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에임 핵' 판단, 게임을 글로 배운 판결"

전현진 기자 2021. 2. 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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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사, '정보통신망법상 악성 아니다' 판례 의구심

[경향신문]

노력 없이도 초고수 행세
결투할 때 악명 높음에도
작년 대법 “법 위반 아냐”

“흔히 말하는 게임을 글로 배운 판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이동희 판사는 지난 8일 1인칭 슈팅 게임(FPS)을 플레이할 때 추가로 구동할 수 있는 자동조준 프로그램인 일명 ‘에임 핵’ 판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모씨 사건을 심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선 유사한 사건에 대해 에임 핵이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 이에 대해 이 판사는 의구심을 나타낸 것이다.

정씨는 2019년 3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콜오브듀티’에 사용할 수 있는 에임 핵을 메신저를 통해 게임 유저들에게 팔아 8억3149만여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정보통신망법상 악성 프로그램 유포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에임 핵은 총기류 같은 무기를 들고 상대팀과 결투를 벌이는 슈팅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가장 악명 높은 프로그램이다. 게임 캐릭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컨트롤한 뒤 상대를 제압하는 게임에서 특별한 조작 없이도 상대 위치를 파악하고 자동으로 조준된 상대를 타격하는 것이 에임 핵이다. 마우스를 마구 휘둘러도 정확히 상대에게 조준점이 맞춰진다. 에임 핵을 쓰면 아무런 노력 없이도 초고수처럼 플레이할 수 있고, 이런 플레이어를 에임 핵을 쓰지 않는 일반 이용자가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올 ‘에임 핵’ 판매자 재판서
혐의 적용 놓고 혼란 빚어
법정서 배그 시연 가능성

에임 핵은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하는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될까. 정보통신망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등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악성 프로그램으로 규정한다. 그동안 에임 핵은 악성 프로그램으로 분류돼 이를 판매한 사람은 수사와 기소 대상이 됐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게임 오버워치에 사용된 에임 핵을 정보통신망법상 악성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판단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대법원은 “(에임 핵이) 본인 의사에 따라 이용자의 컴퓨터에 설치되고 그 컴퓨터 내에서만 실행되며,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자체를 변경시키지 않는다”며 “상대방 캐릭터에 대한 조준과 사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줄 뿐”이라고 밝혔다. 일종의 ‘보조 프로그램’처럼 평가한 셈이다. 다만 “게임산업법 위반죄 등에 해당될 수 있다”고 했다.

정보통신망법은 악성 프로그램을 전달하거나 유포하면 처벌하지만, 게임산업법은 악성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게임사업자가 승인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배포하거나 제작하면 처벌한다. 법정형 역시 정보통신망법상 악성 프로그램 유포죄가 게임산업법상 미승인 프로그램 배포죄보다 높다. 이날 정씨 변호인과 검사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혐의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판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 ‘조준과 사격을 더욱 쉽게 해줄 뿐이고’라고만 돼 있는데, 그게 프로그램 조작·변경이 아닐까 싶은데요. 슈팅을 잘하는 사람이 레벨이 올라가는데, 결국 그 프로그램 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본사 (서버상의) 프로그램에 대한 조작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용자의 측면에서 프로그램을 조작한 것은 되지 않을까요?”

이 판사는 법정에서 에임 핵 프로그램을 시연해보자고 했다. “저도 안 해본 게임이라…. 어떻게 조작되는지 모르니 보기는 해야겠습니다. 게임을 직접 해볼 필요는 없겠지만, 게임은 시연이 돼야 하고 (에임 핵이) (원)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겠습니다.” 법정에서 배틀그라운드 게임이 시연될 것으로 보인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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