇴근 기록 등 초과 근무가 있었다는 걸 증빙할 수 있는 증거 자료를 노동자가 수집해야 한다는 건데, 이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하 실장은 "물론 근로감독관의 수사 의지에 따라 임금체불 문제가 쉽게 해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노동자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는 게 현실"이라며 "임금체불이 발생했을 때, 신고 초기 단계부터 조사 권한이 있는 정부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철 기자 (mcpar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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