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도 터부시하는 '박원순', 우상호는 왜..진정성과 전략 사이
SNS 게재 여부 놓고 캠프 내 격론..우상호가 결정
"박원순 계승" 열성층 어필..개인적 인연도 작용
우상호 "유가족 위로한 게 어떻게 2차 가해인가"
2차 가해 비판 잇따라..野 "정치 선동, 사퇴해야"
전문가 "우 의원 이미지나 명분 등에 다 안 좋아"
"공과(功過) 같이 보자? 피해자 공감 힘든 얘기"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故) 박원순 전 시장 부인 강난희씨의 손편지글을 옹호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박 전 시장 성희롱 판단도 부정하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해당 편지에 대해 여당 후보가 사실상 공개 지지를 표명한 셈이다. 여권에서조차 박 전 시장에 대한 언급이 거의 금기시 돼 있는 상황에서 당장 야권과 여성계 등에서 '2차 가해' 비판이 쏟아질 게 뻔히 예상됨에도 우 의원이 왜 이 같은 발언을 했는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원순은 동지…강난희 편지에 눈시울 뜨거워져"
우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강난희 여사님의 손 편지글을 봤다. 글의 시작을 읽으면서 울컥했다"고 밝혔다.
이어 강씨 편지글의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앞으로 남은 시간들까지 박원순은 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나의 동지'라는 대목을 인용하며 "이를 악물고 있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떻게 견디셨을까"라고 했다.
이어 "박 시장은 내 혁신의 롤모델이었고 민주주의 인권을 논하던 동지"라면서 "참여연대를 만들어 시민운동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갈 때도 감탄했고, 시민의 삶에 다가가는 서울시장의 진정성에도 감동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박 시장의 정책을 계승하고 그의 꿈을 발전시키는 일, 내가 앞장서겠다"며 "박원순이 우상호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서울시 정책을 펼쳐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2월 11일은 박 시장님의 67번째 생일"이라며 "비록 고인과 함께할 수 없지만 강 여사님과 유가족들이 힘을 내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박 전 시장 부인 강씨가 '박원순을 기억하는 사람들(박기사)'에게 보낸 손편지가 유포됐다. 해당 편지글에는 "박기사의 입장문에는 '성희롱 판결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 있다"며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우상호 캠프 내에선 해당 글의 게재 여부를 놓고 격론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차 가해 논란 등 후폭풍을 우려해 반대하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후보의 결정이었다는 게 캠프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원순 계승" 열성층 어필…개인적 인연도 작용
우 의원의 발언 배경에는 전략적 판단과 개인적 인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본선과 달리 당내 경선에선 지지층의 표심이 당락을 좌우한다. 각종 당내 선거에서 강성 지지층에 소구하는 강경 발언이 되풀이돼온 배경이다. 더욱이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 우 의원이 의식적으로 박 전 시장에 동정적인 여권 지지층에 어필하는 전략을 취했다는 해석이 붙는다.
개인적 인연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우 의원은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 또 박 전 시장이 참여연대를 창립할 당시부터 오랜 시절 관계를 맺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박 전 시장과 그 가족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 애틋함이 깊다고 한다.
캠프의 구성도 우 의원 행보와 연관지어 볼 수 있다. 한 예로 옛 박원순계로 불리는 박홍근, 천준호, 기동민 의원 등이 우 의원을 돕고 있다. 박 시장 시절 서울시에 몸 담았던 정무직 보좌진들도 캠프의 중핵에 자리하고 있다.
실제 우 의원은 비단 이번 페이스북 글 뿐만 아니라 출마선언 이후 줄곧 스스로를 "박원순 시장이 서울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정책들을 계승 발전시킬 적임자"라고 내세워왔다. 이는 당내 경쟁자인 박영선 전 장관과도 대비된다.
박 전 장관은 박 전 시장 성비위에 대해 "사과가 더 필요하면, 피해자와 상처받은 분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된다"고 밝혔다. 전임 박원순 시정(市政)에 대해서도 "취사선택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우상호 "유가족 위로한 게 어떻게 2차 가해인가"
논란이 확산되자 우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내일이 박 시장의 생신이고, 설도 다가오는데 슬픔에 잠긴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메시지를 썼다"며 "어쨌든 고인이 된 박 시장 유가족들이 슬픔을 이기고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뉴시스와 통화에서도 "피해자와 관련된 일을 잘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면서도 "박원순이 살아온 인생 전체, 시장으로서의 업적도 부정할 건가. 박 시장의 '박'자만 꺼내면 2차 가해라고 하는 것은 과하다"라고 항변했다.
국가인권위의 성희롱 판단과 가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우 의원은 "국가기관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 인권위의 재발 방지 등 권고조치를 성실히 따르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을 위로한 일이 어떻게 2차 가해일 수 있는가. 유가족에 대한 위로도 못하는가"라며 "박 시장의 유가족들도 슬픔에 잠겨있는데 그 유가족 위로하는 것조차 2차 가해라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 의원 측 관계자는 "피해자가 있고 박 전 시장의 과오도 있지만 박원순의 지난 30여년을 우리가 지우고 있지 않냐는 문제의식"이라며 "좋은 점은 계승하고 잘못된 점은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2차 가해 비판 잇따라…野 "정치 선동, 사퇴해야"
당장 우 의원 페이스북 댓글란에는 난장판이 펼쳐졌다. 우 의원 발언에 공감하는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2차 가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꼬리를 물었다.
야당은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또다시 피해자와 서울시민 가슴에 대못을 박은 우상호 예비후보는 자격이 없다.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나경원 전 의원은 "낯 뜨거운 '박원순 찬양'을 하고 있다. 참으로 잔인한 정치꾼"이라며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가하는 2차 가해이며 정치 선동"이라고 규정했다.
오신환 전 의원도 "당내 경선이 아무리 급하다 해도 최소한의 분별력은 잃지 말아야 한다"며 "피해자는 짓밟힌 인권과 소중한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외롭게 싸우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당혹해하는 기색이 읽힌다. 무공천 당헌을 개정하며 부담을 안고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든 상황에서 다시 박 전 시장 문제를 선거판 전면에 끄집어낸 격이 된 탓이다.
전문가 "공과(功過) 같이 보자? 피해자 공감 힘든 얘기"
결과적으로 우 의원의 발언은 후보 개인에게도, 민주당에도 악수(惡手)가 됐다는 것이 정가의 일반적 평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 의원 본인의 이미지나 명분 등 모든 면에서 좋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인이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취지의 얘기를 하면 안 된다. 내 행동의 취지나 동기가 어떻든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피해자에 대해 아직도 적절한 사회적 지원과 회복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그런데 박 전 시장의 공과(功過)를 같이 바라보자고 하는 건 피해자와 여성들의 입장에선 공감하기 힘든 얘기"라고 했다.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에 대한 정의당의 대응과도 대조를 이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당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며 2차 피해 차단에 방점을 찍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 측에 대한 감정이입'은 논외였다는 것이 정의당의 입장이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논평에서 "성폭력 사건과 피해의 맥락을 지운 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해자를 치켜세우고 옹호하는 발언은 2차 피해 유발"이라며 "이미 너무나 많은 2차 피해를 겪은 피해자가 이번 발언으로 한층 더 고립감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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