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배우면 좋을 '애플 다루는' 3가지 방법
"당사는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5일 블룸버그통신이 '애플이 현대차 그룹과 협상을 중단했다'는 보도 후 현대차와 기아차가 내놓은 8일 공시다. 이 통신은 애플의 비밀주의를 깬 것이 협상 중단의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애플과 현대차 그룹이 미래 자율주행전기차 개발에 협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일정 부분 예상됐던 시나리오다. 애플이 파트너들을 거칠 게 다루는 방법이기도 하다.
전세계 시가총액 1위 애플은 스티브 위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1976년 처음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비밀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즈니악이 차고에서 만든 첫 컴퓨터를 본 잡스가 '같이 사업을 하자'고 한 그 때부터다.
애플은 그간 상장사나 주요 고객은 물론 협력사에도 엄격한 비밀유지계약(NDA·Non Disclosure Agreement) 준수를 강요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정보가 돈이라는 것을 알았고,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정보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도 알았다. 애플의 성장기를 거쳐 오며 했던 수많은 소송 등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이런 애플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 애플과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의 협상에서 큰 성과를 내거나,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버텼던 사례를 통해 현대자동차 그룹이 배워야 할 것을 짚어봤다.
◇비틀스처럼 힘으로 눌러라=지금은 맥과 아이폰이라는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애플이 '사과' 이름을 쓰는 기업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다. 하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애플'은 세계적인 록 밴드 비틀스(The Beatles: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멀티미디어 회사로 더 유명했다.
비틀스는 자신들의 음원 관리를 위해 1968년 음원 유통 멀티미디어 회사 '애플'(Apple Corps Ltd.)을 설립하고, '사과'를 회사 로고로 등록했다. 유한회사 비틀스(Beatles Ltd.)를 대체할 회사였고, 같은 해 애플사 자회사로 애플 레코드, 애플 부티크, 애플 영화사를 뒀다.
8년 뒤인 1976년 컴퓨터 업체 애플이 설립되고 사명을 애플로, 로고를 '사과'로 쓰자 비틀스는 애플컴퓨터를 고소했다. 지루한 공방 끝에 1981년 애플컴퓨터는 8만 달러의 사용료와 음악 사업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타협했다. 이런 타협이 가능했던 이유는 비틀스가 애플컴퓨터보다 더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애플'과 '잡스의 애플' 소송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잡스의 애플'이 약속을 깨고 1991년에 매킨토시에 음악 작곡 기능을 넣었을 때(약 2600만달러 배상)와 2003년에 '아이튠즈를 통해 음원 유통사업에 나서면서 다시 소송을 했고, 잡스의 애플이 5억 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하는 선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틀스의 힘이 잡스를 압도했기에 가능한 승리였다.
하지만 잡스의 애플은 비틀스 외에는 그 누구도 자사와 조금이라도 엇비슷한 로고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최근 사과도 아닌 배를 닮은 로고를 썼던 스타트업이 '잎이 닮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애플은 배(pear)를 형상화한 스타트업 프리페어(prepear)의 로고가 애플 로고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지난해 8월 제기했다.
프리페어는 음식 조리법 검색, 식료품 배달에 도움을 주는 앱이다. 프리페어 이름의 일부인 '배'(pear) 모양을 딴 로고에 달린 잎이 자사 로고에 달린 잎을 따라 했다는 이유다. 애플은 신고서에서 "프리페어 로고가 애플 로고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닮았다는 잎 부분을 변경하는 것으로 최근 합의했다.
◇빌 게이츠처럼 약점 잡고 버텨라=지금은 애플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는 편리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 등은 원래 애플 것이 아니고, 복사기 업체 제록스의 것이었다.
1979년 하순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밸리의 거대기업 제록스 PARC 연구센터를 사흘간 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졸랐고, 그 대가로 상장을 앞둔 자사의 주식 일부를 제록스에 넘겼다.
당시 래리 테슬러라는 제록스 엔지니어가 잡스에게 보여준 것은 화면 내에 사각형의 아이콘을 키보드가 아닌 '마우스'라는 기기로 움직여 '윈도'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GUI)이었다.
애플은 이 GUI와 마우스를 자신들의 매킨토시에 차용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제록스가 뒤늦게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제품이 출시된 지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겼다. IBM의 일을 하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새로운 운영체제 윈도(Windows)를 개발하면서다.
1999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공개된 마틴 버크의 텔레비전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에서나 월트 아이작슨이 집필한 '스티브 잡스 전기'엔 잡스가 'MS 윈도가 매킨토시의 운영체계(OS)와 GUI를 훔쳐갔다'며 빌 게이츠에게 격노하는 장면이 있다.
