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의료진 떠나는데 병상만 늘려"..전담요양병원 '무용론'

허고운 기자 2021. 2. 1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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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병상 충분..탁상행정으로 기존 입원환자 피해만 키워"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곡동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 앞에서 입원 중인 환자의 보호자들이 '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 강제지정 및 강제퇴원 반대 보호자 발대식'을 하고 있다. 2021.2.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정부가 설립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이 병상 확보만을 위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된 곳의 대다수 의료진이 사의를 표해 파견인력만으로는 효율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가동 중인 전담 요양병원인 강남구 느루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인력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1명밖에 없다. 이 전문의가 하루 종일 진료를 하며 야간 및 휴일 업무는 원장인 한의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 병원에는 원래 원장 외에 전문의 2명과 한의사 1명이 더 있었으나 전담 요양병원 지정 이후 전원 사직했다. 현재 근무 중인 전문의는 기존 인력의 이탈 이후 충원됐다. 간호사들도 모두 사직해 중앙사고수습본부 파견 인력으로 운영 중이다.

또 다른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된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이 병원의 의사 13명과 간호사 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8%가 전담 요양병원 지정시 사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문주 행복요양병원 원장은 "의료진의 경우 굳이 전담병원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급여와 업무를 보장받는 직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며 "환자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다들 있지만 계속 보살펴온 환자가 병원을 떠나는 마당에 코로나19라는 위험을 감당할 동기부여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설 연휴 이후인 오는 15일 전담 요양병원으로 재개원할 예정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에도 기존 의료진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10명에 달했던 의사들 중 남은 이들은 4명가량이며 간호사 대다수도 병원을 떠났다.

다만 미소들병원에는 근무 의사를 밝혔음에도 일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하는 간호사들도 있다. 이들은 병원이 중수본 파견 인력을 받으면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접고용 인력을 줄이려 한다고 보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줄 서 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444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2021.2.1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의료계에서는 기존 인력보다 파견 인력이 많은 전담 요양병원이 제대로 운영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개별 병원의 장비, 시스템은 조금씩 다른데 단기 교육만으로 실전에 투입될 경우 효율성이 높지 않으며 특히 각지에서 갑자기 모인 간호사들이 팀워크를 보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요양병원 근무 경험이 있는 전문의 A씨는 "요양병원 간호사들은 3교대 근무를 하며 환자 상태를 원활하게 소통해야 하는데 소통체계가 단기간에 형성되기가 쉽지 않다"며 "자칫 잘못하면 환자안전에 위험요소가 돼 전담 요양병원이 없을 때마다 진료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충분한 전담 요양병원 병상을 확보했음에도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집행으로 기존 입원환자들이 고통을 겪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느루요양병원은 68병상 규모이며 병상 가동률은 10%대에 머무르고 있다. 운영 예정인 미소들요양병원은 약 200병상 규모다.

장문주 원장은 "병상이 당장 부족하지 않고 미소들요양병원의 파견 간호사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추가 병상 확보를 위해 당장 우리 병원 입원 환자 260여명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행복요양병원은 5차례가 넘는 반대 입장 표명에도 전담 요양병원 지정을 통보받은 상태다. 코로나19 환자를 받기 위해 15일까지 기존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라는 협조 요청도 받았으나 응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 요청은 법적 강제성이 없다.

이에 박유미 시민건강국장은 9일 환자 보호자들과 면담을 가졌고 앞으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병상을 비우라는 요구를 연기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와 서울시는 전담 요양병원 지정 취소보다는 보호자 설득에 방점을 두고 있어 원활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행복요양병원 환자 보호자인 B씨는 "입원하신 분은 평균 2년 이상 이곳에 머무르고 있고 60%는 치매를 동반하고 있어 환경이 변하는 것만으로도 질환이 상당히 악화될 수 있다"며 "몇 년을 함께한 의료진, 간병인, 영양사 등과도 계속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속 전문의 C씨는 "애초에 요양병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료하는 곳이고 코로나19는 급성기 질환이라 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이란 말 자체에 모순이 있다"며 "전담 요양병원을 서두르는 것은 요양병원 관련 코로나19 사망자 급증에 따른 비판적 여론을 과도하게 의식한 행보로 보이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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