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위로하는 코로나 설연휴..봄은 옵니다

전지현,이향휘,오수현,서정원 2021. 2. 1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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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 집합금지 '집콕'에 지치면
추사 지조 담은 '세한도' 보고
세계적 작가 양혜규 전시 관람
돈키호테 꿈·희망 담은 뮤지컬
한국형 우주영화 '승리호'
따뜻한 사랑 영화 '새해전야'
랜선 국악·클래식 공연도 풍성
코로나19를 물리치기 위해 황금빛 갑옷을 입은 장군이 서울 광화문에 왔다. 문화재청이 11~14일 설연휴기간 동안 경복궁 광화문에 금갑장군(金甲將軍)이 그려진 문배도(門排圖)를 부착했다. 조선시대 정월 초하루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福)을 구하는 의미로 궁궐 정문에 그림을 붙이는 풍속을 재현한 것이다. 도화서 화가들의 강렬한 그림이 시공을 초월해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한다.

설연휴 5인 이상 집합 금지로 '집콕'에 지치면 문화예술 나들이를 떠나보자. 극장과 박물관, 미술관 등이 철저한 방역과 거리두기로 관람객을 반길 준비를 마쳤다. 여전히 외출이 두렵다면 다양한 온라인 문화예술도 기다린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추사 김정희 세한도.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전시

암담한 코로나19 터널의 끝은 언제 나타날까.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4월 4일까지) 관람을 추천한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 그림 '세한도'(국보 제180호)와 작가 미상의 풍속화 '평안감사향연도'를 전시해 한겨울 추위인 세한을 함께 견디면 곧 따뜻한 봄날 같은 평안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진열대 앞으로 가면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곧은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그려 선비의 지조를 세운 '세한도'가 펼쳐져 있다. 마른 붓에 먹물을 조금만 묻혀 거칠게 그려내 추위와 외로움을 강조했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논어 구절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청나라 문인 16인과 한국인 4인의 세한도 감상 글로 이뤄진 길이 14m 세한도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다.

'평안감사향연도'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선망했던 평안감사로 부임한 순간의 영예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잔치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두 작품은 삶의 고락(苦樂)이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겨내고 기뻐할 수 있다고 일깨워준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3월 1일까지)는 조선이 문치(文治)뿐 아니라 무치(武治)를 겸비한 나라였음을 증명한다. 군사들이 착용한 갑옷과 투구, 무기, 군사 깃발 등 다양한 유물 176점을 펼쳤다. 독일 라히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과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시대 갑옷과 투구, 무기 등 40여 점이 국내에 처음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설치된 양혜규 침묵의 저장고 클릭된 속심. [사진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지난해 글로벌 미술전문매체 아트시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20명'으로 선정된 설치미술가 양혜규 개인전 'O2 & H2O'(28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빛에 찰랑거리는 푸른색 대형 블라인드 작품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이중의 겹을 이룬 블라인드 154개가 몸을 막아서고 빛을 거르지만, 냄새와 소리는 그 틈새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다리미, 헤어드라이어, 냄비, 마우스 형태 조각에 바퀴를 달고 방울을 붙인 조각군 '소리 나는 가물(家物)'(2020)도 눈길을 끈다. 목우공방이 제작한 나무 숟가락 108개가 진열된 설치작품은 먹고 사는 문제를 상징한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단순한 진심: 51 Lives'(4월 11일까지)에서는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박유아 작가가 한국을 떠난 해외 입양인들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 '위버멘쉬' 연작이 걸려 있다. 작가는 사회 구조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설정하는 니체의 위버멘쉬(초인) 개념을 이번 초상 프로젝트 제목으로 정했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 생기 넘치는 공연 무대

두달 셧다운의 충격을 딛고 다시 무대에 선 공연계가 나흘간의 설 연휴에도 쉼 없이 달린다. 연말 연시 공연을 볼 수 없었던 관객 입장에선 이제야 제대로 차려진 만찬 앞에서 골라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지긋지긋한 현실 앞에서 희망과 꿈을 되찾고 싶다면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를 보자. 때론 무모하고 허황돼 보이는 꿈일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무대 위 돈키호테를 보며 느낄 수 있다. 연기파 배우 조승우와 폭풍 성량을 보이는 홍광호, 노래와 연기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류정한이 3인3색 매력을 뽐낸다.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나흘간 총 7회 공연을 펼친다.

뮤지컬의 매력은 강력한 '넘버(노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몬테크리스토'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캣츠'가 안성맞춤이다. 시종 일관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무대 앞에서 때론 감미롭고 때론 회한에 찬 노래에 흠뻑 빠질 수 있다. 하루도 빠짐 없이 나흘간 6~7회 공연을 연다.

