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비대면 설'..어르신 마음도 살피는 필수노동자들
"외로운 어르신들 마음도 살펴야"
시설 요양보호사들에게 명절은 ‘좀 더 바쁜’ 평일일 뿐이다. 성남의 한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정아무개(53)씨는 12일 설날 당일에도 11시간 반 동안 야간근무를 서야 한다. 6년 동안 일하면서 명절 때 쉰 적은 지난해 추석 단 한 번밖에 없다. 그마저도 자의로 쉰 게 아니라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직전에 퇴근하다 왼쪽 발목이 부러져 입원했어요. 근무가 잡혀있었는데 못 나갔죠.” 다들 쉬는 명절에 일하면서 받는 명절수당은 10만원 뿐이다. 그러나 정씨에겐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다. “우리가 쉬면 어르신들은 뭘 드시나요. 대변 소변은 누가 받고요. 누군가는 해야죠.”
대면 돌봄업무를 맡는 ‘필수노동자’인 시설 요양보호사들에게 명절은 언제나 ‘먼 나라 얘기’다. 이번 설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면회’까지 챙겨야 한다. 자식들을 직접 보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마음도 살펴야 한다.
설을 앞두고 요양보호사들은 ‘비대면 면회’ 준비로 마음이 바쁘다. 요양보호사 이아무개(58)씨가 일하는 경기도 수원의 한 요양원은 이번 설에 화상 면회를 진행한다. 이씨는 “노트북을 하나 놓고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5~10분 정도 자녀들과 화상통화를 하게 될 예정이다. 평소에도 신경 쓰지만 한복 입혀드리고 기초화장도 해드리느라 바쁠 것 같다”며 “노트북 넘어 자녀가 있다는 걸 이해 못 하는 분이 있을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비대면 면회지만 요양원마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정씨의 요양원에선 명절 때 화상 면회 대신 요양원 1층 벽면의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어르신과 자녀들이 마주하는 비대면 면회를 진행한다.
요양보호사들은 비대면 면회로 보호자가 몰리는 대면 면회보다 몸은 상대적으로 편해졌지만 마음은 편치않다고 토로한다. 자녀들을 못 보는 어르신들의 감정이 요양보호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씨는 “조금이라도 인지 기능이 있는 분들은 명절을 너무 힘들어한다. 며칠 전부터 날짜를 묻고 ‘구정이면 우리 아들 오겠네’라고 말한다”며 “코로나19라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대다수가 이해 못 한다. 안 찾아와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우실 때는 우리도 코끝이 찡해져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정씨도 “얼마 전 한 어르신이 며칠이냐고 물어봤다. 명절이 가까워지니 자식들이 오리라는 기대감이 드는 거다. 못 온다고 하면 체념하는 표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명절이 끝나면 겪을 ‘인력 부족’도 걱정이다. 올해부터 30명 이상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도 관공서 공휴일을 유급 휴일로 보장받는다. 그러나 대다수 시설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휴일근로수당 지급을 꺼려 휴일에 일한 요양보호사들은 그 달 안에 대체휴일을 정해 쉬게 된다고 한다. 토요일과 겹치는 13일을 제하면 설 연휴에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대체휴일 이틀이 생긴다. 대체휴일 때 인력이 비는 만큼 ‘돌봄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씨가 일하는 곳에선 보통 요양보호사 4명이 어르신 24명을 돌보지만, 대체휴일이 겹쳐 두 명만 빠져도 2명이 24명을 돌봐야 한다. 이씨는 “아무리 인력 충원을 외쳐도 요양원은 들은 척도 않는다. 인력이 부족하면 결국 어르신들을 제대로 돌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국고보조금에 의지하는 민간 요양기관도 많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이대로면 어르신들을 정부가 방치하는 꼴”이라며 “정부가 책임지고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절 내내 일해야 하는 요양보호사 정씨는 연휴가 끝난 뒤 부모님을 만나러 갈 예정이다. 다른 요양원에 어머니를 둔 이씨는 어머니를 못 본 지 1년이 넘었다. 명절에 자신의 부모를 볼 수 없는 요양보호사들은 이번 설에도 ‘다른 부모님들’을 보살핀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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