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설명절.. 고향 가자니 감염 걱정, 안 가자니 부모님 생각 [뉴스 투데이]
"방역수칙보다 명절 챙겨 가족들끼리 갈등 생겨요"
5인 이상 집착에 방역수칙 '뒷전'
가든 안 가든 명절 스트레스 호소
회사원 이지연(38·여·가명)씨는 고민 끝에 이번 설 연휴에 남편과 함께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시댁에 가기로 했다. 이씨 부부와 아이 2명, 시부모님을 포함하면 6명이 돼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어기는 셈이다. 이씨는 “평소 4명이 식당에 가도 테이블이 여러 개 있으니 결국 수십명이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가족 5∼6명이 모이는 게 위험하다고 하는 건 너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가족이 모이는 건 안 되겠지만 직계 가족 몇 명 정도는 모이되 방역수칙을 잘 지키라고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설 연휴 기간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를 연장하고 고향 방문 자제를 권고하면서 새로운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생겼던 갈등이나 스트레스가 이번 설에는 모이지 말지를 놓고 벌어지는 모양새다.
10일 취재진이 만난 사람들은 명절 때 모임 여부를 두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3살과 6살 아이를 키우는 박민영(36·여·가명)씨는 연휴를 앞두고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연휴 이후 5인 이상 집합금지가 풀리면 시댁에 가자”는 박씨의 제안을 남편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이 첫째 아이만 데리고 시댁에 다녀오기로 해 ‘4인’을 맞췄지만, 혹시 모를 감염 우려에 박씨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친정은 아예 안 가기로 했는데 남편은 자기는 꼭 다녀와야 한다고 하니 스트레스도 받고 시부모님 눈치도 보인다”며 “제사를 안 지내 평소엔 명절 스트레스가 딱히 없었는데 오히려 올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명절 스트레스가 세대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공무원 김나연(38·여·가명)씨는 방역수칙을 지키려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 모습에 속상하다고 했다. 김씨는 “‘집에서도 다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자’, ‘식사는 하지 말고 얼굴만 보자’고 했더니 부모님이 섭섭해하셔 통화하다 살짝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혹시라도 코로나19에 걸리게 되면 직장에도 피해를 주게 돼 평소에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데 명절이란 이유로 모이는 게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집 안에서 5인 이상이 모일 경우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평소처럼 가족들과 모이기로 했다는 박영진(30·가명)씨는 “혹시라도 걸려서 과태료를 내더라도 안 본 지가 너무 오래돼 만나기로 했다”며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코로나19로 사람들도 잘 못 만나니 가족들이라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설 연휴 기간 5인 이상 집합금지에 실효성이 부족한 만큼 방역수칙 준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에 5인 이상 집합금지를 하면 부모님을 만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최대한 방역수칙을 지킨다는 전제로 어느 정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권구성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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