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취재] 그놈 손에 낀 '비닐장갑'..최신 금융사기 수법.gif

배양진 기자 2021. 2. 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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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없애려 비닐장갑까지..최신 수법 4단계 정리
박 씨가 돈이 든 쇼핑백을 대출회사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에게 넘기는 모습. 범행은 CCTV가 바로 지켜보는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영상=노원구청 제공〉
지난 5일 오후 1시쯤, 박 모 씨는 현금 3270만원을 들고 노원구의 한 주민센터 앞으로 갔습니다.
싸게 돈을 빌려주겠다던 시중 은행이 대출을 진행하려면 일단 원래 있던 빚부터 먼저 갚아야 한다고 해서였습니다. 기존 대출을 먼저 갚으라는 것도, 현금을 가져오라는 것도 이상했지만, 어디에 확인 전화를 걸어 봐도 모두 그렇게 진행하는 게 맞는다고 했습니다. 평범한 청년 같았던 대출회사 직원은 말없이 영수증을 건네고 현금을 받아 돌아섰습니다. 손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현금 운송책의 손에 투명한 비닐 장갑이 보입니다. 코로나19를 걱정해서 꼈나 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사진=노원구청 제공〉

JTBC는 박 씨가 이렇게 전화 금융사기의 피해자가 되던 순간이 찍힌 CCTV 영상을 살펴봤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도 많던 주민센터 앞에서 대낮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상황 종료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취재진과 만난 박 씨는 자신이 "멍청한 짓을 했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그래도 용기 내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게 되길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씨가 겪은 '대면 편취형 전화금융사기' 수법을 4단계로 정리했습니다.

〈1단계-대출 상담 문자〉

박 씨가 받은 대출 상담 문자입니다. 코로나 정부지원 대출 승인 대상자로 선정됐다며 대출을 권유합니다. 금리는 누구라도 혹할 만큼 저렴합니다. 기존 대출을 더 싼 대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사다리차 기사가 직업인 박 씨는 사다리차를 사느라 진 빚의 이자를 줄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서민을 위한 대출을 홍보하는 듯한 문자. 하지만 실제론 서민의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 문자였습니다. 〈사진=제보자 제공〉

하지만 금융사에서는 전화나 문자로 대출 권유를 하지 않습니다. 특히 정부 지원 대출은 금융사 영업점에 직접 가거나, 소상공인 진흥공단 등 정부 산하기관 홈페이지를 통해야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출 권유 문자나 전화는 사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전화는 바로 끊고, 문자는 삭제해야 합니다.

〈2단계-앱 설치 권유〉

문자에 남겨진 전화번호로 대출 상담 신청을 한 박 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전화 상담원은 카카오톡으로 은행 앱 파일을 보낼 테니 설치부터 하라고 했습니다. 박 씨는 시중 은행 앱과 똑같은 모양이라 당연히 깔아야 하는 줄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 앱이 설치되는 순간부터 박 씨의 휴대폰은 박 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 씨가 거는 모든 전화와 주고받는 모든 문자, 통장 입출금 내용이 전화 금융사기단에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기범들은 박 씨가 대출회사로 전화를 걸면 대출회사 직원인 척, 은행으로 전화를 걸면 은행 직원인 척 전화를 받아 박 씨를 속였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새 이런 악성 앱이 설치됐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해당 금융기관에 직접 방문하거나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로 중복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출처를 알 수 없는 앱은 절대 휴대전화에 설치해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3단계-기존 대출 상환 요구〉

박 씨는 은행 직원(이라고 믿었던 사기범)에게서 대출 7천만원이 승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후 1시면 입금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시간 뒤 원래 돈을 빌렸던 대출회사 직원(이라고 믿었던 사기범)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렇게 추가 대출을 받는 건 계약 위반이라고 했습니다. 해결 방법은 기존 대출을 일부 갚는 방법뿐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마감일이니 1시 전까지 해결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박 씨의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사기범들이 본격적으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핑계는 다양합니다. 박 씨의 경우처럼 계약 위반이라며 위협하거나, 대출을 갚아야 신용등급을 맞출 수 있다고 꼬드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돈부터 내야 대출을 해주겠다는 요구는 무조건 사기입니다. 역시 해당 금융기관에 직접 방문해 문의하는 게 안전합니다.

박 씨가 사기범에게 건넨 현금 3270만원. 이 돈을 구하느라 박 씨의 아내는 연이율 17%짜리 빚 3천만원을 지게 됐습니다. 〈사진=제보자 제공〉
〈4단계-대면 현금 요구〉
사기범들은 대출 마감 시간이 급하니 현장에서 현금으로 돈을 지급해달라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대출회사 직원(이라고 믿었던 현금 운송 책)은 가짜 납부 증명서까지 건넸습니다. 손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사기범이 품 속에서 꺼낸 흰 종이는 가짜 납부 증명서였습니다. 〈영상=노원구청 제공〉
사기범이 건넨 가짜 납부 증명서. 비닐 장갑을 낀 탓에 지문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사진=제보자 제공〉

전화 금융사기단이 현금을 요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00만원 이상이 입금된 계좌에선 30분 동안 돈을 인출할 수 없습니다. 계좌 이체를 이용한 금융사기를 막기 위한 '지연 인출' 제도 때문입니다. 이걸 우회하기 위해 만든 방법이 직접 만나 현금을 받는 '대면 편취형' 금융사기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금융회사가 현금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대면 편취형' 전화 금융사기의 4단계. 현금을 건네주기 전까지는 아직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사진=JTBC 방송 화면 캡처〉

〈경찰 함정도 피해간 사기단…피해 예방하려면〉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아챈 박 씨는 은행, 경찰과 함께 역으로 함정을 팠습니다. 사기범이 1천만원만 더 내면 대출을 해주겠다며 추가 범행을 시도하자, 박 씨는 은행에서 미끼로 내어준 돈을 들고 만남 장소에 갔습니다. 주변엔 경찰이 매복했습니다. 범인을 잡나 싶었지만, 이들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기범은 오히려 박 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객님, 거짓말하지 마시죠. 돈 뽑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돈을 가져오셨죠?"

사기범은 해킹된 휴대전화로 박 씨의 통장 입출금 내용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출금 내용이 없는데 박 씨가 돈을 가져왔다고 하자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 것입니다.

전화 금융사기범들은 잡기도 어렵지만, 체포해 봤자 현금 운송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 범행을 지시한 '일당'에게로 흘러 들어간 뒤엔 되찾기도 어렵습니다. 수법을 정확히 파악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박 씨는 "이런 피해를 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사기 피해에 가장 취약한 건 '나는 안 당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한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전화 금융사기 피해를 막는 방법, 세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①싼 이자를 제시하는 대출 권유 문자나 전화, 사기일 가능성 높다
②대출 과정에서 먼저 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경우, 100% 사기다
③의심이 들 때는 영업점을 직접 찾아가거나 다른 사람 휴대전화로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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