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다시 잘 되길"..코로나 낙인 절망 끝 상인들 간절한 기도

정혜민 기자 2021. 2. 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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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부군제 몰린 상인들.."절실하니 찾게 돼"
"방역 협조했는데도 보상 없어..9시 통금도 풀어야"
5일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부군당에서 이태원 상인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 뉴스1/정혜민 기자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이태원이 잘 돼야 다들 잘 됩니다. 여러분 개인적인 바람도 비시고 이태원을 위해서도 빌어주십시오"

지난 5일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부군당에서는 이곳 지역 상인 10여명이 한데 모인 가운데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외국어와 외국인 일색인 이태원에서는 보기 드문 전통 제례였다.

부군당은 녹사평역에서 한남동 고급 빌라촌 방향 언덕배기에 있는 제사당으로 부군님 등 12명의 수호신을 모신 곳이다. 이곳은 서기 1629년(광해군 11년)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역사가 1000년이 넘었다는 주장도 있다.

상인들은 이날 코로나19로 상처받은 이태원을 보듬어 달라며 수호신들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이태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상권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상인들은 지난해 5월 이 지역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더니, 지난해 말부터 시행된 오후 9시 이후 영업제한 조치 이후부터는 도무지 운영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탄했다.

이날 제례에서는 맹기훈 이태원관광특구협회장이 먼저 절을 올렸다. 제단에는 각종 전과 떡, 과일, 돼지머리가 올려져 있었다.

절은 한 뒤 맹 회장은 "조상님께 '이태원 후손들 좀 도와주세요', '잘 되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다"고 말했다. 1963년생인 맹 회장은 이태원에서 나고 자란 '이태원 토박이'라고 했다.

맹 회장뿐 아니라 이태원에 터전을 둔 여러 상인들도 한마음이었다. 5년 넘게 클럽을 운영한 이석호씨(38·가명)는 "전염병 물러가고 좋은 일 많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동안 내 장사 하기 바빠서 이런 게 있는지 몰랐는데 (코로나19 직격탄 이후) 절실하니 어떤 미신이든 찾게 되더라"라며 "너무 오랫동안 집합금지를 당하니 너무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이태원에서 30년째 파티복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순자씨(64·가명)는 "60~70%가 외국인 손님인데 외국인들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이전 매장 4곳을 운영했는데 현재는 1곳뿐이라고 했다.

김씨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저 버틸 뿐"이라면서도 "그래도 인간이니까 기도의 힘을 빌어보려고 나왔다"며 애써 웃어 보였다.

이태원에서 3년간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하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9월 폐업했다는 최소현씨(가명·41)도 이날 특별히 부군당을 찾았다.

최씨는 "저는 최근에 폐업했지만 자영업자들 일이 남 일같이 않아서 여기 오게 됐다"며 "힘들어도 빚내서 버티는 젊은 자영업자들이 많다"며 안쓰러워했다.

그는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코로나가 끝나도 가게를 다시 열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폐업 후 최씨는 아침저녁으로 청소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경숙 이태원동장은 "이태원 상권 활성화를 기도했다"면서 "영업시간이 오후 9시까지로 제한됐는데 이태원은 그 특수성이 있어서 오후 9시까지만 하면 영업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푸념했다.

방역업체 대표인 이영호씨도 부군당에 방문했다. 그는 "핼러윈데이 때 마음을 졸이며 방역했는데 다행히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이태원이 살아야 용산구도 산다는 심정"이라고 했다.

강원래씨, 홍석천씨 등 이태원에서 장사하던 유명 연예인들도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자영업자 규제로 영업상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그룹 클론 출신 가수인 강씨는 지난해 말 자신이 운영하던 펍 스타일 바 '문나이트'의 운영을 포기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나이트는 1990년대 강씨와 같은 그룹 멤버 구준엽씨 비롯해 박남정, 이주노, 양현석, 이현도 등 춤꾼들을 배출했던 유명 클럽으로 강씨가 지난 2018년 동명의 이름으로 재개장한 바 있다.

방송인 겸 사업가 홍씨도 지난해 8월 자신의 SNS에 "이태원에서만 18년을 식당 하면서 보냈다"며 "금융위기, 메르스 등 위기란 위기를 다 이겨냈는데 이놈의 코로나 앞에서는 버티기가 힘들다"는 글을 게시했다.

맹 회장은 "이태원 상인들이 방역을 위해 정부에 열심히 협조하고 있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다"며 "회장으로서 상인들에게도 너무 미안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는 "이태원도 확진자가 다녀간 피해지역일 뿐인데 '이태원발 코로나'라는 말 때문에 너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탄했다.

맹 회장은 "이태원하면 '밤문화'인데 오후 9시에 문을 닫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반드시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례가 끝난 뒤에도 상인들은 부군당에서 이태원 상권 회복 방안을 거듭 고민했다.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활기를 잃은 이태원은 현실이었다. 부군당 인근 평소 줄서서 들어가던 이른바 '맛집'에서는 손님을 찾아 보기 어려웠다. 일대 상가 곳곳에는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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