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5000억 들이고도 감감무소식.. 중이온 가속기 '돈 먹는 하마' 전락
‘노벨상의 산실‘을 만들겠다며 정부가 2011년부터 총 1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중이온 가속기’의 완공이 또다시 연기됐다. 당초 2017년 완공 목표였지만 2019년으로, 다시 2021년으로 두 차례나 미뤄졌다가 결국 올해 완공도 물 건너간 것이다. 첫 삽을 뜰 때 ‘단군 이래 최대 과학 사업’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한국 과학 사상 최대의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처지다. 가속기의 핵심 부품을 독자 개발하지 못한 국내 과학계의 뒤처진 역량, 사업 책임자인 과학자를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갈아치우는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정이 낳은 결과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산하 중이온 가속기는 대전에 들어서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인프라다. 미국·독일·일본 등 과학 선진국이라면 모두 보유한 중이온 가속기는 암 치료, 단백질 구조 분석 같은 의생명공학이나 신소재 개발 등 기초과학 연구에 활용되며 관련 연구 성과가 노벨상으로 이어진 사례가 30여 개에 달하는 ‘꿈의 장비'로 통한다. 이를 만들기 위해 국내 각 분야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모였고, 약 1조4300억원이란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세계 최초로 새로운 방식의 장치를 구축한다며 “세계 최고 사양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완공 목표가 2017년에서 2019년, 2021년으로 두 차례 연기됐고 예산도 약 1조5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결국 지난해 7월 점검단이 꾸려졌다. 6개월이 지난 10일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점검단은 “핵심 부품의 성능이 확보되지 못했다”며 올해 가속기 완공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점검단장인 조무현 포항공대 명예교수는 “기술적 어려움과 시제품 제작 등에 따른 일정 지연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과학계에선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중이온 가속기 핵심 부품에 대한 개발 경험이 없었던 우리나라로서는 사업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 역할을 하는 핵심장비인 고에너지 구간 가속장치는 개발도 안된 상황이다. 기술적인 난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를 타개할 해외 협력은 없었다. 사업 관리자들은 “목표한 기간 내에 완공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IBS 내부에서는 2017년부터 “당초 목표한 기간 안에 완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완공한다고 해도 부실한 장치 제작과 성능 검증으로 인해 새로운 입자를 만들어내는 가속기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중이온 가속기 개발 사업을 뒷받침해야 할 과학 행정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업을 관리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추진단 단장은 2008년 출범 이후 10번가량 교체됐다. 대략 1년마다 바뀐 셈이다. 한 전문가는 “긴 안목과 뚝심이 필요한 대형 사업이었지만 정부가 마치 국장급 순환보직 인사를 하듯 단장을 갈아치웠다”며 정부 관련 부처의 철학과 책임 부재를 비판했다.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점검단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방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술이 확보된 장치를 먼저 구축하고 기술력이 필요한 장치는 나중에 연구·개발하자는 것이다. 다른 안은 2025년까지 사업 기간을 4년 더 연장해 전체 장비를 한 번에 구축하는 것이다. 이 경우 1444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게 된다. 어떤 경우든 사업 기간 연장과 예산 추가 투입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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