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靑.春일기'] '실형' 받은 文정부 장관, '사과'는 왜 없나요?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재판 결과 나와도 블랙리스트 부인하는 청와대와 일반 국민의 괴리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문재인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인 김은경 전 장관이 지난 9일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자리에 친정부 인사들을 앉히기 위해 전임자들에게 사표를 강제했다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청와대는 줄곧 "블랙리스트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장 등의 임기를 존중했다"고 반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던 것입니다. 재판부의 판결을 요약하면 전 정부에서 취임한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 임원을 자르고, 청와대 비서관과 공모해 정권과 가까운 인사를 임명한 것은 '범죄행위'라는 것입니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만한 사안입니다. 그러나 '사과'는 없었습니다. 청와대는 수사 중인 사인이나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는 내부 원칙을 깨고 10일 이례적으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라고 규정하는데 유감이고, 사실이 아니라는 게 핵심입니다.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 등의 임기를 존중했다"는 말도 또다시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정권 출범 이후에 전 정부 출신 산하기관장에게 사표를 제출받은 행위가 직권남용 등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여부를 다투는 사건"이라는 상반된 해명도 내놨습니다. 임기를 존중한다면서 사표는 왜 강요했던 것인지에 대한 해명은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사표를 제출했다는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3명 역시 상당수가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이런 해명도 내놨습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일부는 사표 제출을 강요받고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전 정부에서 취임해서 2021년 2월 현재까지도 기관장으로 재직 중인 공공기관도 6곳이나 존재하는데,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공공기관은 350개나 되는데, 그중 6곳(1.7%)에 전 정부에서 취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당장 야권에선 "임기가 남은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바꾸기 위해 사표를 강요해 놓고 그 대상자가 블랙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면 '살생부'냐"며 "수백 곳의 공공기관 중 6곳에서 전 정부 기관장들이 재직 중인데 무슨 블랙리스트냐고 한다. 그 왜소한 숫자는 적폐 몰이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나마 청와대가 지목한 6곳 중 2곳은 선거를 통해 기관장을 선출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청와대는 "앞으로 상급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실관계가 확정될 것"이라며 1심 판결에 대한 불만도 내비쳤습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권 인사 중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수긍하고, 사과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일명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상고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 씨는 자녀 입시비리,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이후에도 사과 없이 항소심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조 전 장관도 정 씨 혐의와 관련된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권 인사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여권과 극성 친문 지지자들은 "사법부가 적폐"라며 사법부를 비판하기 일쑤였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재판장에 갈 일도 없고, 설령 재판을 받게 되더라도 1심 재판을 곧 최종심으로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지난해 8월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0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년 소송사건은 총 663만4344건입니다. 이 중 민사사건은 전체 소송사건의 71.7%인 475만8651건, 형사사건은 23.3%인 154만968건입니다. 인구 대비 민사사건은 인구 1000명당 18건, 형사사건은 인구 1000명당 5건에 불과합니다.
형사사건의 경우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경우는 42.7%로, 국민 절반 이상이 1심 판결을 받아들였습니다. 또 항소심 재판에 불복해 상고하는 경우는 34.6%로 더 줄어듭니다. 통계상 상고심까지 재판을 끌고 가는 경우는 재판을 받는 대상자의 10% 남짓에 불과한 셈입니다.
이렇게 권력자와 일반 국민은 재판정에서조차 괴리가 큽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새이지만,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문제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이를 요직에 앉혀 여러 국민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재판부가 판단했는데 사과는 없고, 언론 탓, 재판부 탓을 하는 게 상식적인 행위인지 묻고 싶습니다. 사과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아니면 사과를 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 "우리는 문제 없다"는 청와대를 보며, 오늘따라 춘추관과 청와대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집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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