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멈춰라" 연휴도 잊은 국립해양박물관 비정규직 농성

부산CBS 박진홍 기자 2021. 2. 1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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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화·주차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 4달째 집회
"정해진 방식대로 청소 안 했다며 질책, CCTV로 동선 감시"
"관리자 개인 술 심부름에, 여성 탈의실 드나들기도" 주장
용역업체 "갑질 주장 등은 사실무근..회사 손해도 막심" 반박
노조 "박물관, BTL 구조 핑계로 개입 않아 문제 키웠다" 지적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관리자 갑질을 멈춰달라며 집회를 열고 있다. 박진홍 기자
국립해양박물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용역사의 갑질을 멈춰달라며 설 연휴도 잊은 채 60일 넘게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입구에서는 매일 낮 주황색 조끼를 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갑질 행위 즉각 중단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4달 전 거리로 나선 이들은 두 달 전부터는 박물관 한켠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에서 미화, 주차, 경비 등 시설관리 업무를 맡은 이들은 용역사 관리자들의 갑질이 상상 이상이라며 입을 모았다.

전 환경미화원 최용일 씨는 "관리자들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고 토를 달거나 의견을 내지 말라고 압박한다"며 "한 어린이 관람객이 토를 해 그걸 빨리 치우기 위해 쓰레받기로 걷어내고 물걸레로 닦았는데, 관리자가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지로 치우고 수세미로 닦아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며 나무란다"고 말했다.

이어 "질책에서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수세미 자국이 남았다'는 등 이유를 들어 시말서를 쓰게 하고, 그게 누적되면 해고를 해버린다"면서 "도대체 이런 직장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전 비정규직 노동자 최용일 씨가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진홍 기자
또 다른 환경미화원 A씨도 "예를 들면 점심시간이 12시인데, 1분이라도 일찍 휴게실에 들어가면 난리가 난다"며 "이렇게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반면에 자기들은 인체에 유해한 약품을 쓰게 하면서 보호장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이 문제로 과태료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관리자들이 폐쇄회로(CC) TV로 직원 근무 동선을 일일이 감시하다가 지난해 국민권익위 시정 권고를 받기도 했으며, 일부 관리자는 개인 술 심부름까지 노동자에게 시키는 등 갑질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급기야 한 남성 관리자가 여성 탈의실과 샤워장에 수차례 드나들다가 직원들에게 적발됐다며 노조원들이 이 관리자를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관리자 갑질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천막을 친 모습. 박진홍 기자
노동자들은 수년간 이어져 온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인사 보복이었다고 주장한다.

최용일 씨는 "노동자들이 업체와 계약을 할 때 1년, 2년 단위가 아닌 무조건 그해 연말까지를 근무 기간으로 정한다"며 "연말이 다가오면 업체는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 '계약종료 통지서'를 제시하고, 마음에 들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직원은 다시 계약하는 방식으로 관리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 역시 보호장구 없이 화학 약품을 사용하게 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관리자들에게 찍혔다"며 "지난 연말 '정년 63세'를 이유로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고 해 '정년을 넘은 사람도 일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니 다른 63세 이상 직원들도 모두 재계약을 하지 않아 사실상 다 함께 해고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운영사 측은 갑질 등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잇따른 고소 고발로 회사가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반박했다.

업체 관계자는 "관리자 갑질이나 개인 술 심부름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외부 교수 등이 참여하는 6개월 단위 성과평가에서도 계속 A등급을 받는 등 정상 운영하고 있다"며 "CCTV로 직원을 감시한 사실도 없으며, 건물 지을 때부터 있던 모니터 위치가 오해 소지가 있다는 국민권익위 권고에 따라 다른 장소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어 "샤워장에 들어간 직원은 '탈수기를 사용하러 갔다'고 해명했으나 이 부분은 경찰 수사 중이며, 보호장구 착용 건으로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실은 있지만 그 전에 관리자에게 이야기했으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었는데 곧바로 고발을 한 건 악의적"이라며 "과태료 부과 건으로 공공기관 입찰 제한 등 페널티를 받게 돼 사측 손해가 크다"고 덧붙였다.

또 "63세 이상자 해고가 아니라, 계약 만료로 인해 계약하지 않은 것"이라며 "노조 주장의 핵심은 65세 정년연장인데 수차례 협상에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여러 악의적인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천막 내부 모습. 박진홍 기자
노조는 노동자들이 용역사의 각종 갑질에 수년간 시달리고 있음에도 박물관 측은 사업방식이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형태라는 이유로 직접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부산지부 김용관 부위원장은 "박물관은 현재 사업시행자 밑에 전문 운영사가 있고, 이 운영사가 시설유지관리를 위탁업체에 맡긴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며 "박물관은 노동자들이 위탁업체 소속이라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있고,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BTL 실시협약서를 변경하는 등 박물관이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방법이 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공기관인 박물관이 직접 고용해서 사태를 조기에 수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물관 측은 해결하고 싶어도 구조상 개입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장은 "BTL이라는 이유로 박물관이 해결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운영사가 고용한 하청 업체의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시민이 이용하는 문화서비스 공간에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는 만큼 양측에 합의를 종용하고 설득은 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개월째 농성을 이어온 노동자들은 사태가 빨리 해결돼 박물관이 일할 맛 나는 직장으로 바뀌는 것 외에는 더 바라는 게 없다고 말한다.

4년째 주차관리 업무를 맡은 이의봉 씨는 "몇 달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회하고 있는데, 많이 지치고 '내가 왜 이러고 있나'는 생각도 든다"며 "나이 든 사람들이 일할 곳은 이런 곳밖에 없는데 박물관을 정말 중년들이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요구하는 건 돈을 더 달라 이런 게 아니라, 행복한 직장 일할 맛 나는 직장으로 바꾸자는 것 단 하나"라며 "어서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갑질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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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박진홍 기자] jhp@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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