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C, '배터리 전쟁' LG 손들어줘..유예기간은 둬
10일(현지 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앞서 2월 내렸던 조기(예비) 패소 판결을 확정하되 수입금지 조치는 유예한다고 판정했다.
제한적으로 포드의 전기픽업트럭 F150향 배터리 부품·소재는 4년간, 폭스바겐 MEB향 배터리 부품·소재는 2년간 수입을 허용했다. 또한 이미 판매 중인 기아 전기차용 배터리 수리 및 교체를 위한 전지 제품의 수입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폭스바겐에 2023년까지, 포드에 2024년까지 배터리 공급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2019년 4월 말 LG 측의 제소로부터 햇수로 3년 간 첨예하게 이어온 양 사간 소송전은 일단락됐다.
미국의 정부 기관인 ITC는 주로 미국이 수입하는 해외 제품과 관련 업계의 통상 문제를 두고 예비 및 최종 판결 등 두 차례에 걸쳐 판결 및 수입금지 행정명령을 내린다. ITC가 SK이노베이션의 패소는 인정하되 유예기간을 둔 것은 ITC가 기본적으로 미국 산업의 이익 보호를 우선순위에 둔 정부 조사기관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잘못은 인정하되, 미국 산업의 실리는 챙겨야 한다는 의미다. SK이노베이션의 수입금지 조치가 발효 되는 2~4년까지 LG와 SK가 합의를 통해 풀어낼 시간도 주어지게 됐다.
앞서 폭스바겐 미국 법인과 포드 등은 ITC에 의견서를 통해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입이 전면 금지되면 미국 내 전기차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이는 미국 전기차 경쟁력의 문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밝힌 바 있다. 미시간주 포드 공장, 테네시주 폭스바겐 공장은 전기차 생산에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배터리 셀과 모듈 등의 부품을 사용할 계획이라 지역 정치인들도 여러차례 우려를 전달해왔다.
이번 판결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30여 년 수십 조 원 투자해 쌓아온 지식재산권을 보호받게 됐다”며 “SK이노베이션은 ITC 최종결정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에 부합하는 제안으로 하루 빨리 소송 마무리하는데 적극 나서야한다”고 밝혔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은 침해된 영업비밀에 상응하고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이 제시되지 않는 경우, ITC 최종 승소 결과를 토대로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품목에 대한 미국 내 사용 금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임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은 측은 “이번 ITC 결정은 소송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어서 유감”이라면서도 “다만 SK이노베이션 고객 보호를 위해 포드와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둔 것은 다행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남은 대통령 심의기간 동안 안전성 높은 품질의 SK배터리와 미국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전할 계획이다. 나아가 결정에서 주어진 유예기간 중에 그 후에도 고객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중단됐던 양측의 협상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양사는 영업비밀 침해 여부 인정여부를 놓고 입장차를 보였고, 그에 따른 합의금 규모도 ‘수조 원(LG)’과 ‘수천억 원(SK)’의 격차를 좁히지 못해 사실상 대화가 중단된 상황이다.
ITC 최종 결정 후 60일 동안 미국 대통령 심의기간이 있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대통령은 미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금까지 특허 침해가 아닌 영업비밀 침해 건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적은 없었다. ITC가 수입금지 유예기간을 줬기 때문에 당장 미국내 제조사 피해가 없다고 보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LG화학 입장문 |
이번 판결은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탈취 행위가 명백히 입증된 결과이자, LG에너지솔루션이 제기한 소송이 사업 및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법적 조치로써 30여 년 간 수십 조원의 투자로 쌓아온 지식재산권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보호받게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이번 판결로 배터리 산업에 있어 특허뿐만 아니라 영업비밀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인식되었으며, 향후 글로벌 경쟁사들로부터 있을 수 있는 인력 및 기술 탈취 행태에 제동을 걸어 국내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이 보호받고 인정받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 전체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세계 배터리 업체들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선도 업체로서 지식재산권 보호를 더욱 강화하고, 과감한 투자를 계속 이어가며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서 노력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 측이 이제라도 계속적으로 소송 상황을 왜곡해 온 행위를 멈추고, 이번 ITC 최종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부합하는 제안을 함으로써 하루빨리 소송을 마무리하는데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침해된 영업비밀에 상응하고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이 제시되지 않는 경우, ITC 최종 승소 결과를 토대로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품목에 대한 미국 내 사용 금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임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이 배임 논란에서도 벗어나기 위한 필요 조치이다. |
▶SK이노베이션 입장문 |
SK이노베이션은 이번 ITC 결정은 소송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어서 유감스럽다. 다만, SK이노베이션 고객 보호를 위해 포드와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둔 것은 다행이라고 판단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내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앞으로 남은 절차(Presidential Review 등)를 통하여 안전성 높은 품질의 SK배터리와 미국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수천 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공공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할 계획이다. 나아가 결정에서 주어진 유예기간 중에 그 후에도 고객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다. |
▶ITC란…미국 산업 보호 목적으로 설립된 조사기관 |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미국 산업 보호와 발전을 위해 설립된 조사 기관이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거나 미국으로 수입된 특정 상품이 관련 업계에 피해를 주었는지 판정하고, 피해사실이 인정될 경우 즉각 수입규제 등 행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 ITC는 일반 법원에서 벌이는 소송전과 유사한 절차와 과정을 두고 있어 관련 분쟁 사건이 등장할 때마다 ‘소송전’으로 표현되지만 ITC는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인적·물적 피해 사실을 판단하고, 이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액까지 판결을 내리지만 ITC는 피해 여부를 조사하고 수입규제 조치를 내릴 뿐이다. 다만 ITC는 지식재산권 피해 여부도 판단한다. ITC 소송 건수는 매년 증가세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총 580여 건의 소송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ITC는 일반 소송전에 비해 절대적인 분쟁 건수가 적어 전문 변호사도 드문 편이다. 이 때문에 변호사 선임 비용도 높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이 이번 소송을 위해 낸 변호사 비용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ITC 소송을 선호하는 것은 빠른 속도 때문이다. ITC는 소송을 제기한 시점부터 최대 18개월이면 결론이 내려진다. 보통 ‘예비결정(ID)’까지 12개월, ‘최종결정(FD)’까지 4개월이 소요된다. 최종 결정 이후에는 2개월의 시간을 둬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절차를 뒀다. 즉각 해당 품목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가 취해질 경우 파급효과가 너무 커질 수 있어서다. ITC는 최종 결정을 내리는 위원회(6명)와 예비결정을 내리는 행정판사(ALJ·6명), 독립적 조직으로서 의견을 내는 OUII 등 총 3개의 부서로 구분돼있다. 불공정수입조사국(OUII) 구성원은 비전문가지만 중립적인 입장에서 의견을 낸다. 예비결정을 내리는 ALJ는 OUII의 의견에 귀를 기울려 예비결정을 내린다. 앞서 ALJ는 SK이노베이션이 소송 전후로 광범위한 증거훼손 등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정을 내린 바 있다. |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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