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배터리 소송' 이겼다..SK가 노리는 다음 수는(종합)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2021. 2. 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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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 3년 만에 최종 판결
"SK이노베이션 배터리, 10년 수입 금지"
이미 계약한 포드 4년·폭스바겐 2년 유예
LG "지재권 보호 환경" SK "유감" 입장 표명
SK, 美 대통령의 수입금지 거부권 행사 노릴듯
LG는 "판결 부합하는 제안 나서라" 압박
"배터리 시장 급성장하는데" 장기화에 우려도
[서울경제]

지난 3년여 간 이어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사실상 LG의 완승으로 결론 났다. SK이노베이션은 향후 미국 배터리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따져봐야 할 정도로 타격이 크다. 합의금 규모 등을 두고 이견이 커 결렬됐던 양사 합의를 위한 협상도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하는데, 국내 업체 간 소송전이 지속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나온다.

美 ITC ‘SK이노, 10년 수입 금지’

10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용 배터리에 대해 10년 간 미국에서의 생산과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초 ITC는 예비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 패소 결정을 내렸는데, 사실상 이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ITC 산하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도 지난해 9월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제재가 적절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실제 ITC는 이날 LG에너지솔루션이 제출한 2차 전지 관련 영업비밀 침해 리스트를 확정했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 모듈, 팩과 관련 부품·소재가 미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수입 금지 10년’은 당초 업계에서 흘러나왔던 예상보다 강력한 수준이다. 다만 ITC는 SK이노베이션이 기존에 수주해 놓은 포드 전기차용 배터리는 4년, 폭스바겐 전기차용 배터리는 2년 간 수입을 유예했다. 포드와 폭스바겐이 유예 기간 동안 다른 배터리 공급처를 찾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는 평가다.

LG ‘지재권 보호’ 환경...SK ‘유감’

ITC 판결이 나오자 LG와 SK는 각각 공식 입장을 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30여년 수십 조원을 투자해 쌓아온 지식재산권이 보호받게 됐다”며 환영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탈취 행위가 명백히 입증된 결과”라며 “LG에너지솔루션이 제기한 소송이 사업 및 주주 가치 보호를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법적 조치”라고 밝혔다.

소송 상대방인 SK이노베이션을 향해서는 “ ITC 최종결정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에 부합하는 제안으로 하루 빨리 소송 마무리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ITC 결정은 소송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어서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내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앞으로 남은 절차를 통해 안전성 높은 품질의 SK 배터리와 미국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수 천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공공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예기간이 주어진 포드와 폭스바겐에 대해서는 “주어진 유예기간 중에 그 후에도 고객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SK이노 美 사업 어쩌나...바이든 거부권 기대

SK이노베이션은 이번 ITC의 결정으로 유럽·중국과 함께 3대 전기차 배터리 시장 중 하나인 미국 사업의 불확실성이 지속 되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폭스바겐과 포드향(向) 배터리 납품을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1·2공장을 짓고 있다. 2조9,000억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다. 1공장(9.8GWh)은 폭스바겐 전기차용으로, 당장 내년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 전기차 25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2공장(11.7GWh)은 2023년 가동이 예정돼 있다. SK이노베이션은 1·2공장 외에 추가 증설도 공언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을 일단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항소가 가능하지만 공탁금 산정 기간부터 항소 기간 수입금지 조치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항소 결과도 역사적으로 좋지 않다. 2010년 이후 ITC의 수입금지 조치 명령이 나온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총 6건인데, 이 중 5건이 항소 결과가 바뀌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 미 조지아공장 건설 현장 전경/사진제공=SK

결국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지금으로서는 현실성 있는 대책이다. 대통령 거부권은 ITC 최종 판결 이후 60일 이내에 가능하다 대통령 심의(Presidential Review) 절차로, SK 측이 공식 입장에서 ‘남은 절차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힌 것도 사실상 이 절차를 의미한다.

SK이노베이션은 취임 이후 친환경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배터리 산업의 중요성과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집중적으로 설명할 예정이다. 조지아 1·2공장이 돌아가게 되면 2,600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식재산권 등 영업비밀 침해 건은 미국 내에서도 심각하게 보는 사안이라, 거부권이 행사된 사례가 극히 드물다. 설사 거부권이 행사된다 하더라도 ‘영업비밀 침해’라는 ITC의 판결 자체는 그대로여서, SK로서는 낙인 효과가 생긴다.

이견 컸던 양사, 합의 나서나

ITC 판결이 나옴에 따라 양사 간 합의도 물밑에서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애초 ITC 판결 전 합의가 시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합의금 산정 등을 두고 이견이 워낙 커 결렬됐다. LG는 향후 SK의 배터리 매출에 대한 일정 비율의 로열티와 함께 수 조 원대의 합의금을 제시하고 있지만, SK는 수천 억 원대를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G가 ‘ITC 판결에 부합하는 제안을 하라’고 압박하는 배경이다. SK이노베이션은 여전히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적자이고,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하는데, 양사가 소송에 묶여 재원과 역량을 소모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로펌 비용 등 소송 부대 비용만 수 천 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 조사기관인 IHS는 오는 2025년 글로벌 배터리 시장 규모가 18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CATL을 앞세운 중국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최근에는 유럽 국가들도 직접 배터리 기술 확보에 나섰다”고 위기감을 표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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