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못 본 지 1년 되어가지만 "우야긋노" 의성 할매들은 쿨했다
“야야~, 코레나(코로나)가 심하다 칸다. 요게(여기) 오지 말고 마카다(모두) 집에 가마이(가만히) 있어라, 내는 개안타(괜찮다), 쌀 두 포대 보내놨다 잘 챙겨 묵으라(먹어라), 그래 냉제(나중에) 온나(와라).”
경북 의성군에 사는 민해송(81)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딸에게 설을 앞두고 “집에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지난해 추석 때도 딸에게 다음에 오라고 영상 편지를 보냈었다. 딸을 못 본 지 1년이 다 돼 간다. 민 할머니는 “자식 안 보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냐”라며 “그래도 세월이 좋아져서 전화로 얼굴도 보고 어떻게 사는지 보니깐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41.7%)이 국내에서 가장 높은 경북 의성군은 지난해 추석 노부모 1,800명이 먼저 자녀들에게 고향 방문 자제를 요청하는 영상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됐다.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부모들이 먼저 통 큰 결단을 한 것. “명절에 집에 오지 말라”고 자식들에게 선언한 의성군 80대 할머니들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4남매를 모두 서울로 보내고 홀로 사는 김귀분(88) 할머니와 네 딸을 타지로 보내고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민해송(81) 할머니, 두 남매 모두 대구로 내보내고 홀로 지내는 이경숙(80) 할머니가 설 명절을 앞두고 3일 한 자리에 모였다. 할머니들의 구수한 사투리를 살려 옮겼다.
지난해 추석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김귀분(이하 김)=아들이고 딸이고 아무도 못 와서 혼자 가마 있으이께네 아들 딸이 전화해서 나중에 온다카대.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지, 세월이 그러이께. 답답하고 그라믄 촌이니께 슬슬 나가서 한 바꾸 돌고 오고 그랬재. 내뿐 아이다. 온 동네가 쥐새꾸 한 마리 없이 조용하다카이.
민해송(이하 민)=스물 셋에 시집와서 처음으로 차례를 안 지냈다카이. 아들 내외야 같이 사니께 우리 먹을 건 쪼매 해묵고 치웠지. 딸들이 마카다 서울에 사는데 갸들이랑은 전화로 얼굴 봤어. 아이고 내는 개안타캐도 저그들이 못 와서 죄송하다고 그라디더. 저그들 탓도 아니고 세월이 요래 가지고 어쩔 수 없는기라.
이경숙(이하 이)=원래 우리가 작은집이라서 큰집에 가야 되는데 추석 때는 코로나 때문에 안 모였지. 그래도 추석 아래(전에) 남자들만 모이서 벌초는 했지. 그것도 시간되는 아들만 가서, 잔 한잔 올리고 내려오는 거로 끝냈지. 그라고 추석 때는 혼자 있는데 뭘 그리 해 무우(먹어)?. 가마 있었지. 옆집에나 들따보고.
자녀들이 못 와 서운하진 않았나요
김=우야긋노. 하나도 안 서운타. 세월이 요래 요상한데 내 보러 왔다가 코로나 걸리믄 우짤기고. 전화하고 그라믄 됐지. 보고는 싶지. 자식 안 보고 싶은 사람이 어딨노. 냉제(나중에) 오겠지.
민=암요, 저그들도 오고 싶어도 못 오는긴데. 보고 싶은 거야 어쩔 수가 없지. 그래도 명절이라고 서울에 있는 딸들한테 쌀 두 포대썩 보냈다. 그거 갖고 떡이랑 해서 명절 보내라고. 잘 받았다고, 고맙다고 전화하고. 그라믄 뭐 충분하재. 전화하믄 우찌 사는지 다 보이고, 그래라도 보니깐 너무 좋대. 잘 사는갑다 싶어서 마음이 놓이재.
