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방역 이유로 다 참았는데.."우리가 이기적인가요"
[한겨울 길바닥에 무릎 꿇은 사람들… "퇴원만은 안 돼"]
지난주 서울시청 앞. 머리가 희끗한 한 남성이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강제 퇴원 결사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겨울 차가운 길바닥에 무릎까지 꿇으며 호소에 나선 이들은 서울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보호자들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1일, 이들에게 "15일까지 병상일 비워달라"고 통보했습니다.
행복요양병원을 '코로나 전담 요양병원'으로 지정했다며, 예비 코로나 병상 확보를 위해 기존 환자들은 나가라는 겁니다.
보호자들이 한겨울 길바닥에 나온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병원 비우라" vs "생명줄 놓을 순 없어"]
행복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260여 명.
대부분 8·90대 초고령에, 치매와 파킨슨 병 등을 앓고 있는 중증 질환자입니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스스로 음식을 삼키지도, 자녀가 찾아와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중환자가 대부분입니다.
하루에도 상태가 몇 번씩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합니다.
때문에 환자 상태를 잘 알고, 세심하게 살펴주는 좋은 요양병원과 의료진을 만나는 일이 사실상 환자의 '생명 연장'을 좌우한다고까지 보호자들은 말합니다.
보호자들은 행복요양병원이 "환자의 생명줄과도 같은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곳을 떠나게 된다면, 중증 환자를 받아줄 새로운 병원을 찾는 것도, 운이 좋아 새 병원을 찾더라도 적응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했습니다.
'요양난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평소에도 병원 옮기는 일이 쉽지 않은데,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호소합니다.
코로나 전담병원 지정이 '날벼락'인 건, 환자 뿐 아니라 병원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진들은 대부분 누워만 있는 고령의 중증 환자들이 병원을 옮기는 것 자체가 환자의 상태에 무리를 준다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의료진들도 오랫동안 중증 노인 치료에 특화돼있던 업무를 그만두고 코로나 환자 치료라는 완전히 새로운, 위험한 업무를 맡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때문에 2백 명이 넘는 직원들은 만약 행복요양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 대부분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부모님 병상은 못 뺍니다… 제가 이기적인 건가요?"]
행복요양병원은 그동안 '코로나 청정병원'이라고 할만큼 철저하게 방역을 해왔습니다.
고령의 환자가 많은 곳인 만큼, 코로나 발생시 수많은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은 물론 환자 보호자들도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따라왔다고 합니다.
지난 6개월은 병원 출입은 물론,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것조차 금지됐습니다.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부모님 얼굴을 한 번 보지도 못했습니다.
부모님 손 한 번 잡지도 못했던 보호자들의 심정이 그간 어땠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코로나 방역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기꺼이 따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병상을 빼라'는 정부의 지침은 차마 따를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너희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냐, 이런 국가적 위기상황에 병상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제가 병원에 누워있으면 저는 양보할 수 있겠어요. 제 아들이 누워있어도 옮겨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뻔히 절망하실줄 알고 돌아가실 가능성이 많다 라는 걸 아는 상황에서 도저히 부모님의 병상을 빼란걸 할 수가 없어요.."
MBC 뉴스데스크에 지난 9일 관련 보도가 나가자 서울시는 "15일까지 병원을 비우라는 요청은 연기하겠다"라고 한 발 물러났습니다.
시는 병원 측은 물론 환자, 보호자와도 협의를 더 하겠다고 했습니다.
환자들은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MBC 보도 이후 한 발 물러선 서울시… "충분히 협의할 것"]
코로나가 언제 또 다시 확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코로나 전담 요양병원이 필요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절박한 다른 환자의 병상을 빼앗는 방식이어야만 할까요? 기존 요양병원 중 자발적으로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하기를 희망하는 병원으로부터 신청을 받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또 기존 코로나 전담병원에 추가로 더 많은 지원을 해서 요양 환자 병상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 위기 속에 모두가 개인의 권리를 잠시 접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가족이 안전하게 치료받게 해달라는 것, 코로나 이전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권리입니다.
"우리가 이기적인 거냐"는 이들의 목소리가 코로나 방역이라는 명분 앞에서는 그냥 묻혀도 되는 것인지, 너무 당연한 것들이 너무 많이 예외가 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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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림)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084403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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