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팬데믹'.. 두달 만에 86國 덮쳤다
국내서도 열흘동안 46명 감염.. 정부, 아스트라백신 사용 허가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급속 확산하고 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이어 ‘변이 팬데믹’이 곧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국내외에서 잇따르고 있다.
9일(현지 시각)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작년 12월 14일 공식 확인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는 58일 만에 세계 86국으로 번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식 확인 후 58일 만에 세계 33국으로 확산한 것과 비교하면 전파 속도가 2.6배 빠른 것이다. 최근 영국에선 신규 확진자의 80%가 변이 감염자로 파악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발 변이 바이러스도 44국, 브라질발 변이는 15국으로 확산한 상태다. 한국은 3종 변이 감염자가 모두 나온 세계 11국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에선 작년 12월 28일 영국발 변이 감염자 3명이 처음 확인된 이후 10일까지 변이 감염자가 총 80명으로 불어났다. 이 가운데 이달 들어 열흘간 확인된 감염자만 46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그만큼 확산 속도가 빠른 것이다. 최재욱 고려대 교수(예방의학과)는 “전 세계 검역 단계에서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를 걸러내고 있어 각 나라 내부 지역으로 퍼지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결국 ‘변이 팬데믹'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방역 당국은 변이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이 심각하다는 판단 아래 “오는 24일부터 모든 해외 입국자에게 유전자 증폭(PCR) 음성 확인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겠다”고 10일 발표했다. 지난달 8일부터 외국인 입국자들은 PCR 음성 확인서를 의무 제출하고 있는데 이를 내국인에게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당국은 “국가별 변이 바이러스 위험도 등을 고려해 방역 강화 대상국을 추가 지정하는 등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날 코로나 백신 가운데 처음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최종 사용 허가 결정을 내렸다. 다만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방역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오는 25일부터 일선 보건소 등에 공급돼 이르면 25일 국내 첫 접종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英변이 바이러스 확산 속도, 우한의 2.6배… 사망 위험은 35% 높아
국내외 감염병 전문가들은 “작년 중국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이어 ‘변이 팬데믹’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영국발 변이는 전파력뿐 아니라 치명력도 기존 코로나보다 35% 높은 사실이 드러나, 변이 팬데믹이 현실화할 경우 작년처럼 또다시 의료 체계가 붕괴하고 인명 피해가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 입국 제한 조치 강화 등을 통해 변이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최대한 늦추고, 백신 접종은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당국 “영국발 변이, 10일마다 2배씩 증가”
세계 각국 보건 당국은 변이 확산에 초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영국에서는 최근 신규 확진자의 80%, 전체 누적 확진자의 30%가 변이 감염자로 파악됐다.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치고 신규 감염 확산을 압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9일 “최근 독일 내 확진자의 20%가 변이 감염으로 추정된다. 곧 변이가 지배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은 한때 논의되던 ‘봉쇄 조치 완화’ 방안을 포기하고 봉쇄 조치 연장을 검토 중이다.
프랑스 보건 당국도 최근 확진자의 20% 이상이 영국발 변이 감염자로 보고 있다.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내 영국발 변이 감염자는 34개 주 932명, 남아공 변이는 3개 주 9명, 브라질 변이는 2개 주 3명이 확인됐다. 미 보건 당국은 “10일마다 변이 감염자가 2배씩 늘어나는 양상”이라고 했다.
3종의 변이 바이러스가 모두 확인된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을 포함해 11국이다. 국내 변이 감염자는 현재 80명까지 급증했다. 최근 경남·전남에서 발생한 외국인 38명의 변이 집단감염 추정 사례를 포함하면 110명이 넘는 감염자가 이미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변이 감염자의 출국 국가도 점점 다양해져 10일 현재 기준으로 21국으로 늘었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영국발 변이가 이미 세계 86국으로 번져 출국지와 무관하게 해외 입국 확진자는 변이 감염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전파력·치명률 높아… “빠른 백신 접종이 최선”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이 대부분 하반기에 이뤄질 예정이라 그전에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또다시 큰 피해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는 “남아공 변이가 국내 유행을 주도할 경우 백신 접종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전에 속도전으로 국내 백신 접종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기존 백신이 변이에 대한 효과가 떨어질 수 있어도, 대규모 접종이 이뤄지면 일정한 예방 효과와 확진자의 증세가 악화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 변이에 버금가는 속도로 번지는 남아공 변이도 접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변이를 넘어 변종에 가까운 특성을 이미 보이고 있다. 기존 코로나 백신의 예방 효과가 떨어질 뿐 아니라 기존 코로나 항체가 잘 반응하지 않아 기존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도 재차 남아공 변이에 감염되는 사례가 국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일단 기존 백신 접종을 빠르게 마쳐야 남아공 변이용 접종도 대비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변이 팬데믹은 시간문제”라며 “정부가 글로벌 제약사의 변이용 백신 개발과 기술 이전 등에 빨리 투자해 물량을 조기에, 최대한 확보하는 대책을 지금부터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정부, “65세 이상 접종은 의사가 판단”
하지만 국내 백신 접종은 시작부터 발걸음이 꼬이는 양상이다. 이날 식약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18세 이상 연령에게 모두 허가하면서도 “65세 이상 고령자는 의사가 판단해 신중하게 접종하라”고 권고했다. 의사가 고령층 접종 대상자의 상태를 살펴 접종 여부를 일일이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안전성에 문제는 없으나 고령층의 예방 효과를 확인하는 자료가 부족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진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정부가 백신 불신을 더 부추기고 의료진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일부 의료진 사이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층에게는 아예 접종하지 말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마상혁 부회장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정부가 의사에게 접종 여부 결정을 미룰 게 아니다”라면서 “정부가 신뢰를 줘야 접종률이 올라갈 텐데 도리어 논란과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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