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코로나 시대, 당신은 무엇을 먹고 있는가?
우리 사회가 깊이 있게 봐야 할 화두를 앞서 제시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혜안을 찾습니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한다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코로나의 몇 안 되는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지난해 SBS D포럼(SDF2020)의 연사 가운데엔 '코로나'와 '음식'이라는, 선뜻 관련성을 생각해내기 어려운 두 소재를 통해 훌륭한 통찰을 보여준 연사가 있었습니다. 지난 1984년부터 30여 년 간 뉴욕타임즈의 음식 전문기자,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한 마크 비트먼(Mark Bittman)입니다.
비트먼은 UC버클리대학교 우수 펠로우와 참여 과학자 모임(UCS) 펠로우를 지냈고, '미국 요리계의 아카데미상'으로도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상을 6차례 수상한 바 있습니다. 현재는 컬럼비아대학교 메일먼공중보건대학원의 식품정책 특별자문역으로, '식품, 공중보건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제목의 강연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2007년에 진행했던 테드(Ted) 강연 '우리의 음식은 무엇이 문제일까? What's wrong with what we eat'는 잘못된 식생활이 지구를 어떻게 위험에 빠트리는지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져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해 한국의 청중들에게 들려준 강연엔 자기 분야에서 오랜 내공을 쌓아온 전문가의 면모가 잘 드러났는데요, 코로나 19라는 예상치 못한 재난을 계기 삼아 우리 사회가 만성적으로 앓고 있었던 지병-영양실조, 영양 불균형-과 파생되는 여러 과제들을 되돌아보는 내용이었습니다.
* 강연 영상 다시 보기를 원하는 분들은 SDF2020 홈페이지
[ https://www.sdf.or.kr/2020/?lang=kr ]나 유튜브
[ https://youtu.be/Lym7H7Wkpcg?t=1 ]를 이용해 주세요.
1. 신데믹(syndemic)의 시대…코로나만 위험한 게 아니다
we are looking global syndemic, a cluster of pandemics. : COVID-19 is only the most recent and of course currently the most energetically discussed.
비트먼은 우리가 '신데믹(*두 개 이상의 유행병이 동시 혹은 연이어 집단으로 나타나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사태를 악화하는 것)'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코로나 19는 그중 가장 최근 발생했고, 이목이 집중되는 팬데믹일 뿐이라는 건데요. '코로나의 치명적인 위험성에 대해 다소 안이하게 접근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비트먼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사실 가장 위험한 팬데믹은 사회 내 여러 대규모 변화가 있어야만 종식시킬 수 있는 종류의 것입니다. 바로 잘못된 식습관으로 발생하는 만성질환(diet-related chronic disease)인데요. 주요 학술지에서 볼 수 있듯이 의학계에서도 최근 영양실조 같은 영양 불균형을 더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영양실조는 단조로운 식단, 즉 지나치게 적은 종류의 음식과 열량을 섭취하는 것이 유일한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유형의 영양실조도 있습니다. 지나친 고열량, 특히 가장 영양가 없는 음식을 일컫는 '반-영양식품(anti-nutritious food)'을 먹는 것인데요. 흔히들 정크푸드(junk food)라고 부르는 식품입니다.
정크푸드는 20세기에 말 그대로 '발명(invented)'된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입니다. 열량이 지나치게 적거나, 영양가 없이 열량만 많은 음식들로 인해 발생하는 두 가지 유형의 영양실조는 오늘날 수십억 명, 짐작하건대 세계 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중 저 영양 식품을 과다 섭취해 발생하는 영양실조는 전 세계 만성질환 발병을 증가시켰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코로나19와 같은 우연적 감염병(opportunistic infections)에 취약해진 겁니다."
"Soil must be replenished"
비트먼은 농업의 핵심 목표는 토양의 보존이며, 따라서 토양이 갖고 있는 기본 성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토양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식품저장고(pantry)처럼 사용 후 다시 보충돼야 하지만, 인류는 그저 닥치는 대로 토양을 사용하기에만 바빴습니다. 수천 년 전 모든 인간이 땅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엔 토양을 최적으로 관리하는 자들만이 안정적인 수확량 확보와 문명의 번성이라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수확량이 저조했고, 농사를 망쳤으며, 굶주림과 강제 이주, 심지어 사회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토양 황폐화가 문명사회의 직접적인 붕괴 원인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취약하게 만든 것만은 사실입니다. 새로운 유형의 영양실조는 이처럼 땅과, 땅을 경작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트먼은 이 대목에서 친환경 비료인 구아노(guano)를 사례로 언급합니다. 구아노는 바다새와 박쥐의 배설물로, 질소뿐 아니라 식물의 핵심 영양소인 칼륨과 인산이 다량 함유돼 있습니다. 구아노는 페루 서쪽 바다에 위치한 군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됐는데,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급락할 때까지 세계 곳곳으로 운송됐습니다. 전통적인 토양 보존법으로는 이른바 '돈 되는 '농사를 안정적으로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기에 구아노의 사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결국 수백억 년에 걸쳐 축적된 자원이었던 구아노는 불과 50년 만에 고갈됐습니다.
영미의 학자와 자본가들이 주축이 된 '산업형 농업 옹호론자들'은 질소를 대기에서 추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 독일의 프리츠 하버(Fritz Haber)는 공기에서 질소를 추출해 수소와 결합시켜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의 암모니아를 개발해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을까요? 왜 당시 사람들은 재생 농업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을까요? 이윤을 위한 세계 무역, 즉 '자본주의'가 원인이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산업형 농업을 탄생시켰고, 사람들은 이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 농작물을 재배합니다.
