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기본소득제, 美알래스카만?..해외사례 보니

김수진 2021. 2. 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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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보편·무조건·정기적' 등 필수요건 드물게 충족
팬데믹 국면서 독일·스페인·이란 등 세계 곳곳서 실험중
기본소득 (PG) [김민아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이재명 경기지사가 제안한 기본소득제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 여야 대권 잠룡들의 공세에 직면하며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 2일 이 대표가 기본소득제를 두고 "알래스카 빼고는 그것을 하는 곳이 없다"고 지적한 발언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기본소득제 도입에 반대하는 이들은 온라인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이 대표의 발언을 공유하며 "알래스카에서만 채택한 기본소득을 한국에서 할 수 있겠느냐", "알래스카는 나라가 아닌 미국의 주(州)에 불과하다. 결국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나라는 없다는 게 팩트"라고 주장했다.

반면 기본소득제에 긍정적인 입장인 이들은 "고용이 어려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기본소득 논의를 '알래스카'로 격하시키는 것은 모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등의 견해를 보였다.

이에 연합뉴스는 미국 알래스카주와 기본소득제 도입을 고려하는 다른 나라 사례를 살펴보고, 이와 관련해 제기된 여러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해봤다.

기본소득제 핵심 요소는…'보편' '무조건' '정기성' 기반 개인에 현금 지급

우선 기본소득제의 개념부터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 고용 여부 등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준의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선별해 지급하는 게 아니며 여건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최우선 요소다. 우리보다 앞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서구 학계에서 이 개념을 통상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으로 명명하는 이유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기본소득 실험실(BIL·Basic Income Lab)은 기본소득의 주요 특징으로 보편성(universal) 외에도 '무조건성(unconditional)', '정기성(periodic)' '현금 지급(cash payment)', '개인 기반(individual)' 등을 꼽는다. 즉,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해야 온전한 의미의 기본소득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을 연구하는 국내외 학계에서 널리 인정하는 기준이며, 특히 '보편성', '무조건', '정기성'은 기본소득제의 핵심이다.

알래스카서 시행중인 '영구기금배당', 기본소득제 핵심 요소 충족

알래스카 2019 '영구기금배당' 보고서 [출처: 알래스카주 홈페이지]

결국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곳이 알래스카뿐이라는 이 대표의 발언은 좁은 의미의 기본소득 사례로 한정한다면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미국 알래스카 주가 '영구기금배당(Permanent Fund Dividend)'이라는 이름으로 시행 중인 기본소득제도가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등의 '필수 기준'을 유일하게 충족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주는 "주의 자원은 주민의 소유"라는 주 헌법에 따라 1976년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 일부를 활용해 알래스카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을 조성했으며, 1982년부터 기금 수익금 일부를 주 거주기간 1년 이상인 모든 주민에게 매년 지급한다.

액수는 영구기금 실적의 5년 평균에 근거해 결정된다. 이 금액은 2020년에는 992달러(약 110만원)였으나 2019년 1천606달러(약 178만원), 2018년 1천600달러(약 177만원), 2017년 1천100달러(약 122만원), 2016년 1천22달러(약 113만원) 등으로 작년을 제외하면 최근 수년간 1천달러 이상이었으며, 2015년에는 2천72달러(약 230만원)로 예년보다 높은 편이었다.

알래스카 외에 마카오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 배분 계획(Wealth Partaking Scheme)'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주민에게 매년 현금을 지원하지만 '기본소득'의 원 개념에 부합하는 핵심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견해가 있다.

마카오의 경우 영주권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지급 금액에 차이가 있고, 해당 계획의 근거 법안이 1년짜리여서 매해 승인이 이뤄져야만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래스카와는 차이가 있다.

독일·스코틀랜드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실험·연구 중

전 세계에서 기본소득제 관련 실험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인 곳 [출처: 스탠퍼드대 기본소득 실험실 홈페이지]

비록 당장 시행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기본소득제나 이를 기반으로 한 정책을 고려하며 실험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인 곳은 많다.

2018년 설립 직후부터 기본소득제를 연구해 온 민간싱크탱크 LAB2050의 이원재 대표는 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일정기간 대상자에게 소득을 지급하면서 그 변화를 관찰한 실험이 전 세계적으로 여러 건 있다"며 "유명한 핀란드 사례를 비롯해 독일, 스페인, 미국, 나미비아 등에서도 정책 실험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스탠퍼드대 BIL이 집계해 홈페이지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핀란드 등 전 세계 39곳에서 기본소득제 관련 실험이 완료됐고, 독일, 스페인, 이란 등 17곳에서 진행중이다. 또한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 등 8곳에서 관련 실험이 진행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에서 경기도가 추진하는 청년기본소득과 농촌기본소득 정책도 각각 '기본소득 실험 진행 중인 사례', '제안된 사례'로 소개됐다.

이 중에서도 최근 출범한 독일의 기본소득 실험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DIW)는 작년 8월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젝트(Pilotprojekt Grundeinkommen)'를 시작했다. 18세 이상 성인 122명에게 3년 동안 매월 1천200유로(약 161만원)를 지급해 1천300여명의 대조군과 비교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체 참가자 1천500명을 모집하는데 150만여명이 응모하는 등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독일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젝트(Pilotprojekt Grundeinkommen)'안내문 표지 [출처:독일경제연구소(DIW)]

지난해 2년간 지자체 중심의 기본소득 연구 결과가 나와 정부 차원의 정책 실험을 추진 중인 스코틀랜드 사례에도 관심이 쏠린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2년 동안 25만 파운드(약 3억8천만원)를 에든버러, 글래스고, 파이프, 노스에어셔 지자체에 지원해 '시민기본소득(Citizen's Basic Income)' 실현 가능성 연구를 진행했으며, 지난해 6월 최종 결과를 담은 리포트가 발간됐다.

이 리포트는 기본소득제를 통해 아동 빈곤, 실업, 보건, 재정 복지 등의 문제가 개선되어 이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짓고는, 향후 3년 동안 정책 실험을 진행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기본소득제를 고려할) 때가 왔다"고 발표하는 등 정책 실험에 긍정적이다. 다만, 이는 영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실현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어쨌거나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은 전 세계 공공·민간 영역 곳곳에서 진행 중이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실물 경기가 악화하면서 관련 연구·논의가 가속화하고 있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gogo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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