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역대급 부양책'에 뜨거워지는 인플레이션 논란
미국과 유럽에서 잇따라 역대급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자, 세계 유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자 이에 정부 인사들이 반박하며 인플레이션 ‘논쟁’이 일고 있다.
포문을 연 건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다. 그는 4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현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지내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래서 국가경제위원회 이사를 지낸 저명한 경제학자다.
그는 경제가 2008년 경제위기 직후보다 양호한데도, 바이든 정부가 당시보다 훨씬 큰 부양책을 시행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2015년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맡았던 올리비에 블랑샤르도 트위터를 통해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여러 근거를 들어 경제 상황이 2008년 경제위기 때와 비교했을 때 비교적 양호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먼저 코로나 백신이 출시되며 고용상황이 개선돼 실업률이 감소세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미 풀린 유동성도 근거로 들었다. 작년 부양책으로 풀린 1조 5000억 달러(약 1600조원) 가량의 여유자금이 소비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달러 약세, 주식 및 채권시장 호황, 연준의 제로금리 정책 등 통화정책 상황도 좋다고 평가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대담한 조치에는 신중한 검토가 따라와야 한다"며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수준에 가까운 경제 부양책은 우리 세대가 본적없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시장도 곳곳에서 인플레이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마침내 인플레이션이 돌아왔다"고 평하기도 했다.
먼저 미국 국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장단기 금리차가 확대됐다. 8일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판데믹 이후 처음으로 장중 2%를 넘었다. 이는 미래에 경제 성장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늘었다는 의미다. 전날 미국의 기대 인플레이션율(BER)도 2.21%로 상승해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의 인플레이션율도 지난 1월 10년 내 최고치인 0.9%를 찍었다.
주가와 유가도 바이든 정부가 발표한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북해 브렌트유는 지난주 6.2% 오른 데 이어 월요일인 8일 1% 추가 상승했다. 뉴욕 S&P500 지수는 8일까지 6거래일 연속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9일 다소간 하락하며 혼조세를 보였다. 영국 투자회사 로얄 런던 자산 매니지먼트의 책임자 트레버 그리담은 "아주 작은 하락은 오히려 변동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강세장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우려에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7일 CNN에 인플레이션에 대해 "고려해야 할 위험"이라면서도 "현실화할 경우 우리에겐 대처할 도구가 있다"고 과도한 우려에 선을 그었다.
그는 또한 "인플레이션 우려는 판데믹에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경제적 손실에 비하면 작은 것"이라며 "굳이 길고 느린 회복으로 고통을 겪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추가 부양책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톰 바킨 리치먼드 연방은행 총재도 옐런 재무장관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바킨 총재는 8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단기적인 물가 변동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대규모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몰고 올 수도 있지만, 미국 경제는 디플레이션 압력에도 노출돼 있다"며 "미국 실업자 구제를 위해서라도 대규모 부양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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