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도 임시주택에서..구례 수재민들 "예전의 일상 그리워"

지정운 기자 2021. 2.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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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임시주택 '808마을' 18세대 주민들 두번째 명절나기
"주민들 희망 가질 수 있는 정부 노력 급선무" 지적
구례공설운동장 옆 임시주택.(구례군 제공)/뉴스1 © News1

(구례=뉴스1) 지정운 기자 = "민족 대명절이라는데 설 명절 기분이 들겠어요?"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0일 오전. 전남 구례공설운동장 옆에 마련된 이주민 임시주택들은 문이 꼭 닫힌 채 인적을 찾기 어려웠다.

이곳은 지난해 8월8일 섬진강이 범람하면서 삶의 터전을 잃고 오갈곳 없는 18세대의 주민들이 지난해 추석부터 5개월째 묵고 있다. 이들에게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두번째 명절이 다가왔다.

이들에게 이번 설도 지난 추석처럼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서울의 가족이나 친척집도 방문하기 어려워졌다.

이곳에서 만난 안영삼씨(49)와 차승아씨(46·여)는 서울에서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로 9년 전 귀농한 부부로, 지난 홍수에 임대로 살던 집을 잃고 임시 거처에서 추운 겨울을 보냈다.

수해 이후 냉천리에 있는 집은 현재 대부분 수리를 마친 상태다. 3월쯤이면 집으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지만 안타깝게도 집 근처의 심한 기름 냄새로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홍수 때 인근 비닐하우스의 대형 기름통이 집 앞으로 떠밀려와 안에 있던 벙커C유가 쏟아져서다. 5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냄새는 여전하다.

안씨는 임시주택 생활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캠핑을 너무 오래하는 느낌"이라고 고충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저는 아직 젊어서 견딜 수 있지만 어르신들이나 어린이들이 있는 가정은 추운 겨울을 견디기가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곳 주민들은 자신들의 임시주택을 '808마을'로 부른다. 지난해 8월8일 수해를 기억하자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한 주민은 "물난리에 집을 잃고 6개월째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은 얼마나 이러한 생활이 계속될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다"며 "일상회복에 불안한 이들이 희망을 부여잡고 일어설 수 있도록 정부의 노력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임시주택 거주자인 이영순씨(56·여)도 냉천리의 집이 침수피해를 입고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이곳 생활의 불편을 호소했다. 임시주택에 설치된 온수기 용량이 적어 따뜻한 물을 사용 중 갑자기 찬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 당황했다고 한다. 다시 따뜻한 물이 나오기까지는 2시간 정도 기다려야한다.

이씨는 "둘이 사는 경우도 불편한데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다른 집은 오죽할까 걱정"이라며 "그래도 지금까지 참고 살아온 만큼 앞으로의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설은 이주민으로 살아가면서 두 번째 맞는 명절인데 지난 추석처럼 자녀들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며 "와봐야 좁고 불편하기만할 뿐이어서 지난해 여름 이전의 일상이 그립다"고 아쉬워했다.

이씨의 냉천리 집은 목조주택인데 침수피해를 입었다. 벽과 나무가 물을 먹어 건조시킬 때 건조기 5대를 투입해 5일 내내 돌렸던 기억이 난다. 집을 수리하면서 이웃집에서 TV를 켜고 보는 것을 보니 이마저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되면 예전의 집으로 이사할 예정인 그는 집을 수리하고 짓는데 1억원 가까운 돈이 들었지만 보상비로 나온 돈은 고작 40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10일 폐허가 된 비닐하우스를 다시 일으켜 오이농사를 시작한 이근호씨가 농작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2021.2.10/뉴스1 © News1 지정운 기자

심각한 수해를 입었던 양정마을 비닐하우스에서는 수해를 딛고 일어선 젊은부부의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이근호씨(44)와 정희정씨(39·여) 부부는 지난 여름 오이시설하우스 3동 2000㎡가 누런 황토물에 잠기며 망연자실했다.

넋을 놓고 있을 수만 없었던 부부는 6살 자녀와 노모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냈고 복구에 매달렸다.

수해를 당한 날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끝에 지난해 12월 초 다시 오이 수확을 시작하며 희망을 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출 등으로 마련한 5000만원이 시설 자금으로 투입돼 빚으로 남은 상태다.

부부는 "그동안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며 "지금도 비나 눈이 오고 바람만 불면 새벽이라도 하우스를 살펴보러 나오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이근호씨는 "수해 후 첫 오이 수확을 하는데 눈물이 났다"며 "당장 빚은 있지만 오이를 수확하면서 앞으로 다시 힘을 내 살아갈 희망이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jwj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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