애플 본사에서 잡스는 "당신을 믿었는데, 이제 우리 걸 도둑질하다니!"하자 게이츠는 "글쎄, 스티브. 이 문제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에겐 제록스라는 부유한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텔레비전을 훔치려고 그 집에 침입했다가 당신이 이미 훔쳐갔단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지"라고 답했다.
애플이 제록스의 GUI 기술을 훔쳐 모방했고, 그 훔친 기술을 다시 마이크로소프트가 훔친 게 뭐가 문제냐는 게이츠의 반응에 잡스는 "좋아.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거랑 너무 똑같이 만들진 마"라고 했다고 잡스의 전기 등은 전한다.
빌 게이츠처럼 애플의 약점을 잡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아이폰'이라는 브랜드도 애플 것이 아니었다. 이는 미국 최대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의 인터넷 전화 브랜드였다. 시스코와 애플의 소송전이 붙었고,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이름을 같이 쓸 수 있도록 시스코에 합의금을 주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상처가 생겨도 삼성전자처럼 기술로 부딪혀라=2007년 1월 아이폰을 출시하고, 세계 IT 시장의 대변혁을 이끈 애플은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추격해오자 2011년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디자인 특허 침해소송으로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애플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 갤럭시 탭 등에 적용된 기술, 디자인 등이 자사 제품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며 수조원대의 소송을 제기해 2018년 최종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7년간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이 소송으로 7년여의 시간과 수천억원의 자금을 낭비했지만 부수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의 유일한 경쟁자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심었다. 전체 휴대폰 시장에서 세계 1위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삼성은 당시 특허 피소에 머물지 않고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통신 특허 등을 통해 맞불작전을 펼치면서 견딜 수 있었다. 또한 삼성전자가 애플에 공급하는 모바일D램이나 낸드플래시 등 부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대등하지는 않지만 협상을 해나갈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다.
당시 최지성 삼성전자 CEO와 팀 쿡 애플 CEO를 소재로 조이오브테크(www.joyoftech.com)라는 사이트에 나이트로작과 스내기가 올린 이 카툰은 당시 양사의 특허 분쟁을 그림 하나로 잘 묘사해 눈길을 끌었다.
팀 쿡은 바주카포로 불리는 로켓포를 들고 있고, 최 부회장은 다연발 유탄발사기인 M32 MGL(Multiple Grenade Launcher)을 든 모습이다.
사회자가 "열 발자국을 걸은 후 돌아서 그 다음에 '발사!!'"라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카툰은 당시의 치열했던 특허분쟁의 긴장감과 팽팽한 대결의 모습을 보여줬다.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진 애플과의 특허전쟁에서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경쟁사가 삼성전자다.
◇애플과 거래했던 사람들의 얘기=애플과 거래한 경험이 있는 기업의 고위 관계자들은 애플과의 거래에 대한 이야기에 익명을 전제로 답하기를 원했다. 애플의 비밀유지계약이 워낙 엄격하고, 치밀한 때문이다.
한 기업의 관계자는 이를 어길 경우 1회당 5000만달러의 위약금을 무는 것으로 계약을 맺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애플은 각국 내에서 자사와 관련된 뉴스나 정도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를 취합하는 보안요원 업무를 외주를 주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이들 보안요원들은 애플의 거래처뿐만 아니라 그 거래처의 하청업체들에게서도 '애플과 관련된 얘기'가 오가는지를 점검한다고 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우리가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경우 우리의 협력사나 관계사 누구에게도 애플 이야기를 하면 안되며, 집에 가서 아내에게조차 말하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게 간섭한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지나칠 정도로 비밀유지 계약에 집착하는 이유는 회사의 제품군이 다른 기업들처럼 다양한 것이 아니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 1년에 한 두개 정도의 신제품을 내놓는 특징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궁금증과 기대를 잔뜩 부풀린 후 '짠~'하고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데 미리 정보가 새어나가면 흥행에 실패한다"며 "스티브 잡스 때부터 까다롭게 보안을 유지해왔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또 다른 행태로 처음 국내에 아이폰을 들여올 때 구매자이자 갑인 KT에 "몇 대 이상 구매를 보장하라'는 '개런티' 조건과 마케팅 조건을 수용하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현대기아차 그룹이 애플과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비틀스처럼 강하거나', '빌 게이츠처럼 약점을 잡거나', '삼성전자처럼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애플은 거대할 뿐 관대하지도, 호의적이지도 않다는 게 한결 같은 목소리다. 애플과의 협력이나 힘겨루기에서 제 위치를 잡지 못하면 단순 하청 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이 비틀스나 빌 게이츠, 삼성전자 중 어떤 선택의 키를 쥐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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