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 못한 아들도, 폐업한 부모도 '우울한 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교를 졸업한 취업 준비생 이모(26)씨는 이번 설에 고향에 가지 않는다. 이씨는 “2년째 백수라서 눈치가 보이던 차에 부모님도 ‘장사가 안 돼 용돈 쥐여줄 돈도 없으니 교통비 아낄 겸 내려오지 마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씨 부모님은 충남에서 한식당과 옷수선 가게를 운영했는데, 코로나로 손님이 끊겨 작년 7월 한식당을 폐업했고, 옷수선 가게 매출은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로 고용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자녀는 물론 자영업을 하는 부모도 우울한 설을 맞게 됐다.
1월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98만2000명 감소하며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시절인 1998년 12월(-128만3000명)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고용 현장은 IMF 때보다 더 처참하다”고 말한다. 언제까지 위기가 이어질 것인지 알기 어렵고, 임시·일용직 등 고용 취약 계층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IMF 때는 8개월 만에 저점, 지금은 불투명
“IMF 위기 때는 곧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라도 있었죠. 지금은 언제 괜찮아질지 한 치 앞도 모르겠어요.”
서울 종로구에서 23년째 중국 음식점을 하는 형모(61)씨는 “IMF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창 좋을 때는 월 매출이 1억원씩 나왔지만 지금은 반 토막 났다. 이 식당 종업원은 “사장님이 직원을 한 명도 안 자른다는 원칙을 지켜오셨는데, 지금은 14명 중 6명만 나오고 나머지는 휴직 상태”라고 했다.
취업자 수 감소는 지난해 3월부터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앞서 최장 기록은 1998년 1월~1999년 4월의 16개월 연속 감소였다. 하지만 추세는 확연히 다르다. IMF 때인 1998년에는 1월 일자리가 87만개 급감하는 충격이 시작됐고 8월에 159만2000개 줄어들며 바닥을 찍었다. 그 이후엔 차츰 회복돼 1999년 5월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1차 쇼크가 닥친 지난 3월에는 취업자가 19만5000명 감소했지만, 12월에는 62만8000명 급감했다. 올해 1월에도 98만2000명 줄어드는 등 오히려 취업자 수 감소 폭이 커졌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IMF 때는 고용 시장이 ‘U자’형 회복을 했지만, 지금은 ‘L자’형으로 장기화하는 양상”이라고 했다.
◇청년 등 고용 취약 계층이 집중 피해
이번 고용 참사는 고용 취약 계층에 집중됐다. 올해 1월 취업자 감소는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가 몰린 서비스업(-89만8000명)에서 나왔다. 숙박·음식점업과 도매·소매업 취업자 수는 각각 1년 전보다 36만7000명, 21만8000명 줄었다. 둘 다 2014년 1월 통계 작성 이후 최대 폭이다.
연령별로는 청년층 타격이 컸다. 취업자 수가 30대에서 27만3000명, 20대에서 25만5000명 감소했다. 청년층(15~29세)의 실질 실업률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27.2%에 달했다.
IMF 때는 대기업 연쇄 부도로 ‘정규직 넥타이 부대’가 직격탄을 맞았다. 1998년 12월에는 제조업 일자리가 58만6000개 줄었다. 도·소매 및 숙박·음식업(-28만5000명)보다 훨씬 감소 폭이 컸다. 당시 상용직 근로자가 75만5000명 감소해 임시·일용직(-35만3000명)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1월 상용직은 오히려 3만6000명 늘었고, 임시직과 일용직이 각각 56만3000명, 23만2000명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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