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후보자는 왜 본인이 쓴 박사 논문을 파쇄했을까?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오늘(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채택됐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은 부적격 의견을 밝혔지만, 여당은 단독 표결을 통해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야당 위원들이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반대하며 가장 크게 문제로 삼은 것은 황 후보자의 박사학위 논문 관련 의혹입니다. 2017년 황 후보자가 쓴 박사학위 논문이 비슷한 시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발주로 작성된 연구용역 보고서와 여러 군데에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해당 연구용역을 수주한 사람이 공교롭게도 황 후보자의 지도교수 김 모 씨였다는 점이 의혹을 키웠습니다.
야당은 이러한 정황을 근거로 황 후보자가 지도교수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고 논문을 작성한 것은 아닌지 추궁했지만, 황 후보자는 "연구용역 수주 사실을 알지 못했다", "메인 바디(주요 내용)는 다르다"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황 후보자는 나아가 '논문 작성 시 용역보고서를 봤다면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청하겠느냐'는 국민의힘 이달곤 의원의 질의에 "그렇게 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 황 후보자 논문과 지도교수의 연구용역보고서, 과연 얼마나 겹치나?
황 후보자가 지도교수의 연구용역보고서를 상당 부분 참고한 것 같다는 야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는 과연 타당한 걸까요.
KBS 역시 황 후보자의 박사논문과 지도교수가 작성한 연구용역보고서를 대조해봤고, 여러 부분에서 일치하는 내용이 발견된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스마트도시의 개념과 정의, 해외 스마트도시 사례 등의 부분에서는 용역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의심할만한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에 대해 황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스마트시티와 관련해 참고할 문헌이 많지 않다보니 비슷한 문헌을 참고했기 때문"이며 "(원 출처를) 인용 표시를 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 "지도교수다 보니까 문제의식 면에서 비슷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도교수와 황 후보자가 각각 비슷한 참고문헌을 인용하다 보니 상당 부분 겹쳐보일 뿐이라는 취지의 해명입니다.
실제로 황 후보자 지도교수의 용역보고서는 그 보고서 자체가 여러 선행 보고서 등 문헌을 광범위하게 인용했습니다. 참고문헌 목록을 살펴봤더니 황 후보자의 논문과 무려 24개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참고문헌의 2/3에 달합니다. 이렇게 참고문헌 자체가 많이 겹치다 보니 비슷한 내용이 겹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해명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황 후보자의 논문에는 다른 선행 보고서가 아닌 김 교수의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이 존재합니다.
바로 각 나라와 도시의 스마트시티 정책을 설명하는 논문 23페이지부터 28페이지까지의 내용입니다. 해당 내용은 지도교수의 연구용역 보고서 32페이지부터 51페이지까지의 <국외 스마트도시 동향 사례>에서 주요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황 후보자는 논문에서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In Sep 2015, announced "Smart Cities Initiative". Announced smart city research and development plan($1.6 billion)/Smart Cities Initiative : A policy focused on responding to climate change, reducing traffic congestion, responding to crime, and promoting economic growth"라고 썼습니다.
이 내용은 용역보고서 상의 "미국은 2015년 9월 'Smart Cities Initiative'를 선언하고 총 1.6억 달러 규모의 스마트시티 연구개발 계획을 발표/Smart Cities Initiative : 기후변화 대응, 교통 혼잡 감소, 범죄 대응, 경제성장 촉진 등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라는 내용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황 후보자는 이 내용의 출처로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펴낸 <스마트 시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 등을 논문에 적시했지만, KBS가 해당 연구 문헌을 확인한 결과 어디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인용 출처를 실수로 잘못 밝혔거나 감춘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KBS는 인용 출처를 잘못 표기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문헌에서 인용된 부분인지도 광범위하게 검색해봤지만, 문제의 대목은 지도교수의 연구용역 보고서 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석연치 않은 국문 논문 파쇄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 내내 황 후보자에게 국문으로 작성된 논문을 보자고 요구했습니다. 황 후보자 측이 '표절검색 엔진 상으로 표절율이 5%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다'는 취지로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문 논문이나 국문 보고서를 토대로 표절율을 산출하는 검색 엔진인만큼 영문 논문은 표절율이 정확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영문 번역 전 국문 논문을 봐야 연구용역 보고서 등 국문 자료와의 유사점이 더 명확히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황 후보자는 국문 논문을 제출하라는 야당 측 요구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답했습니다. 처음에는 '국문으로 논문을 작성한 뒤 이를 바탕으로 심사를 받았고, 추후 최종 제출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영문 번역을 의뢰했다'고 했다가, '국문본을 찾아보니 없다. 영어 번역을 맡긴 다음 '파쇄'했다'는 입장을 밝힌 겁니다.
국민의힘 이달곤 의원은 "박사 학위(논문)을 한글판으로 만들고 번역을 맡겼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지도교수, 후배와 (후속) 논문 작성도 했다면 (국문 논문) 파일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라면서 "국문 파일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사람들이 서로 믿고 일을 하겠느냐"라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같은 당 최형두 의원 역시 "장관 후보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자기 나라 말로 써놓고 그 글을 숨기고, 자기가 구사할 줄도 모르는 언어로 된 논문만 남겼다는 것은 사람들이 알면 굉장히 의아할 대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여당 의원들조차도 "황희 후보자가 국문으로 된 논문이 없다는 것은 정말 유감스럽다"(이병훈 의원), "국문으로 남겨놓지 않은 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한번 찾아봐 달라"(유정주 의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문 논문은 끝내 국회 문체위에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 "박사학위 논문 쓰는데 3,4개월 걸려"…풀리지 않는 의문
황 후보자는 논문을 영문으로 낸 이유에 대해 "스마트시티에 대한 기록을 영문으로 남겨서, 다른 나라에 기록으로 남기자는 차원도 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공들여 작성한 국문 논문을 굳이 파쇄한 이유는 납득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황 후보자의 국문 논문은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황 후보자의 지도 교수는 앞서 KBS에 "황 후보자가 국문으로 논문을 작성했고 심사도 국문으로 진행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따라서 연세대 도시공학과에는 황 후보자가 심사 과정에 제출한 국문 논문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황 후보자의 논문을 번역한 번역회사 역시 해당 국문 논문을 아직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KBS는 해당 번역회사를 확인해 황 후보자의 국문 논문을 보관하고 있는지 질의했지만, 논문 번역 의뢰를 맡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회피했습니다.
황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데 약 3~4개월이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3~4개월 만에 쓴 논문은 과연 박사학위에 걸맞은 수준의 고유성과 전문성을 갖출 수 있었을까요? 국회의원이 아닌 일반 박사과정 학생이었더라면, 박사 논문 집필과 심사 통과를 한 학기 만에 마칠 수 있었을까요?
국회 문체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황 후보자의 '논문 미스테리'를 끝내 풀지 못한 채, 연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논문 표절 논란 등에 대해 검증을 정식으로 의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형원 기자 (roedie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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