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상원 “트럼프 탄핵심판은 합헌”… 공화당 6명도 가세
내란 선동 혐의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9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상원에서 시작됐다. 하원 탄핵소추위원단장인 제이미 래스킨 하원의원이 트럼프에 대한 첫 공격자로 나섰다. 그는 트럼프 변호인단이 사전 변론서에서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을 반박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트럼프의 변호사들이 펼치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한) 1월 6일이 우리의 미래가 될 위험을 감수하는 겁니다.” 그는 “이것이 미국에 무엇을 의미할까요? 보여 드리겠다”며 동영상을 틀었다.
영상은 지난 1월 6일 백악관 남쪽 공원에서 지지자들 앞에 선 트럼프가 대선을 도둑맞을 위기에 놓였다며 “우리는 의회로 걸어갈 것”이라고 연설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이 연설을 들은 군중이 “의회를 장악하자!”고 외치며 의사당으로 몰려가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이어졌다. 폭력적인 시위대의 의회 난입 장면 중간에 트럼프가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더 이상 나라가 없을 것”이라고 독려하는 장면이 겹쳤다. 민주당이 준비한 이 13분간의 영상은 CNN 방송 등을 통해 미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후 등장한 트럼프 측의 브루스 캐스터 변호사는 “이 나라에서는 정치적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처벌하자고 할 수 없다”며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런 탄핵을 받아들이면 “당파적 탄핵이 흔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캐스터의 변론은 래스킨의 주장보다 초점이 분명하지 않았다.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물고 있는 트럼프는 “그의 변론에 실망해 고함을 질렀다”고 CNN은 보도했다.
양측의 구두 변론을 들은 뒤 상원의원 100명은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추진이 합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표결을 했다. 결과는 찬성 56표, 반대 44표로 합헌이었다. 공화당 의원 6명이 ‘반란표'를 던진 것이다. 이에 따라 상원은 탄핵심판을 진행해 이르면 다음 주 초쯤 탄핵 여부를 가르는 최종 표결을 할 전망이다.
그러나 실제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탄핵이 가결되려면 상원의원 3분의 2(67명)가 찬성해야 하는데, 상원 50석을 가진 공화당 의원 대부분은 여전히 탄핵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탄핵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그는 이날 “(탄핵심판을) 안 본다”며 코로나 대응이 더 시급하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 입장에선 폭력적 난동 장면이 담긴 영상 등을 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의미가 있다. 2024년 대선 출마 가능성이 있는 트럼프의 지지세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탄핵 여부보다 민주당이 트럼프의 공직 출마 금지를 시도할 것이냐도 주목받고 있다. 연방상원의 구성과 기능에 대해 규정한 미 헌법 1조 3항에는 탄핵심판의 결과 면직과 함께 ‘공직에 취업·재직하는 자격을 박탈(disqualification)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상원에서 탄핵을 가결하면 이후 별도의 투표를 통해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출마를 금지할 수 있다. 다만 탄핵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조항을 발동할 수 없다.
최근 민주당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합중국 관리로서 내란(insurrection)이나 모반(rebellion)에 가담한 자는 합중국이나 각 주(州)에서 관직에 취임할 수 없다'는 내용의 수정헌법 14조 3절을 통해 트럼프의 공직 출마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조항은 1861~1865년 남북전쟁 때 노예제 유지와 분리 독립을 주장했던 남부연합(Confederacy)에 가담했던 관리들이 다시 정부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생겼다. 그 이후론 거의 잊힌 조항이었다. 상·하원 양원에서 각각 과반 찬성만 있으면 발동할 수 있는데, 최종적으로 이 조항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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