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 중"인 바이든 대북정책은? 정의용 발언엔 반박, '한일 이견'에 우려
"불량배" "미친 개" 비난 주고받았지만 당선 후 조용
바이든 행정부, 출범 20여일 지났지만 "대북정책 여전히 검토"
文정부는 '싱가포르 합의' 강조하며 "조율 가능하다"
美, "김정은 비핵화 의지 있다" 발언은 바로 반박
"미국은 여전히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4일(현지 시각) 한 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9년 1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불량배"라고 불렀고, 이에 북한도 당시 바이든 후보를 "미친 개"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대응이다.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이 미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만 하더라도,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되돌아가고 강경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김정은은 폭군"이라고 한 토니 블링컨이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이런 분석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20여일이 지나도록 미국의 대북정책은 여전히 '검토 중'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정립될 지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한국과의 같은 입장",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일과 긴밀히 협력하지 못할 가능성이 우려" 등 최근 미국에서 나온 3가지 발언이 그것이다.
◇"한국과의 같은 입장"…해석엔 차이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통화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의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면서 "한국과 공통 목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한국과의 같은 입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 발언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실패한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합의를 계승할 리가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이제껏 추진하고 있었던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한미간 이견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백악관의 발표를 보면, 한미간 다소 온도차가 드러난다. 청와대 발표에 있었던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된 당사국인 한국 측의 노력을 평가했다"는 내용은 백악관 발표에 없다. 백악관은 양 정상이 통화에서 "대북 문제를 긴밀히 조율하기로 했다"고만 발표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日과도 협의
미국의 향후 대북정책 방향은 문 대통령의 통화보다 일주일 앞서 이뤄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에서 더 많은 단서가 나왔다.
백악관은 양 정상 통화 후 보도자료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필요성을 두 정상이 함께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보다 완화된 표현으로, 2018년 6·12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합의서에 담긴 내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쓰던 표현인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취임 첫날인 지난 9일 '싱가포르 합의를 기반으로 한 미북대화 재개를 위해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겠느냐'는 질문에 "최근 한미 간에 여러 가지 어젠다가 있지만, 한미 간에는 기본적으로 입장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어 "동맹관계가 굳건하기 때문에, 다소 상이한 의견이 있더라도 조율에 크게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와 정상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 말은 이 같은 전망의 근거가 된다.
◇"한·일과 긴밀히 협력 못할 가능성 우려"
그러나 이 같은 바이든 대통령의 표현 변화가 미국이 새 대북정책을 마련할 때 한국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저 바이든 대통령이 대북정책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는 중일 뿐이라는 것이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달 31일 미 NBC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대북정책에 대한 전반적 검토를 국가안보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수단에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인센티브 뿐만 아니라,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 조율된 추가 제재 가능성도 포함된다. 한국도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서야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9일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또 "미국과 동맹을 안전하게 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채택할 것"이라며 "이는 북한 상황에 대한 정책 검토로부터 시작되며,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잠재적인 미래 외교를 위한 지속적 압박 옵션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또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관여가 늦어질 경우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핵·미사일 시험에 나설 것을 우려하느냐'는 질문에 "우리의 파트너인 한국, 일본과 긴밀히 협력하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욱 우려된다"고 답했다. 북한의 도발보다, 한·일이 이견을 보이고 긴밀히 정책 조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견은 이미 최근 한 차례 노출됐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사가 아직 있다"고 말하자, 미 국무부가 곧바로 반박한 것이다. 국무부는 지난 5일(현지 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 논평 요청에 "북한의 불법적인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고급 기술을 확산하려는 의지는 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고 지구적인 비확산 체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핵·미사일을 확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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