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리뷰]누구를 위한 '동맹중시'인가..호주의 타산지석
'안미경중' 같지만 지정학적 여건은 판이..호주는 英연방 등 뒷배
'호주 따라 하기' 위험천만..절친 뉴질랜드도 중국 문제에는 신중
바이든 인·태전략 예의주시할 필요..캠벨 "역내질서에 중국 끌어들이자"
미중 전략경쟁으로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미국이 든든한 뒷배가 돼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해리슨 대사의 말은 오히려 정반대의 쓰린 기억을 상기시킨다. 미국은 동맹국 한국이 2016년 사드(THAAD) 사태로 중국의 괴롭힘을 받고 있을 때 뒷짐을 졌다.
당시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뿌리가 같은 바이든 정부 출범은 '연루'와 '방기'라는 동맹의 딜레마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견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고 '동맹 중시'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한국에 대한 동참 압박도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동맹에 이끌려 원치 않는 미중 대결에 휩쓸릴 가능성(연루)도 우려스럽지만, 사드 사태 때처럼 정작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방기)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사드 사태 때 외면한 미국, 동맹의 '방기와 연루' 딜레마 각인
양국관계는 호주가 지난해 4월 중국에 코로나19 발원지 조사를 요구하고 중국은 쇠고기 수입 중단으로 맞대응하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후 양국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문제나 호주 군대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학살 같은 서로 민감한 치부까지 건드리며 외교·안보 문제로 확전 양상이다.
호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안미경중'(安美經中) 국가다. 안보는 미국의 도움을 받지만 경제는 중국 의존도가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호주의 전체 수출액(약 3900억 호주달러) 중 대중국 수출은 38.1%에 달했다. 최근 4년간 호주의 중국인 유학생은 전체의 1/4을 차지할 정도로 여러모로 중국 비중이 크다.
그런데도 '용감하게' 중국 패권에 맞서는 모습은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비슷한 처지인 한국에도 상당한 자극이 되고 있다.
때문에 국내 일각에선 우리도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확실한 입장을 밝힐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 이상 좌고우면하면 미중 양측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동원된다.
◇'안미경중' 같지만 지정학적 여건은 판이…호주는 英연방 등 뒷배
무엇보다 호주는 앵글로색슨 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일원으로 막강한 후광을 업고 있다.
중국 견제의 '총대'를 멘 배경이기도 하지만 미국 주도 4개국 안보협의체(쿼드·Quad)의 한 축을 맡고 있기도 하다.
5년 전 사드 사태 때 유일 동맹국인 미국마저 외면하고 외톨이 신세였던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지정학적으로도 호주는 중국의 이웃이라 하기엔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한국과 달리 중국과 역사·영토 분쟁도 겪은 적이 없다.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치명적 약점은 호주와 아예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다.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한국은 싫든 좋든 주변국의 비위를 맞추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 측면에서도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다. 호주는 그래도 중국에 최소한의 반격 카드가 있지만 한국은 별다른 카운터펀치가 없다. 중국이 쉽게 수입 대체할 수 있는 수출산업구조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9년 중국의 철광석 수입 중 호주산 비중은 62.2%이며 중국으로선 적어도 단기간에는 대체품을 찾을 수 없다.
때문에 최근 홍콩 언론에 따르면 강력한 수입 규제에도 호주의 대중국 수출액은 철광석 가격 상승에 힘입어 평년 수준을 유지했다.
◇'호주 따라 하기' 위험천만…절친 뉴질랜드도 중국 문제에는 신중
호주의 중국과 '맞장 뜨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호주의 정치적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호주는 현 스콧 모리슨 총리 집권 이전까지만 해도 미중 간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유지해왔다.
케빈 러드 전 총리는 세계 주요국 정상 가운데 유일한 중국어 구사자라는 점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친중 정책을 펴기도 했다.
그런데 모리슨 총리는 점증하는 호주 내 반중정서 속에 중국과 이념적이고 대결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이는 중국과 호주의 갈등이 구조적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이며, 호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호주가 하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호주의 '절친'이자 파이브 아이즈 동맹인 뉴질랜드도 중국 문제만큼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호주 사례의 독특함을 잘 보여준다.
◇바이든 인·태전략 예의주시할 필요…캠벨 "역내질서에 중국 끌어들이자"
김경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국제규범과의 충돌, 원칙과 정책 간의 괴리가 있으며 쿼드(Quad)가 다자안보협력체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지역대화체로 유지될 것인지는 미 행정부 내에서도 입장 혼선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국내 언론이 별로 주목하진 않았지만 '아시아 짜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미 백악관 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의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그는 트럼프의 중국 배제 전략과 달리 역내 질서와 정책 결정에 중국을 끌어들일 것을 주장했다.
그는 또 "역내 어느 국가도 두 초강대국 사이에 양자택일을 강요받길 원치 않는" 사실을 지적했고, 모든 사안을 포괄하는 대 연합체 구성보다 그때그때 사안별로 만드는 게 낫다고 피력했다.
캠벨 조정관은 지난해 10월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선 미중관계를 '냉전'으로 규정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머지않아 윤곽을 드러낼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이 일부 예상처럼 대중국 강경 일변도로 귀착될 것이라 섣불리 단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바이든 정부의 '동맹 중시' 공약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동맹국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뜻이 된다. 그렇지 않고 동맹을 중국 포위 전략의 '동원' 대상쯤으로 여긴다면 트럼프식 일방주의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바이든의 미국이 한국을 더 압박해올 것이란 지레짐작이다. 스스로 협상력을 낮추는 패배주의적 발상이자 불길한 자기실현적 예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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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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