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설명절.. 고향 가자니 감염 걱정, 안 가자니 부모님 생각 [뉴스 투데이]

유지혜 2021. 2. 11. 06: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굴 못 본 지 오래됐는데 오지 말라긴 너무 섭섭"
"방역수칙보다 명절 챙겨 가족들끼리 갈등 생겨요"
5인 이상 집착에 방역수칙 '뒷전'
가든 안 가든 명절 스트레스 호소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귀성객들이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승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뉴스1
“1년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명절을 그냥 넘어가라니…. 가족들끼리 서로 눈치 보고, 갈등까지 생기고. 정부 대책이 너무 갑갑해요.”

회사원 이지연(38·여·가명)씨는 고민 끝에 이번 설 연휴에 남편과 함께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시댁에 가기로 했다. 이씨 부부와 아이 2명, 시부모님을 포함하면 6명이 돼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어기는 셈이다. 이씨는 “평소 4명이 식당에 가도 테이블이 여러 개 있으니 결국 수십명이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가족 5∼6명이 모이는 게 위험하다고 하는 건 너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가족이 모이는 건 안 되겠지만 직계 가족 몇 명 정도는 모이되 방역수칙을 잘 지키라고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설 연휴 기간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를 연장하고 고향 방문 자제를 권고하면서 새로운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생겼던 갈등이나 스트레스가 이번 설에는 모이지 말지를 놓고 벌어지는 모양새다.

10일 취재진이 만난 사람들은 명절 때 모임 여부를 두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3살과 6살 아이를 키우는 박민영(36·여·가명)씨는 연휴를 앞두고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연휴 이후 5인 이상 집합금지가 풀리면 시댁에 가자”는 박씨의 제안을 남편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이 첫째 아이만 데리고 시댁에 다녀오기로 해 ‘4인’을 맞췄지만, 혹시 모를 감염 우려에 박씨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친정은 아예 안 가기로 했는데 남편은 자기는 꼭 다녀와야 한다고 하니 스트레스도 받고 시부모님 눈치도 보인다”며 “제사를 안 지내 평소엔 명절 스트레스가 딱히 없었는데 오히려 올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5인’이라는 숫자에 집중하면서 방역수칙 준수는 뒷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직장인 손정희(30·여·가명)씨는 시부모, 손씨 부부, 시누이를 합쳐 5명이지만 남편이 출장 가면서 4명이 돼 가족모임을 하기로 했다. 손씨는 “정부 조치는 최대한 모임을 자제하라는 뜻인데 (시부모님이) 마치 4명까지는 모여도 된다는 의미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면서 “오히려 4명이 되니 가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명절 스트레스가 세대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공무원 김나연(38·여·가명)씨는 방역수칙을 지키려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 모습에 속상하다고 했다. 김씨는 “‘집에서도 다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자’, ‘식사는 하지 말고 얼굴만 보자’고 했더니 부모님이 섭섭해하셔 통화하다 살짝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혹시라도 코로나19에 걸리게 되면 직장에도 피해를 주게 돼 평소에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데 명절이란 이유로 모이는 게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집 안에서 5인 이상이 모일 경우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평소처럼 가족들과 모이기로 했다는 박영진(30·가명)씨는 “혹시라도 걸려서 과태료를 내더라도 안 본 지가 너무 오래돼 만나기로 했다”며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코로나19로 사람들도 잘 못 만나니 가족들이라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에 따라 직계가족이라도 거주지가 다른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 방역지침에 동참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전남 강진군 병영면 전라병영성 동문 주변에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모이게 된 사람들끼리 서로 신고를 해주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주소를 알려주면 대신 신고를 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이씨도 “친구가 시댁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오라고 해서 남편과 싸웠다는 얘길 하면서 친구들한테 신고 좀 해달라고 농담처럼 말하는데 씁쓸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설 연휴 기간 5인 이상 집합금지에 실효성이 부족한 만큼 방역수칙 준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에 5인 이상 집합금지를 하면 부모님을 만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최대한 방역수칙을 지킨다는 전제로 어느 정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권구성 기자 keep@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