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종식'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상상합니다 [코로나는 처음이라]
〈5〉 생애 첫 코로나, 농인의 귀가 되어줬다
2020년 2월 4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1층 브리핑실. 김강립 차관이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브리핑에 나섰다. 그는 국내 1호 확진자와 접촉한 45명의 격리조치(14일)가 해제됐고, 16번째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 등을 전했다. 권동호 수어 통역사는 김 차관 왼편에 서서 손짓과 표정으로 발표내용을 전달했다.
이날은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 수어 통역사가 처음 배치된 날이었다. 전날 장애인단체와 농인 정부의 재난브리핑에도 통역을 붙여달라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보낸 터였다. 정부는 다음달 곧장 통역사들을 배치했다. 권 통역사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브리핑은 생중계됐다. 권 통역사는 발표자료를 미리 살펴보지 못했다. 현장에서 말을 듣고 바로 수어로 통역했다. 발표문엔 ‘역학조사’,‘특별검역’ 같은 전문용어가 가득했다. 얼굴엔 드러나지 않았지만 브리핑 내내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확산 초기에 정부는 수어 통역사를 브리핑에 세워야 할 이유는 알았지만 자료를 미리 보여줘야 한단 인식까진 없었어요. 브리핑에 참여하는 통역사들이 늘어나면서 ‘적어도 10분 전엔 발표자료를 달라’ 같이 필요한 것들을 말씀드렸어요. 그러면서 재난브리핑에서 수어통역도 자리를 잡아갔던 거죠.”
청각장애인과 농인이 온전히 일맥상통하는 말은 아니다. 농인은 청각장애가 있는 까닭에 한글로 말하는데 어려움(언어장애)이 따르고, 손동작과 표정으로 구성된 수어를 1언어로 의사소통하는 사람들이다. 청각의 일부를 잃은 청각장애와 다르다. 권 통역사는 농인을 ‘아예 소리를 만나보지 못한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완벽히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음성정보로 전달되는 코로나 정보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자정보가 있지 않느냐는 반문도 하지만, 권 통역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건 반쪽짜리예요. 우리가 외국영화를 볼 때 소리는 끄고 자막만 보진 않지 않잖아요. 농인들에겐 수어가 소리입니다”
지난해 브리핑 현장에 서면서 큼지막한 중압감에 시달렸다.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내용을 제대로 통역하는 작업은 까다로웠다. 감염병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데, 돌아가는 사정이 정확히 어떤지를 농인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에 집중했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수어통역을 할 때, 뭐랄까 (수어의) 끝판왕 같단 생각을 했어요.”
#어쩌다 수어통역
권동호 통역사는 2000년 대학에 들어갔다. 유아교육학을 전공했다. 4학년이 된 봄, 현장실습을 했다. 서울 목동에 있는 유치원에 한 달 내내 출근했다. 아이들은 천방지축이었다. 30명쯤 되는 아이들을 움직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아이 한 명만 제 의도에서 벗어나면 전체가 흔들렸다”고 회상했다. 이걸로 직업 삼긴 어렵겠구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커졌다.
곧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시점이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진로가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자, 치열하게 대안을 고민했다. 신입생 시절부터 활동해 오던 동아리 ‘예손’(예쁜 손의 줄임말)에서 길을 찾았다. 수어로 율동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길거리 모금활동을 벌이는 동아리다.
예손의 창립멤버인 모상근 선배(현 MBC뉴스 수어 통역사)는 후배들 만나면 늘 말했다. “얘들아 수화 통역사 공가공인 시험이 있으니까 한 번 봐도 좋겠다.”
2006년, 수화 통역사 자격증을 준비에 나섰다. 상반기엔 필기시험, 하반기에 실기평가가 치러야 했다. 아침마다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고 ‘장애인복지’, ‘수어의 이해’를 비롯해 4과목을 공부했고 간신히 통과했다. 오히려 실기평가는 자신있었다. 수화 동아리 활동를 해온 덕분이었다.
#농인의 대변인은 아닙니다
통역사 자격을 갖춘 권 통역사는 수어통역센터(한국농아인협회) 소속 통역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따뜻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좋은 일을 한다는 주변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늘 받으며 일했다. 농인과 청인 사이의 의사소통을 매개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청각장애에 가진 편견이 보였다.
이비인후과에 간 적이 있었다. 진료를 받아야 하는 농인들 옆에 앉아 통역하는 일을 맡았다. 그 때 진료를 보던 의사가 환자 귀에 가까이 가더니 크게 외쳤다. “아 해보세요, 아.” 깜짝 놀랐다. 청력을 공부한 전문의마저 농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단순히 청력손실로 ‘크게 말하면 조금은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소리가 없다는 걸 사람들은 상상을 못 해요. 그러니 ‘크게 말하면 알겠지’, ‘입모양 크게 하면 알겠지’하는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수어 통역사라는 직업군도 주목받았다. 작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과 환자 치료에 매진하는 국내 의료진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 주자로 권 통역사를 지목했다. 수어 통역사란 직업군이 관심받는 건 반길 일이었지만, 마치 ‘농인의 대변인’처럼 보이는 건 경계했다.
“종종 저에게 농인들의 생활이나 고충을 묻는 분들이 있어요. 통역사 입장에서 표면적으로야 알지만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스러워요, 제가 다 아는 것처럼 보일까봐요.”
#소망
권 통역사는 2012년 프리랜서로 나섰다. 매일 아침엔 종합편성채널에서 뉴스 통역을 맡고 있다. 작년부턴 정부의 공공브리핑에 참여하면서 일주일에 2~3차례 세종과 오송을 찾는다. 뉴스 생방송에 나서는 데가가 방역 정책에 매달리는 당국자들과 만나다 보니 건강관리나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어딘가에 가서 맘편히 밥을 먹고, 즐기질 못했다. 그는 아내에게 특히 미안해 했다. 아내는 언론에 등장하는 남편을 보며 늘 노심초사다. 노출이 잦을수록 비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런 소망을 이야기했다.
“질병관리청에서 코로나 종식 선언까진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발표를 할 때 제가 옆에서 통역하는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어요. 작년 여름쯤이라고 상상했는데 1년 넘게 이어질진 몰랐죠. 누구나 다 소망이 묻혀버린 것 같아요. 일단은 (코로나가) 빨리 끝나면 좋겠습니다.”
박준규 기자/nyang@heraldcorp.com
〈인터뷰를 마치고〉 권 통역사는 이번 설 연휴에도 집과 일터를 오가야 한다. 아침뉴스 통역을 해야 하고, 정부 브리핑 일정도 잡혀있다. 올해 부부의 작은 소망은 1박2일로 여행이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맛집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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