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발생 3km안 무조건 살처분"에 반기든 친환경 농가들
살처분 명령 거부..소송·심판 제기
"30년간 토종닭 사육..방역 철저
한번도 감염된 적 없는데"
경기도도 "500m로 완화해달라"
농식품부에 건의문..아직 답 없어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이 이어져 당국이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가운데, 경기도 남양주와 화성의 농장주들이 당국의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 명령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제기하며 유연성 있는 정책 집행을 요구한다.
2018년 말 개정된 가금류 살처분 규정은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농장에서 반경 3㎞ 안에 있는 농장의 닭이나 오리를 강제 살처분하도록 돼 있다. 신속한 방역과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한 규정이다. 규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상황에 따라 살처분 여부를 유연하게 할 수 있었다.
1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남양주시 와부읍에서 토종닭 1만여마리를 키우는 고센영농조합법인(고센농장)은 3㎞ 안에 있는 이웃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내려지자 이를 거부하고 지난달 의정부지법에 ‘살처분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고 남양주시가 살처분 행정대집행을 통보하자 고센농장은 살처분 행정대집행 정지 소송을 다시 법원에 냈다.
산란계 3만7천마리를 사육하는 화성시 산안농장도 인근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뒤 사육 중인 닭을 모두 살처분하라는 당국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를 거부했다. 산안농장은 “친환경 농법으로 사육해 1984년부터 36년간 한번도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산안농장은 지난달 25일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강제적 살처분 집행유예 판정을 받아냈다.
두 농장이 당국의 예방적 살처분에 반발한 것은 ‘발생지로부터 3㎞ 안에 있지만 30년 이상 축산 경험과 철저한 방역체계로 조류인플루엔자에 한번도 감염된 적이 없고, 감염 위험도 매우 적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경용 고센농장 대표는 “발생 농장과 직선거리로는 1.3㎞이지만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고 도로가 없다. 실제 최단 이동거리는 5.1㎞나 된다”며 “방역본부에서 나온 직원이 이렇게 완벽한 농장은 처음 본다고 말할 만큼 철저히 방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농장은 1991년부터 30년간 재래 토종닭을 사육해 토종닭 명맥을 유지하는 데 큰 구실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 농장에서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쪽이 북쪽에 보낸 유산양과 진돗개 등의 답례로 북에서 받은 조선 토종닭(일명 개마고원닭)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육 중이다. 이 대표는 “악법도 법이라지만 농장의 특수성을 살피지 않고, 발생하지도 않은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무조건 도살 처분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화성 산안농장에서도 1984년부터 37년간 한번도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2014년과 2018년에는 농장에서 불과 800m 떨어진 이웃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지만 피해가 없었다. 이 농장은 지난해 12월 인근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자 살처분 명령을 받았으며, 3㎞ 안에 있는 다른 5개 농장은 이미 14만7천마리를 살처분했다. 산안농장 쪽은 “경기도와 화성시의 ‘동물복지형 방역 선진화 농장’에 선정되는 등 선진적인 방역체계를 갖추고 있는데도 발생 농장 반경 3㎞ 이내라는 기계적인 이유만으로 예방적 살처분을 강요당하고 있다. 산안마을의 축적된 경험과 선진적인 방역체계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경직되고 획일화한 방역정책을 고집하지 말고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수기 건국대 교수(동물자원과학과)는 “고센농장이 사육하는 북한산 개마고원닭은 남한에서 북한 닭을 연구하는 좋은 재료로, 개량을 위해 많은 수가 필요하다”며 “남북한 간 가축의 대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센농장의 토종닭은 향후 남북한 토종닭에 대한 비교연구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정진 한국토종닭협회장은 “고센농장의 재래 토종닭과 북한 토종닭을 살처분한다면 국가적으로 귀중한 재산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경기도의 태도도 다소 바뀌는 분위기다. 경기도는 “농림축산식품부에 동물복지농장을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현행 예방적 살처분 규정을 완화해달라는 건의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도는 지난 4일 보낸 건의문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실시하는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농장 반경 ‘3㎞ 이내’에서 ‘500m 이내’로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중앙정부 쪽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아직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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