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 몰래"..야망가 김대리가 설연휴에 한 일은? [어쩌다 회사원]

유준호,강영운,강민호 2021. 2.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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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의 사내정치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20·30대 젊은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 특징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키워드가 몇 개 있다. '나(Me)' 우선주의, 현실주의,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등이다. 이건 트렌드다. 하지만 트렌드보다 강한 게 있다. 욕망이다. 직장인의 욕망을 출세욕이라 부른다. '요새 애들'이라고 다를 리 없다. 출세의 기본은 실력이다. 하지만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사내 정치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19다. 학연·지연·흡연 등 '3연(緣)'과 술상무를 필두로 회식 자리를 지배하던 대면 사내 정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사내 정치는 멈췄나. 아니다. 오히려 진화했다. 재택근무와 사라진 회식 등으로 멀어진 직장 상사와의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사내 야망가'들의 시계는 심지어 이번 설 연휴 때도 바쁘게 돌아간다. 매일경제 '어쩌다 회사원'팀이 진화하는 비대면 사내 정치의 세계를 집중 탐구했다.


재능조공형, 유학파 출신 재능 살려…'영상영어 쌤'으로 부장아들 공략

◆ 따라할 수 있겠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유학한 이 모씨. 10대 그룹 중 한 곳에 재직 중인 그는 사내 정치의 새 길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역대 어느 정치의 달인도 시도하지 못한 방법으로 눈도장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만의 비장의 카드는 '영상 영어'였다. 학교 등교가 들쑥날쑥했던 지난해 5월. 자녀 영어교육에 불안감을 느끼던 김 모 부장에게 이씨가 불쑥 '영상 영어'를 제안했다. 부담을 느끼는 김 부장에게 "저도 영어 공부하고 좋다"며 안심시켰다. "직위를 이용한 상사 지시가 아닌 본인의 자발적 제안이라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그렇게 이씨는 김 부장의 중학교 2학년 자녀 영어 선생님이 됐다. 일주일에 두 번씩 10분간 전화 영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어 능력을 십분 활용해 사내 실세 김 부장의 신임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이씨는 "영어가 익숙한 나에겐 이 정도 전화 영어는 큰 부담이 안 된다"면서 "영어를 잊지 않는 자기계발도 하면서 확실한 라인을 만들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번 설 연휴 때도 부장님 아이와 두세 차례 영어 영상대화를 하기로 했다.

중견 제약사 영업사원 박 모씨. 그는 '몸으로 때우는' 야망가로 꼽힌다. 직접 제작한 홈트레이닝 동영상이 그의 비밀 무기다. 10년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몸을 가진 그는 최근 비대면 콘텐츠로 사내 실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박씨의 야망이 빛을 발한 건 재택근무가 본격화한 지난해 9월부터였다. 단체 채팅방에서 실세 강 모 부장이 "재택근무로 뱃살만 늘어간다"고 한마디 했는데, 그는 이를 쉬이 흘려듣지 않았다. 초보자도 따라 하기 쉬운 홈트레이닝 영상을 찍어 부장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우니 안 보내도 된다"던 강 부장은 두세 번 영상을 받고부터는 심화된 학습 방법을 문의하기에 이르렀다. 사무실 출근 후에도 둘은 운동으로 묶인 끈끈한 관계를 자랑한다. 박씨는 "학연·지연으로 라인을 만드는 건 옛 이야기"라면서 "요새는 중년 상사들 사이에서도 자기관리가 대세인 만큼 맞춤형 온라인 콘텐츠로 관계를 다지는 게 좋다"고 했다. 그는 설 연휴용으로 '설날 음식 칼로리 태우기' 유산소 프로그램을 미리 제작해놨다고 귀띔했다.


