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교정책 속속 뒤집는 바이든, '무역'엔 신중 모드
향후 협상력 카드 활용 계산
트럼프 지지 러스트벨트 등
유권자 고려 정치적 포석도
[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외교 정책들을 신속하게 뒤집고 있는 반면, 전 정부의 무역 정책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코로나19 통제, 경기부양 등 긴박한 현안에 집중하느라 무역 이슈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고, 중국 등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려는 계산도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유권자들의 요구에 따른 정치적 고려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외교, 이민, 서민보호 등 다양한 분야의 행정조치들을 쏟아냈다. 반면 무역과 관련해선 특별한 행정조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격한 보호무역 정책을 펼쳤다. 중국에 관세폭탄을 터트리며 무역전쟁을 벌였다. 동맹국인 유럽연합(EU)과 캐나다의 알루미늄과 철강에도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며 높은 관세를 매겼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구상,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도 폐기했다. 무역분쟁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가 미국에 불리한 판정을 내린다면서 위원 선임을 반대해 기능을 중단시켰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 홀로 무역전쟁을 강하게 비판하며 미국이 주도적으로 무역에 관한 규칙과 질서를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동맹 및 우방국과의 공조와 다자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역 분야에 남긴 조치들을 당장 뒤집기보다는 일정 기간 방치하면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관세가 대표적이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에 부과한 관세를 향후 협상력 제고를 위해 유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EU와 캐나다 철강 및 알루미늄에 부과한 관세에 대해서도 서두를 의향이 없다. 동맹 복원 차원에선 동맹국 수출품을 안보위협으로 지목한 조치를 거둬들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미국 내 철강 산업계와 노동계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들은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의 기업과 노동자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러스트벨트를 내주면서 정권을 잃었다가 이번 대선에서 러스트벨트 경합주를 간신히 되찾아온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으로선 국내 산업 및 일자리 보호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웬디 커틀러 전 무역대표부 대표는 AP통신에 “관세는 거둬들이는 것보다 부과하는 게 항상 쉽다”고 말했다. 부과했던 관세를 거둬들일 때 직면할 국내 정치적 압력이 크다는 것이다.
WTO 상소기구 정상화 역시 미국의 요구를 관철시킬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상소기구와 관련해 개발도상국의 불공정 보조금 지급과 덤핑에 대한 미국의 제소권 확대를 요구해왔다.
영국, 케냐와 진행해온 무역협상도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정부가 진행 중인 무역협상이나 신규 무역협상보다는 지난해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정착에 주력하면서 노조와 진보 진영의 요구사항을 관철하려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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