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해쳤다"는 김은경 판결.. 靑은 "블랙리스트 없다" 빗나간 해명
"문재인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게 유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에 대해 청와대가 10일 밝힌 입장이다. 1심 판결이지만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하루 만에 공식 입장을 냈다. '블랙리스트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반영돼 있어 보인다. 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 "공정성을 해친 일"이라고 적시했다. '공정한 정부'를 강조해 온 청와대 입장에서 상당히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이 7번이나 '공정' 훼손 적시...윗선 개입 여지도
전날 법원은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양형 이유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7번이나 썼다.
구체적으로 "공공기관 임원 임명의 적정성과 공정성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여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공공기관운영법의 입법취지를 몰각시켰다"라고 지적했다.또"피고인(김 전 장관)의 이러한 행위(사표 제출 강요 등)는 오로지 청와대 또는 환경부가 정한 내정자들을 공공기관 임원 직위에 임명하고, 내정자들이 공정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 공공기관 임원으로 선임 되었다는 외관을 가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짚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공정성 훼손'을 문제 삼은 것은, 공정의 가치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에 뼈아픈 대목이다. 이번 사안이 처음 터진 직후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DNA)에는 애초에 민간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고, 야당을 향해서는 "블랙리스트란 '먹칠'을 삼가 달라"고까지 요구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면 과정을 거치면서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왔다. 지난달 신년사에서도 "우리는 공정의 힘을 믿으며 그 가치를 바로 세워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이나 신 전 비서관 '개인의 일탈'로 선을 긋기 어려운 측면이 판결문에 포함돼 있다는 점도 청와대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측면이다. 신 전 비서관에 대한 판결에서 재판부는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피고인의 지위에 비추어 내정자를 확정하고 그에 대한 지원 결정을 하는 것은 피고인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점 등 이 사건 각 범행 가담 경위 및 정도에서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윗선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전 장관이 사표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은 인사를 대상으로 '표적 감사'와 '일괄 사표 요구'를 한 혐의도 재판부는 인정했다.
靑 "블랙리스트와 달라"... 도덕성 타격 최소화 노력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사건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블랙리스트'는 특정 사안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한 지원 배제 명단을 말한다"면서 "그러나 재판부 설명 자료 어디에도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감시나 사찰 행위도 없었다"고 강 대변인은 강조했다. 전날 법원 판결 이후, 대응책 마련을 위한 내부 회의와 문 대통령 보고를 거쳐 나온 청와대 입장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이번 사건의 성격에 비춰 옹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부처 장관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특정 인사를 공공기관에 앉히기 위해 공모했다'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이 '블랙리스트' 프레임에 갇힐 경우, 문재인 정부 전체의 도덕성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강 대변인이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 등의 임기를 존중했다"며 "그것이 정부의 인사 기조였다"고 강조한 것도 이를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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