The shift to factory farming, and the elimination of small-scale farmers
공장식 농업으로의 전환은 토지 강탈, 노예제도와 제도적 인종차별, 그리고 농가 근로자 착취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고수익 농사는 대부분 자신은 일하지 않고 일꾼을 부리는 대농들(large landholders) 사이에서만 가능했고, 이러한 착취는 소위 '지배 계층'이라는 통념이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일어났습니다. 한 가지 작물을 대규모 땅에서 재배하는 게 가장 돈이 되기 때문에, 농산물은 점점 더 넓은 땅에서 대규모로 생산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농업 방식을 용이하게 한 것이 바로 농기계입니다. 농기계 개발은 곧바로 돈벌이 사업이 됐지만, 소규모 농가가 구입하기엔 너무나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이밖에도 과도하게 비싼 '혼합 종자', 병충해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생물에게도 해로운 '농업용 화학물질'의 개발이 공장식 농업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대부분의 전 세계 소농들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소농의 몰락과 함께, 그들의 공동체적이고 건강한 삶의 방식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처음 개발된 공장식 축산 모델은 '보충되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은 생산 자재(unreplenishable and unsustainable resources)'를 이용해 매해 수백억 마리의 가축을 인위적으로 길러냅니다. 이 과정에서 가축들은 끊임없는 고통 속에 살고, 죽임을 당한 후에는 영양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질 낮은' 육류와 유제품이 됩니다. 인류는 이들 가축의 사료에 필요한 대량의 작물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효율'만이 최우선으로 고려됐습니다. 이제 옥수수는 옥수수 그 자체를 먹기 위해서가 아닌, 동물 사료와 정크푸드, 에탄올 형태로 휘발유를 만들기 위한 핵심 재료를 목적으로 재배됩니다. 이런 방식의 생산 행위가 기후 위기를 앞당기고, 수백만 생물 종의 완전한 멸종을 앞당기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여기에 더해 농작물의 영양소 질 역시 빠르게 하락했습니다. 때문에, 세계적으로 만성질환 발병률이 높아졌으며, 취약 계층의 면역력은 더욱 약해져 코로나바이러스를 비롯한 여러 감염병에 쉽게 노출됐습니다.
The way we produce food endangers everyone
세계 인구의 3분의 1 정도, 그러니까 음식을 언제든지 쉽게 먹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식량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 전체로 확장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결국 현재 전 인류가 겪고 있는 식량 체계의 문제들은 우리 삶의 필수인 '영양 섭취'의 핵심 원천을 글로벌 수익 센터로 만들어버린 대가입니다. 오늘날 식량 체계는 공중보건의 위기를 야기했고, 가장 심각한 실존적 위협인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산업형 농업의 악영향은 빈곤층에게 더욱 위협적입니다. 식량 생산과 제조, 유통 방식 때문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건 과장된 말이겠지만, 불평등의 여러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할 일은 생태학적 원칙을 접목한 농법, 즉 토양의 자연 회복력을 보다 잘 이해하며 전통적인 토양 관리법을 따르는 농업을 진흥하는 겁니다. 산업형 농업과 정반대에 위치한 이 방식을 '농업생태학(agroecology)'이라고 부릅니다. 농업생태학의 핵심은 농산물의 재배, 가공, 유통 등이 지구의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들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농업생태학에 따르면 식량 생산은 단순히 농사 기술의 연속이 아니라, 철학이자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 사회 정의를 위한 다문화적 정치적 활동입니다.
전 세계 농업인은 도시화, 산업화, 효율성, 대규모 경작 등을 강요하는 개발의 요건을 거부함과 동시에, 농산물 공급망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유지 또는 재 확보 하는 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의 대안은 식량 주권입니다. 정부가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에게 땅을 주고, 농업인은 농사로 생계를 잇고 땅을 관리하는 동시에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겁니다.
농업과 식사는 정치적인 행위(political acts)입니다. 모두가 잘 먹으려면 농사를 잘 지어야 합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우리 사회가 평등하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이 큰 그림을 보는 게 중요합니다. 내 일상과 공동체에서 소소한 변화부터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평소의 식습관, 학교 도시락 반찬, 긴급 식량 지원, 정크푸드에 관한 규제, 식품을 사고 조리하는 방법, 지역의 토지 개혁 및 재분배, 조상 때 부당하게 뺏긴 땅의 반환, 깨끗한 물과 공기에 대한 현 규정을 개선하고 시행할 정치인과 일하는 방식, 농약 사용 축소 안 제정, 재생 농업인 또는 공장식 농업 반대 운동가 지원, 지역 농가 지원으로 농업인과 소비자 간 거리 단축 등의 변화를 실천해나가는 겁니다.
이런 변화들은 식습관 관련 질병을 예방하고 토양 오염을 방지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 직접적인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좋은 농업이란 여성과 원주민과 노동 착취당하는 모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토지 개혁, 공평한 자원 배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 저렴한 식품, 올바른 영양 섭취, 동물 복지를 의미합니다. 공정하고 친환경적이며 값도 싸고 영양도 풍부한 식량을 생산하려면 우리 사회가 평등하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타협할 여지는 없습니다.
* 강연 영상 다시보기를 원하는 분들은SDF2020 홈페이지
[ https://www.sdf.or.kr/2020/?lang=kr ]나유튜브
[ https://youtu.be/Lym7H7Wkpcg?t=1 ]를 이용해 주세요.
** SBS 보도본부 미래팀원들은 SBS의 사회 공헌 지식 나눔 플랫폼 <SBS D포럼>을 중심으로, 연중 새로운 콘텐츠들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들을 전하는 뉴스레터 <SDF 다이어리>도 그 중 하나인데요. 매주 수요일, 지혜를 모으는 담론의 장이 펼쳐집니다. SBS 미래팀의 취재파일을 미리 접하고 싶은 분은 SDF 다이어리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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