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69] 암스테르담의 팬케이크 집
영화 ‘키드(The Kid)’에서 찰리 채플린이 팬케이크 위에 큼직한 사각 버터 한 조각을 얹어 쌈을 싸 먹는다. ‘레인맨’이나 ‘펄프 픽션’ 등 많은 영화에도 팬케이크 장면은 종종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먹었고,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서 전 세계로 소개되면서 지금은 만인이 즐긴다. 다양한 토핑을 얹어서 먹기도 하고, 장미 물이나 셰리 와인을 첨가해서 고급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밀가루와 계란, 버터와 우유를 재료로 하는 간단한 음식이다. 상대적으로 영국, 독일, 스웨덴, 캐나다 등 북부 나라들에서 더 많이 먹는다. 추위를 견디기 위한 충분한 탄수화물과 지방을 섭취하기 위함이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과 크기인 것도 재미있다.
네덜란드의 팬케이크는 피자처럼 큰 원형 형태로 ‘패닌코이큰(pannenkoeken)’이라 불린다.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팬케이크를 아침에 먹지 않는다. 관광객을 위해서 아침에 여는 집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점심에 먹고, 저녁으로 먹는 경우도 많다. 유명한 팬케이크 집이 많은 암스테르담에서도 아주 독특한 장소가 있다. 홍등가 ‘드 발렌(De Wallen)’ 인근에 위치한 ‘위층 팬케이크 집(Upstairs Pannenkoekenhuis)’이다. 18세기, 인근 병원의 수련의를 위한 기숙사로 쓰던 건물이다. 좁은 택지에 지어져 올라가는 계단은 사다리처럼 가파르다. 레스토랑은 테이블이 단 4개로 마치 다락방 같다<<b>사진>. 도심 한가운데 숨어있는 로맨틱한 공간에서 먹는 팬케이크는 오후의 기분을 좋게 한다.
사순절 (四旬節)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날은 ‘참회 화요일(Shrove Tuesday)’이다. 동시에 ‘팬케이크 날’이다. 금욕과 절식을 시작하기 전에 칼로리를 충분히 보충하고, 또 냉장고의 오래된 재료도 소진하는 의미를 가진다. 원래 종교 기념일이지만 음식의 날 축제가 되면서 매년 반복되고 있다. 올해는 2월 16일이다. 눈이 펑펑 오는 한겨울에 몸과 마음을 따듯하게 녹여주는 폭신폭신한 팬케이크는 좋은 옵션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