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민의 돋보기] 생명경시를 전시하는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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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의 한 동물원에서 멸종위기 종인 원숭이를 포함해 야생동물인 낙타와 라쿤, 농장동물인 양, 염소, 거위에게 물과 사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동물원은 식민지에서 약탈한 야생동물을 구경하며 인간의 유희적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었다.
우리나라는 1909년 일제가 창경궁에 설치한 동물원이 시작이었는데, 이 역시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용도였다.
한국의 동물원 역시 '생명경시를 전시한다'는 비판을 딛고 생명보호에 앞장서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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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대구시의 한 동물원에서 멸종위기 종인 원숭이를 포함해 야생동물인 낙타와 라쿤, 농장동물인 양, 염소, 거위에게 물과 사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11월부터 문을 닫았다는 동물원. 그 안에 남겨진 동물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원숭이는 얼음 가득한 우리에서 봉사자가 내민 바나나를 쥐고 연신 바닥에 흐른 물을 핥았다. 거위가 있는 철창 안은 배설물로 가득했다. 목이 마른 낙타의 입 주변엔 거품이 끼었다.
지역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구의 또 다른 동물원에서는 사자가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말라 갔고 수달이 폐사했다. 과거 사육사가 바다코끼리를 사정없이 밟고 때리는 영상이 퍼진 모 동물원은 이름을 바꾸고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최초의 동물원은 1752년 오스트리아의 ‘쇤브룬 동물원’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동물원은 식민지에서 약탈한 야생동물을 구경하며 인간의 유희적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었다. 우리나라는 1909년 일제가 창경궁에 설치한 동물원이 시작이었는데, 이 역시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용도였다. 그로부터 111년이 지났지만 동물원은 인간의 이윤을 위해 동물이 희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비좁은 환경에서 고통받다 방치되고 끝내 죽는 전시 동물. 동물원은 동물 학대의 온상이자 동물 복지의 사각지대가 됐다. 2017년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대한 법률’이 시행됐지만 최소한의 내용만 규정할 뿐 기준 미달의 동물원들을 막지 못한다.
등록만 하면 동물원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멸종위기 동물도 국내 반입 등록 이후에는 관리 규정이 없다. 체험 중심 실내 동물원이 난립하고 동물들의 폐사가 이어지는 이유다. 유럽과 미국처럼 자격을 갖춘 동물원만 운영이 가능하도록 ‘허가제’로 바뀌어야 한다.
많은 나라들이 동물원 폐지를 고민하고 있다. 당장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생태적 습성을 유지할 수 있게, 적어도 동물들이 고통받지 않게 되도록 많은 생활공간을 주고, 전시 동물의 종류를 줄여야 한다.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활동 반경이 큰 돌고래, 코끼리, 북극곰은 아예 전시하지 않는 외국의 동물원들이 좋은 예다.
동물쇼와 체험학습에 동원되는 동물들은 지능이 높아 조련 과정에서 굶거나 구타를 당한다.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이 산 거북이 대신 죽은 거북이 등딱지를 만져 보게 하고 모아 놓은 양털을 만지게 하는 이유다. 이곳은 날지 못하는 펠리컨, 총상 입은 바다사자 등 야생에서 다친 동물들을 구조해 보호하며 동물원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한국의 동물원 역시 ‘생명경시를 전시한다’는 비판을 딛고 생명보호에 앞장서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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