이=명절 때 손주가 오재, 그라믄 문에 크다한(커다란) 게 쑥 들어오믄 그리 좋은기라. 손주 못 봐서 아쉽지 뭐. 아들이 못 온다고 용돈 부쳤다카대. 아이고 은행도 안 가고 집에서 컴퓨터로 보낸다 하대. 희안하다 싶더라카이. 확인도 못 해봤어. 우리는 은행 안 가면 돈도 못 찾고, 보내지도 못한다. 세월이 좋아져서 전화하고, 용돈도 보내주고 뭐 그라믄 자식 도리는 다 하는기라. 코로나 때문에 못 오는 건데 부모가 그거 가지고 서운하다 하면 안 되지. 내는 전화를 너무 해가(해서) 탈이다.
"상 차리고 이 집 가서 떡국 먹고, 저 집 가서는 다시 밥해서 먹고 그랬지. 음식은 그때 마이(많이) 해서 넉넉하게 나눠 먹었지. 명절이면 빈손으로 안 보냈지. 마이 해놓고 나눠먹는 게 인심인기라."
예전 명절은 어떻게 지냈나요
김=말도 못하게 바빴지, 가족들이 한둘이가? 온 동네가 벅적벅적 살았지. 아들이고 며느리고 다 한복 차려 입고 큰집부터 해서 동네를 다 돌았지. 이 집 가서 제사 지내고, 저 집 가서 제사 지내고 그랬을 때다.
민=우리도 돌아가면서 여짜(이쪽) 갔다가 저짜(저쪽) 갔다가 온데 다 갔지. 처음에 시집오니까 아들만 9형제라. 며느리에 손주들까지 하고, 5촌까지 마카다 모이면 한 30명은 됐지. 온 가족들이 서로 무시로(쉴새없이) 절을 했다카이. 어른들은 방에서 하고, 그 밑에는 마루에서 하고, 아들(아이들)은 마당에 멍석 깔아놓고도 했응께. 아이고 그 식구들 다 멕이고, 조상들까지 챙길라믄 무신 정신이 없는기라. 그래가지고 불 때고, 솥도 다 꺼냈지. 다 먹이려면 찌짐(전)도 10갱이(광주리)는 넉넉히 해야재. 그때는 참 많이 했다. 찌짐 구울 때가 없어서 밥 하는 솥뚜껑에다가 해서 팔뚝이 데이기도 많이 데였다. 프라이팬 나왔을 때 너무 좋더라카이.
이=허리 한번 못 피고 찌짐을 구웠다카이. 그래도 부족하다고 손에 잡히는 대로 뭐 만들었지. 두부도 만들어 묵었지. 떡도 다 집에서 해서 묵고. 마당에 불 피워놓고 고기도 삶고. 그렇게 모여가지고 뭐 할기고? 상 차리고 이 집 가서 떡국 먹고, 저 집 가서는 다시 밥해서 먹고 그랬지. 음식은 그때 마이 해서 넉넉하게 나눠 먹었지. 명절이면 빈손으로 안 보냈지. 마이 해놓고 나눠먹는 게 인심인기라.
요즘 명절 문화가 많이 달라졌어요
민=옛날처럼 그리 안 해도 되지, 세월이 달라졌으이께, 코로나 이전에도 아들도 그라고, 며느리도 그라고, 음식 작게 차리라고 난리다. 남으면 아무도 안 먹는다고. 요새는 옷도 흔코(흔하고), 밥도 흔하다 아이가(아니냐).
김=옛날에사(는) 묵을 게 없으이께 명절에 해뒀던 거 두고두고 먹었재. 요새는 안 그래. 먹을 게 너무 많아서 탈이재. 세상이 달라졌으이께 그래 맞게 살아야지. 그래도 명절에 음식을 좀 넉넉하게 해서 뒀다 먹고, 이웃들이랑 나눠 먹고 그라믄 좋지. 근데 그걸 아들한테 내사(가) 뭐하러 말할끼고. 그럼 자식들이 싫어하재. 자식들이랑 잘 지내고, 자식들이 편안하게 살라고 다 하는 건데 자식들이 불편하고 싫어하면 우리도 하기 싫다.
