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K-배터리 분쟁 美서 일단락..남긴 것과 잃은 것

김성은 기자 2021. 2. 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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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세기의 배터리 전쟁이 일단락됐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무려 세 번의 연기 끝에 3년차에 접어든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1차 종지부를 찍었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특허전 등 국내외 다수 소송전이 진행중이고 이번 ITC 판결에 대해 항소 절차도 따를 전망이다. K-배터리 역사상 중대 선례를 남기게 될 이번 사례에서 양사가 합의점을 찾는 것으로 끝매듭 지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00명의 인력이동에서 촉발…지재권 인식·처우문제 개선에 불붙여
10일(현지시간)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일부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해 10년간 '제한적'으로 수입금지 명령을 내렸다. LG에너지솔루션이 주장한 일부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단 고객사 피해를 우려해 포드 공급 제품에 4년, 폭스바겐에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양사는 바이든 대통령 심의기간(60일) 동안 합의점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의 시작은 2017~2019년 100여 명의 인력이 LG화학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데서 비롯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들이 이직과정에서 개인당 400여 건에서 많게는 1900여 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 사이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으로부터 대규모 수주를 따냈다. 영업비밀 침해를 의심한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4월 결국 ITC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냈다. K-배터리 전쟁의 서막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을 침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양사 배터리 기술과 생산방식이 다르고 이미 SK이노베이션도 핵심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수주시 굳이 경쟁사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필요치 않다는 주장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의 이직 역시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이미 2017~2018년 LG화학에서 자발적으로 이직한 직원이 958명인 점을 들어 전직은 직원들 스스로 '처우에 관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채용과정에서 기술 탈취 시도도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정당한 스카우트' 였는지 논쟁에 이어 또 다른 쟁점은 왜 미국에서 소송을 벌이는지였다.

이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ITC 및 연방법원이 적용하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절차'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들었다. 디스커버리는 상대방이 가진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제도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오랜 연구·개발로 확보한 기술력, 지식재산권을 보호받기 위해 ITC를 선택한 것이 불가피했다고 밝혀왔다. 실제로 배터리 업계 뿐 아니라 특허나 지식재산권 업계 관계자들은 역사상 유례가 없던 이번 양사 분쟁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지난해 말 최승재 세종대 법학부 교수 및 김혜정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전임연구원은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의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번 사건은 핵심 연구인력의 이직과 관련된 영업비밀 침해 이슈에 대한 중요한 선례이자 배터리 산업 주도권 경쟁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증거법적인 문제가 한국에 기반을 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케 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볼 때 디스커버리 제도는 지식재산권의 실효적 보호를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익 논쟁으로까지 번졌던 배터리 전쟁…이제는 합의의 시간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2위(23.5%), 삼성SDI가 5위(5.8%), SK이노베이션이 6위(5.4%)를 차지하는 등 나란히 10위권에 들었다. 사용량 성장세는 85~274%에 달할정도로 매서웠다.

다만 상위 1~5위권에 CATL이나 파나소닉 같은 일본 업체가 포진해 있어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 가운데 국내 업체끼리의 다툼은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급기야 지난 1월 정세균 총리는 공식석상에서 "소송 비용이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며 ITC 판결전 양사 합의에의 바람을 전달했다.

양사 다툼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은 단순히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이노베이션과 같은 대기업의 시장 지위 유지에만 시선이 맞춰진 것은 아니었다. 양사가 글로벌 무대에서 '배터리 파이'를 넓혀갈 경우 한국 배터리 회사들이 투자하는 장비, 소재, 부품 회사들의 매출도 그만큼 커질 것이란 기대였다. 즉 한국형 소·부·장 부흥을 국내 배터리 3사가 이끌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이에 반해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이번 소송의 본질은 핵심기술 등 마땅히 지켜야 할 권리를 보호하고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데 있다"며 "선도적 기술개발 활동이 보호받을 수 없다면 국가경쟁력도 훼손될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영업비밀을 지키는 것이말로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핵심이라는 주장이었다.

한편 ITC 판결 이후로도 합의의 문이 열려 있는 만큼, 수 년에 걸쳐 추가적인 소송전을 끌고 가기보다 양사가 합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여전히 갈등 봉합에 실패하고 이미 양사가 수천억원의 비용을 들인 소송전이 길어질 경우 국내 전체 배터리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특훈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생태계를 키워나가는 단계에서 양사가 이제부터라도 조속히 합의 방안을 찾는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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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우경희 기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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