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도 SF 스릴러..프로젝트 밈 '너를 만난다' 눈길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지난달 30~31일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공연한 프로젝트 밈의 '너를 만난다'는 그간 공연계에서 드물었던 SF 스릴러 장르다.
관객이 공연에 관여하는 '관객 참여형 밀실'을 표방한다. 인간인 척 신분을 속이려는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를 색출하려는 감별사 '세퍼레이터'의 심리 게임을 그렸다.
무대 양쪽으로 나눠 앉은 관객은 배심원이 된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 웹페이지 접속을 통한 투표로 안드로이드 색출에 힘을 보탤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한 '2020년 아트앤테크 활성화 창작지원사업'의 하나다.
고주파의 빛을 이용해 강력한 환상을 이끌어내는 '레이저 파사드'와 사물 등에 프로젝터로 영상을 투영하는 '프로젝션 매핑'을 결합한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실감나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안드로이드를 가두는 레이저 감옥이 하나의 예다.
무엇보다 기술이 이야기 위에 붕 떠있는 것이 아니라 밀착돼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종종 기술과 이야기가 내전(內戰)을 벌여 공연 자체가 산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너를 만난다'는 인간과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을 활용해 통찰해낸다.
프로젝트 밈이 기술 콘텐츠 기반 크리에이터 그룹으로 새로운 공연 형식을 실험하지만, 잘 만든 공연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조명·기술감독 출신 작가 구도윤, 뮤지컬 '빨래'와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작곡가 민찬홍, 미디어 라이팅 콘텐츠 업체 '피라' 대표 이경은과 김상호 디자이너,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연출가 임호경 등이 뭉쳤다.
SF 장르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실험군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소 비현실적인 상황이더라도 SF니까 통용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 밈의 '너를 만난다' 속 안드로이드 역시 아직은 가상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삶을 반추해서 더 의미가 있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감별하는 시스템 '멘다키움'은 딥러닝 기술로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것은 인간 통제의 위험을 갖고 있다. 아울러 감별은 차별은 이어진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안드로이드임을 증명하기 위해 세퍼레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인간다울 필요가 없어. 처음부터 인간이니까." 하지만, 배심원이 볼 때 더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세퍼레이터가 아닌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안드로이드다.
그렇게 '너를 만난다'는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를 오가면서 '인간다움'을 연주한다. 민찬홍 작곡가의 극에 착 달라붙는 음악도 극의 긴장감 조성에 한몫한다.
그간 한국 공연계에 SF 장르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소극장 혜화당이 꾸준히 SF연극 페스티벌을 열어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 열전 2019!'를 통해 SF 연극 '우주에 가고 싶어 했었으니까' 등이 선보이기도 했다. 작년엔 SF 작가 김보영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가 공연했다.
하지만 아직 비교적 다른 장르에 비해 작품 수가 현저히 작다. 최근 영화 '승리호'가 한국형 SF 영화의 물꼬를 터준 것처럼 공연계에서도 시대 흐름과 맞물려 좋은 SF 작품이 잇따라 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너를 만난다' 역시 그 흐름에 있다.
무엇보다 다른 공연이 아닌,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그리고 영화 등 볼거리가 많은 시대에 관객을 불러 들려야 하는 공연계의 고민과도 SF는 맞물려 있다. 관객이 모이지 못하는 코로나19 시대에 그 고민의 정도는 더 깊다.
프로젝트 밈의 대표인 구도윤 작가는 예술위와 인터뷰에서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무엇인지 대해 고민이 많다"면서 "공연장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빛과 영상을 극대화하고, (영상이 아닌)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빛의 감각에 집중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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