센스만점형, 단톡방 요약은 나의 힘…온라인 대화 쏙쏙 정리해 보고

◆ 필요한 걸 드려야지~

갑작스러운 재택근무 시행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업무 상황을 재빠르게 파고드는 새내기 직장인의 노력도 포착됐다. 자칫 흐름을 놓칠 수 있는 온라인 회의와 단체 채팅방 대화 정리는 기본이고, 여기에 상사의 관심사를 꿰뚫는 정보 브리핑까지 이뤄지고 있다.

한 대형 광고회사에 다니는 김 모씨(33)는 회사 단체 카톡방을 보면서 매일 눈살을 찌푸린다. "팀장님을 위해 오늘 오전에 있었던 단톡방 대화 내용을 요약·정리했습니다!" 이처럼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20대 후배가 난무하는 대화 속에서 흐름을 자주 놓치는 팀장을 위해 몇 시간에 한 번씩 대화 내용을 요약·보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격 근무를 하는 동안 발생하는 비효율적 의사소통의 간극을 메우면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어린 야망가의 노력에 부장은 "센스 있다. 내게 너무나 필요했던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꼭 필요할 때 아니면 단체 대화에 참여하길 꺼리는 편인 김씨는 "업무에 필요한 대화만 있었던 단톡방이 재택근무 이후 사내 정치를 위한 대화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며 "'혼자 점심 드시기 어려우면 제가 찾아가 함께 식사하겠다'식의 아부성 멘트는 가뜩이나 정신없는 원격 대화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남들 보는 곳에서 사내 정치를 대놓고 하는 건 촌스럽다는 이도 있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유 모씨(32)는 매일 아침 재택업무를 시작한다는 인사와 함께 지난밤 있었던 미국 증시 시황을 부장에게 별도 보고한다. 유씨가 나스닥 종목으로 재미를 봤다는 소문이 났고, 그는 부장이 보이는 은근한 관심을 읽어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부장과 자주 만나는 직원들은 모두 흡연자였다. 그때는 비흡연자인 유씨가 낄 틈이 없었지만 재택근무로 부장과 대면이 줄자 되레 기회가 생긴 셈이다. 유씨는 "부장이 밤낮 가리지 않고 미 증시 상황을 물어오기 일쑤"라면서도 "승진에 도움이 되겠거니 하고 똘똘한 종목을 찾는 데 열중"이라고 밝혔다.


눈도장 찍기형, 오늘도 난 사무실 간다…임원 출근한 날 힘차게 인사

◆ 스킨십의 의미 몰라?

"어? 이사님 출근하셨네요? 점심 약속 있으세요? 없으면 같이 식사하시겠습니까?" 진정한 사내 정치의 고수라면 오프라인 미팅의 중요함도 놓쳐선 안 된다. 비대면을 지원하는 어떠한 현존하는 정보기술(IT)도 대면의 진정성을 구현하진 못한다. 그래서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초반 회사원 이 모씨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로 출근한다. 임원진과 부장의 출근 여부를 전날 미리 확인하고 말이다.

그는 우연인 척 회사에 나와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에 합석한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가 왜 회사에 있는지 안다.

회사가 재택근무를 전면 시행했을 때도 임원진과 부장 등은 '집에 아이가 있어서 힘들다' '집에서는 일이 안 된다'며 거의 매일 회사에 출근했고, 혼자 사는 이씨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출근 도장을 찍었다. 자연스럽지도 우연스럽지도 않았다. 동료들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읽을지 안 읽을지 모를 메신저를 열 마디 보내는 것보다 선물하기를 택하는 이들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 업체에 다니는 최 모씨는 수시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힘내서 일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커피 쿠폰을 팀장에게 보낸다. 재택근무 시행 전에는 팀장 자리에 모닝커피를 올려뒀지만, 이게 불가능해지자 커피 쿠폰을 보내는 것이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팀장을 비롯한 직장 상사에게 "가족과 함께 드시라"며 케이크 쿠폰을 보냈다. 이번 연휴에는 설 당일에 홍삼세트를 선물할 계획이다.

[유준호 기자 / 강영운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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