부모님을 모시고 공연장에 간다면 서울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면 어떨까. 초연한지 25년이 지난 창작 뮤지컬로 한 여인의 삶을 통해 구한말 조선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보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초록마녀'도 설 연휴에 미리 찾아온다. 16일 정식 개막하는 '위키드'는 12일부터 14일까지 5회차 공연을 프리뷰 형식으로 제공해 관객과 만난다. 20~30%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연극 무대도 다채롭다. 이순재, 신구, 박소담이 출연하는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대학로에서, 정웅인·김선호가 호흡을 맞추는 '얼음'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관객을 기다린다.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선 마니아층이 형성된 '알앤제이'가 공연된다.

◆ 모처럼 훈풍 불어넣는 영화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모두에서 볼거리가 풍성하다. 관객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작들이 설날 스크린을 장식한다.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이 연출하고 송중기·김태리·진선규·유해진이 주연한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는 단연 최고의 화제작이다. OTT 작품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5일 190여 개국에서 공개 뒤 하루 만에 넷플릭스 영화 1위에 올랐고, 당분간 그 기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승리호는 한국 영화 중엔 보기 드문 SF 작품이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로 진출한 2092년 우주쓰레기를 주워 생활을 부지하는 승리호 선원들의 얘기를 그렸다. 이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특히 한국의 발달한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상찬 받는다. 해외의 유수 SF 작품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다. 코로나19 불황에 결국 넷플릭스행을 택했지만 극장에서 봤더라면 감동이 배가됐을 영화다.

자녀들과 함께 볼 작품으로는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이 좋겠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관객 수 100만을 돌파하며 얼어붙은 극장가에 훈풍을 불어넣고 있는 명작이다. 탄생 전 영혼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성격을 찾는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영혼 '22'와, 예기치 못하게 이 세상에 떨어져서 22를 돕는 멘토 '조'가 이 작품 주인공들이다. 조는 22와 함께 '태어나기 전 세상'과 지구를 오가며 삶의 의미에 대해 깨닫는다. 깊이 있는 메시지로 작품은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로부터도 호평 받는다.

설 연휴를 앞둔 10일 개봉한 '새해전야'도 주목할 만하다. 새해엔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은 커플들의 두려움과 설렘 가득한 일주일을 그리며 관객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감동을 전한다. 작품의 따뜻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좋다. 김강우·유인나·유연석·이연희·이동휘·염혜란·최수영·유태오 그리고 중국배우 천두링 등 9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 랜선 타고 국악·클래식 여행

주요 클래식 연주단체나 연주자들의 대면공연은 이번 설 연휴 기간 중 열리지 않지만, 유튜브 등을 통한 랜선음악회가 마련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유튜브 공식채널을 통해 11일 오후 6시부터 14일 오후 6시까지 72시간 동안 '서울시향과 함께하는 미라클(美樂Classic) 서울 -부암동 편'을 방송한다. 싱어송라이터 정재형과 서울시향 단원들이 지난해 10월 함께 제작한 약 80분 길이의 영상에는 '미스트랄(Mistral)', '라 메르(La Mer)', '안단테(Andante)', '편린' 등 정재형의 피아노 연주 앨범 수록곡이 담겼다. 연주 영상은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소설가 현진건의 생가 집터에서 촬영돼 고즈넉한 풍경이 음악과 어우러진다.

국립국악원의 온라인 설 공연 '랜선타고 설설설'도 눈길이 간다. 11일부터 14일 사이 매일 오후 3시부터 △동궁 세자의 하루 △영화를 만난 국악 판타지 : 꼭두 이야기 △1828, 연경당 △프랑스 샤이오극장 개막작 : 종묘제례악 등 4개 공연 영상이 하루 한편씩 국립국악원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TV에서 실시간 스트리밍된다.

국립극장은 설연휴 기간 동안 두 편의 온라인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서 상연한다. 11일부터 13일까지 제공되는 국립무용단의 '무용영상 : 희망의 기본'은 무용수의 기초 훈련과 몸 풀기를 위한 전통 춤사위 모음인 국립기본을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1962년 창단 때부터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은 국립기본을 추며 하루를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이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11일부터 14일까지 시청할 수 있는 '2020 마스터피스 : 정치용'은 지난해 11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 공연 실황 영상이다. 작곡가 김택수의 '문묘제례악에 의한 국악관현악-아카데믹 리추얼, 오르고 또 오르면' 등 창작 국악 관현악작품 4곡을 연주한다.

[전지현 기자 / 이향휘 기자 / 오수현 기자 /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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