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설 명절이 더 힘든 아파트 경비원·청소부들

구미현 2021. 2. 11.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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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폭탄에 폐지, 일회용품 쏟아져
순찰·청소·택배정리..명절 앞두고 업무 2배
주 45시간 근무에 최저시급도 못 받아
"주민 항의 들어올까봐 늘 마음 졸여"
[울산=뉴시스] 구미현 기자 =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0일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60대 청소 노동자가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있다. 2021.02.10. gorgeousko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구미현 기자 = "아휴 말도 마요. 코로나 때문에 재활용품이 원래도 많이 늘었는데, 명절 앞두고는 배가 됐어요."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0일 오전 9시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 이 아파트의 106동을 청소하는 아주머니 이모(65)씨는 한숨부터 크게 내쉬었다.

이씨가 "한번 보라"며 손짓으로 가르킨 분리수거장 내부는 폐지, 일회용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 쓰레기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 수거장 밖으로 까지 삐져 나와 있었다.

이날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1도, 분리수거장은 그늘에다 고층 건물과 건물이 만들어 낸 골바람이 상당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체감온도는 훨씬 낮아 가만히 서 있기가 힘들 정도의 추운 날씨였다.

이씨는 청소업체에서 제공해준 방한조끼와 목장갑을 끼고 커터칼로 폐지에 붙은 테이프 제거하기 시작했다. 손놀림은 상당히 빨랐다.

"빨리 빨리 안하면 오늘 하루 종일 재활용 정리만 하다 업무가 끝나요. 오후부턴 아파트 내부, 화단 청소 할일이 많아요. 주민분들이 청소 제대로 안됐다고 항의할때도 종종 있어요. 싫은 소리 안들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지요."

이씨가 정리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재활용품을 내놓는 사람들이 그의 옆을 오고 갔다. 그는 "명절에는 돌아서면 또 가득찰 정도의 재활용품이 나온다"며 "게다가 깨끗이 씻지 않은 일회용 그릇부터 택배 포장 박스까지 종류도 다양해 일일이 다시 분류 작업을 해야 한다. 평소보다 일이 많이 고되다"고 말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그를 더 힘들게 하는건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임금이다.

이씨는 월~금요일까지 평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한다. 주 45시간 근무를 하지만 한달에 손에 쥐는 돈은 140여만원에 불과하다. 최저시급 8590원(지난해)을 기준으로 하면 그의 세전 월급은 207만5000원이 돼야 하지만 실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식들은 항상 관두라고 얘기하죠. 그래도 어디 그럴수 있나요? 나이 더 들어 자식들한테 폐 안끼치려면 일할수 있을때라도 열심히 일 해야지요. 명절에 손주들한테 용돈 줄 수 있는 할머니가 제 인생 목표예요."

[울산=뉴시스] 구미현 기자 =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0일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재활용품들로 가득하다. 2021.02.10. gorgeousko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명절이 반갑지 않은 이는 또 있다.

이 아파트에서 1년째 경비원으로 일하는 정모(67)씨. 같은날 정오께 경비실에서 그를 만났다. 점심식사를 시작하려던 그는 인기척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절 앞두고는 밥 먹는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요. 점심시간 1시간이 휴식시간으로 보장돼 있지만 제대로 누릴 수가 없어요."

그가 그 말을 하자마자 경비실 안으로 벨이 울린다. 차단봉을 올려달라는 외부 방문객의 호출이었다.

정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부터 시작돼 다음달 오전 6시에 끝난다. 그는 120가구가 살고 있는 2개 동 건물과 주변 시설물을 관리한다.

이 아파트에는 정 씨와 같은 경비원 20명이 하루 10명씩 2개 조로 근무하고 있다. 전날 근무자와 근무 교대를 하고, 옥상부터 지하주차장까지 2개 동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간밤에 별일은 없었는지 순찰하는 게 그의 업무다. 출퇴근 시간이 되면 아파트 정문에 나와서 차량 수신호 업무도 한다.

청소 아주머니의 업무가 아닌 아파트 정문 일대, 진입도로, 지하와 지상주차장, 산책로 청소 등은 경비원 담당이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업무는 택배 업무다. 오후 4시 이후가 되면 택배회사의 택배 차량이 아파트 정문으로 속속 들어선다.

명절 연휴 땐 경비실에 맡겨져는 택배양이 상당하다.

"세대별로 우편함에 택배 수령 안내문도 붙어야 하고, 또 안 찾아가는 주민들에겐 인터폰으로 연락도 해야 해요.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민들이 택배 찾으러 올까봐 웬만해선 경비실을 비우지 않습니다."

그는 혹시나 경비실을 비웠다고 항의나 무시 등 비인격적인 처사를 하는 주민도 있을까봐 항상 긴장한 상태라고 했다.

"요즘 매스컴에 경비원에 갑질하는 사건들이 종종 있잖아요. 그런 뉴스 볼 때 마다 남일 같지가 않게 느껴집니다. 그저 나는 아니길 하는 마음뿐 이지요."

그래도 친절한 입주민들도 많아 힘이 난다고 했다.

"가끔 경비실로 과일이나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주민들이 있어요. 오가며 '수고한다'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 명절 음식을 나눠주는 주민들. 좋은 주민들도 많아요. 제가 힘든 하루를 버티는 원동력이지요."

☞공감언론 뉴시스 gorgeousk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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