이=요새는 세월이 좋아져가 떡이고 찌짐이고 사서 하믄 그처럼 편한 게 없어. 내사(가) 돌아보니까 옛날에는 다 자식들, 가족들, 이웃들 생각해서 그리 고생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 힘들었는데 그래도 마음은 그리 안 힘들었어. 요새는 마음이 힘들재. 자식들이 잘 사나 맨날 그 고민이지. 차례 안 지내도 조상이 꿈에 나와서 ‘차례 와 안 지내주노’ 안 그라던데, 다 지나간 일인기라. 고마 매음이 편해야 되는기라.
코로나 때문에 명절 풍습이 망가진다는 걱정도 있어요
이=아이고 내 젊었을 때도 그랬다. 이 집은 이리하고 저 집은 저리한다 캤다. 저라믄 조상이 해코지 한다카고, 후손들한테 손가락질도 하고 그랬다. 전통이 뭐고? 그 시대에 맞춰 사는 게 전통 아이가. 우리야 옛날에 다 그래 살았으니까 그래 산 거고, 요새 아들은 또 저그 시대에 맞게 살아야재. 옛날처럼 그래살믄 요새는 또 이상하다 칸다.
민=암, 세월이 좋아져가 전화로 얼굴도 자주 보고, 차 타고 오면 금방 오지. 옛날에는 딸은 출가외인이라 했잖아. 그래 갖고 가지도 못했지. 코로나에 얼굴을 못 봐서 그렇지 뭐 마음이 없는 건 아이라. 자식들이 안전한 게 제일이라. 명절을 왜 보내노?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는 기지. 부모들은 고마 자식들이 안전하고, 잘 지내는 게 최고다.
이=세상이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혼자 ‘부모한테 가보까’ ‘자식들이 왜 안 오노’ 하는 걱정을 뭐하러 하노. 다 헛걱정이재.
"고마 시대에 맞게 보내믄 된다카이. 이 나이 되니이까는 명절 별로 안 중요하다카이. 부모 걱정 안 시키는 게 최고다"
앞으로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
김=고마 시대에 맞게 보내믄 된다카이. 이 나이 되니까는 명절 별로 안 중요하다. 옛날에 많이 해서 고마 그런 거 생각하고 있는 기지. 가족들 오믄 얼굴이나 보고.
이=우리가 오지 말라고 하는 기 아이고(아니고), 명절을 없애자는 것도 아이고, 가족간에 얼굴을 많이 보고 사는 게 좋지만 억지로 명절이라고 무리하게 찾아오고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거지. 다 큰 자식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돼.
민=조상들 모시고, 이웃 돌보고, 가족끼리 잘 지내는 게 왜 안 중요하노. 그런 게 중요하지. 근데 다 같이 잘 살라믄 지금은 좀 덜 돌아다니고 그래야 안전하다 안카나. 코로나 끝나면 또 다들 모여서 잘 지내긋지. 오래 살아보니 다 순리대로 살게 돼 있더라.
설에 덕담 한 마디씩 해주세요
김=너그들 잘 살아라. 너무 부모한테 잘 할라고 안 해도 된다. 내 혼자 잘 있을테이께.
민=부모 걱정 안 시키는 게 최고라. 그저 부부가 사이 좋게 자식들 잘 키우고 오순도순 잘 살믄 됐지.
이=코로나에 건강 잘 챙기고 조용해지믄 온나. 명절은 냉제 해도 된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의성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처음엔 교도소 같았죠" 일년 중 160일 감금 생활하는 공무원
- "공정 해쳤다"는 김은경 판결... 靑은 "블랙리스트 없다" 빗나간 해명
- 송중기 "승리호의 태호, 이혼 후 자포자기 상태의 나 같아"
- '나훈아 신드롬' 이을까... 이번 설엔 ‘조선팝’ 얼쑤
- "文정부, 환경부 장관 몫 자리까지 청와대가 좌지우지"
- 명절마다 눈칫밥 먹는 취준생, 6개월에 300만원 받을 수 있다
- 대작이 없어도 극장 갈 일은 있다… 그래도 설이니까
- 석탄으로 돈 벌려다 '아름다운 로키' 망가뜨릴 뻔한 캐나다
- "음식이라도 나눠먹자" 코로나 여파 신풍속도 '명절 음식 대이동'
- 이재영·이다영 '학폭 논란' 사과... "깊이 사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