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탄핵' 미국에도 있었지만.."집단린치 끼기 싫다"

김종훈 기자 2021. 2. 1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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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미국 법조계 뒤흔들었던 데이비드 브락 뉴햄프셔 대법원장 탄핵소추 사건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뉴스1

뉴햄프셔 대법관 210년 만에 탄핵소추
2000년 7월 데이비드 브락 뉴햄프셔 주 대법원장이 탄핵소추됐다. 뉴햄프셔 대법관이 탄핵심판에 회부된 것은 1790년 이후 2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1790년에는 우드버리 랭던 대법관이 직무태만으로 탄핵소추됐다. 랭던 대법관은 심판 전 사임했다.

브락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는 크게 4가지였다. 먼저 13년 전 주 상원의원이 관련된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고등법원 판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문제의 의원은 공화당 상원 의원인 에드워드 듀퐁이었다. 사업가였던 듀퐁 의원의 석유회사가 계약 문제로 분쟁에 휩싸여 있었다.

브락 대법원장은 고등법원 판사와의 통화에서 듀퐁 의원이 판사 급여인상 법안 통과를 도와줄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브락 대법원장은 고법 판사와 통화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부인했다.

다만 고등법원 서기관에게 사건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전화를 한 적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 전화통화에 대해 브락 대법원장은 "위태로운 일이긴 하지만 사법행정가로서 수행하는 업무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탄핵사유는 스테판 세이어 대법관의 이혼 소송에 부당 관여했다는 것이었다. 세이어 대법관의 이혼 사건은 전처의 상소로 뉴햄프셔 대법원에 계류돼 있었다. 이때 브락 대법원장이 이 사건에 관여할 상소위원회 예비위원 목록을 알려줬고, 세이어 대법관은 이중 한 위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송사에 휘말린 판사가 있을 경우, 그 판사 앞에서 그 사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법원 서기관이 검찰에 제보를 넣었고 진상조사가 개시됐다. 세이어 대법관은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의혹을 인정했지만 브락 대법원장은 세이어 대법관이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증언하고 있다며 부인했다.

세 번째는 사건에서 제척된 판사들의 의견을 심리에 반영했다는 것이었다. 퇴임한 윌리엄 존슨 대법관은 재직 당시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관행이었다고 진술했다. 마지막 탄핵소추 사유는 위증이었다. 주의회 하원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특정 문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브락 대법원장은 착오가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랬다면? '재판개입' 맹비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브락 대법원장이 받은 혐의들은 '재판개입' 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광우병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맡고 있었던 신영철 전 대법관은 단독판사들에게 "촛불집회 참석자들에 대한 재판을 원칙대로 신속하게 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가 재판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에서 재판개입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임성근 부장판사가 재판개입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혐의를 쓰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통합진보당 관련 사건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임 부장판사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등 사건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재판 중이다. 임 부장판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임기만료로 퇴임을 기다리던 중이었으나, 국회의 탄핵소추로 탄핵심판에 회부됐다.

"집단 린치에 낄 수는 없다" 소신 투표…법관탄핵 결과는?
미국의 법관탄핵 절차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당시 뉴햄프셔 주 헌법에 따르면 탄핵소추권은 주의회 하원이 갖는다.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상원에서 심판을 진행하고, 탄핵 여부를 표결에 부친다. 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가 형사소송의 형태를 빌어 탄핵심판의 결론을 낸다.

뉴햄프셔 주 상원도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탄핵의결 정족수 등 절차들을 먼저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논의 결과 투표 참여 인원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면 탄핵을 인용하기로 했다. 상원 의원 정원 24명 중 2명이 기피해 22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15명 이상이 탄핵인용에 표를 던지면 브락 대법원장은 탄핵되는 상황이었다.

표결은 첫 번째 사유부터 네 번째 사유까지 각각 진행됐다. 여러 개 사유를 묶어 한 번에 표결에 붙이는 우리나라 국회 처리 방식과 대조적이다.

당시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당시 상원 의원들은 당론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투표했다고 한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당시 부결에 표를 던진 공화당 패트리샤 크루거 상원 의원은 뉴욕타임즈 인터뷰에서 "탄핵사유를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며 "보수진영에서 배신자 소리를 듣더라도 집단 린치에 낄 수는 없다"(I will not be the part of any lynch mob mentality)고 말했다. 당시 브락 대법원장을 탄핵심판에 넘긴 하원도, 표결을 진행한 상원도 모두 공화당 수중에 있었다. 브락 대법원장은 "공정한 절차에 감사드린다"며 대법원으로 돌아갔고, 2003년 퇴임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 중인 임 부장판사의 탄핵심판이 어떻게 결론 날지는 지켜봐야 한다. 임 부장판사가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를 받았기 때문에 탄핵인용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여권은 1심이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임 부장판사의 행위 일부를 두고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

이번 탄핵심판이 어떻게 결론나든 법원 조직은 둘로 쪼개질 수밖에 없다. 현재 법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사직 요청을 외면하고 국회 탄핵을 받게 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탄핵이 기각된다면 김 대법원장의 법원 내 입지는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인용된다면 임 부장판사를 옹호했던 판사들을 둘러싸고 또 다시 '적폐몰이'가 시작될 수 있다. 사법농단 수사·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판사들이 사표를 던지고 법원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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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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