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덜 뽑는데..사범대 정원 '요지부동'

김제림,고민서 2021. 2. 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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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생태계 급변하는데
학과 이기주의 발목 잡혀
대학 정원 조정 지지부진
서울 체육교사 49명 뽑는데
대학 1곳 정원만 80명 달해

◆ 코로나發 대학위기 ③ ◆

서울 S대 경영학부 A교수는 수년 전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려는 타과생이 많자 대학원 정원을 늘리려다 교내 다른 학과 교수들에게서 거센 항의를 받았다. 특정 학과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학과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원'이 곧 대학 내 영향력이나 예산과 연결돼 다른 교수들이 결사반대한 것이다. 당초 A교수 의견에 동조하던 대학 총장도 다른 학과의 반대가 심하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물러났다. A교수는 "교수들이 기업과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훈수를 두지만, 정작 자기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해 씁쓸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산업 생태계는 급변하지만 대학은 10년 전이나 다름없는 학제와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수 중심의 상아탑 내에 머물러 적시성 있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며 결국 대학 경쟁력만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학과 내 정원 조절 문제다. 수요가 많은 학과의 정원을 늘리려면 '정원 총량제'하에서 다른 학과 정원을 줄여야 하지만 학내 반발로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공계 4차 산업혁명 관련 학과들은 학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정부에 대학 정원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수요가 높은 첨단학과 신증설은 대학별 결손인원(편입학 여석 포함)을 활용해 늘릴 수 있다"며 "대학은 결손인원과 편입학 인원을 적극 활용해 첨단 분야 인재 양성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충원이 잘되는 서울 주요 대학에서는 매년 자퇴, 퇴학, 편입 등의 이유로 200~300명 여석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대학 자율로 학칙에 따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분야 융합 전공을 신설할 수 있다고 교육부는 설명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퇴생들이 별로 없어 여석이 잘 나오지 않는 수도권 상위 학과는 첨단학과 증설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대학 내 과잉 공급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전공 가운데 하나는 사범계열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 감소, 임용 선발 인원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지만 사범대 정원은 줄지 않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컴퓨터공학과 입학 정원이 55명(2020년 기준)인 반면 체육교육과는 38명이다. 연세대는 컴퓨터과학과 정원이 66명, 화학과가 45명이지만 체육교육과(교육과학대 소속)는 46명을 선발해 대학 밖 수요와는 동떨어진 학과 규모를 가지게 됐다. 2021학년도 서울 지역 중등임용고시 체육교과 선발인원은 49명에 불과해 단일 대학 체육교육과 학생과 비슷하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 발표한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AI 대학원이나 소프트웨어학과 개설에 있어서는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우수교원 유치와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경쟁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 인력 양성에 도움이 된다"며 "학령인구 감소로 교원 수요가 축소되고 있는 교육 분야는 감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직적인 학과 정원에 학생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기업과 협약을 체결해 학점 이수와 졸업을 하면 곧바로 채용되는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지만 정원이 수요에 미치지 못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정원 50명), 고려대 융합에너지공학과(30명),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52명)다.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한 대학 이사장은 "기업이 더 많은 인원을 채용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지금처럼 대학 정원을 더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현재 정원이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최대치"라며 "정부가 대학 인원 규제를 풀지 않는 한 학생들을 다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수도권정비법이 국토교통부 관할인 만큼 교육부를 비롯해 범부처가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며 "수도권 총정원 규제를 풀 경우 지방대학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제림 기자 /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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