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지침, 아랑곳 않는 정부부처 장·차관들
지난해 11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하자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각종 모임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정 총리는 공직사회가 방역관리에 솔선수범하겠다고 약속했다.
뉴스타파는 각 부처 홈페이지에 공개된 장·차관들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통해 공직사회가 먼저 모범을 보이겠다는 총리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검증했다. 검증 대상 기관은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공개한 6개 정부 위원회와 35개 부처청이다. 지난 2월 7일까지 사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국무조정실과 행정안전부 등 8개 부처는 제외했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41개 정부기관 장·차관급 공직자 65명은 공직사회 방역 조치가 강화된 지난해 11월 23일부터 12월 31일까지 모두 1100여 차례, 2억여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1인당 평균 17차례, 금액으로는 300만 원이 조금 넘었다.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후 인사혁신처는 ‘공직사회 코로나 19 방역관리 방안’이라는 특별지침을 마련해 각 부처에 통보했다.
특별지침은 다수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모임과 행사, 회식에서 발생한다며 공직사회가 솔선수범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 강력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업무 내외 불요불급한 모임과 행사·회식·회의는 취소 또는 연기하고, 식사와 다과를 제공하는 것도 최대한 자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특별지침을 만들어 배포한 인사혁신처조차 지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특별지침이 시행된 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이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모두 16차례. 각종 간담회와 직원 격려모임에 사용됐다. 일과 시간이 끝난 뒤 비서진 등 7명과 함께 만찬을 했는가 하면, 주요 현안을 논의한다며 장어구이집에서 12명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인사혁신처는 그동안 고생한 비서진을 격려하기 위해 간단하게 식사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코로나 19 확산으로 나라 전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굳이 회식을 강행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1000명 대에 다다르자 정부는 서울 등 수도권에 5인 이상 사적모임을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10만 원의 과태료를 매겼다.
하지만 5인 이상 모임 금지 지침을 무시한 고위공직자도 있다.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과 강은호 방위사업청장, 김현모 문화재청장이다.
윤종인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광화문의 한 고급 식당에서 국무회의 안건 보고 관련 간담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 식당에는 윤종인 위원장의 일행 10명이 최소 1미터씩 거리를 두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개인정보보호위는 식탁 3곳에 나눠 앉아 식사를 한 만큼 방역 수칙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위의 해명처럼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대화할 수 없는 장소에서 굳이 간담회를 열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당시는 수도권 지역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은 취임 3일만인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용산의 한 한정식 집에서 31만8000원을 사용했다. 홍보 및 공보업무 담당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이 식사 모임에 모두 8명이 참석했다. 방사청은 4명씩 따로 앉아 식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24일 퇴임한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 역시 국무총리의 특별 지침을 귓등으로 흘려 들은 것은 마찬가지다. 왕 전 청장은 퇴임을 한달 앞두고 각 부서장 간담회를 열 차례나 가졌다. 부서장 간담회를 핑계로 사실상 환송연을 한 거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을 하루 두 차례 이용했다. 국회 주요 일정과 현안 보고를 받는다며 일행들과 점심 식사를 했고, 저녁에는 도종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식사 자리를 같이 했다.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 나온 참석 인원은 각각 5명과 7명. 문화재청은 운전기사와 수행비서 등이 동석하지 않고 식당내 별도의 공간에서 식사를 했다고 해명했다.
장·차관급 공무원들이 사용한 업무추진비의 대상 인원이 5인 이상인 경우가 전체 1120건중 756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도시락을 구매해 나눠 먹은 139건을 제외하면 식당 등에서 5인 이상 함께 식사를 한 건수가 617건으로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공직자들이 간담회와 회의 형식을 빌어 식사를 하는 것은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방역 참여를 독려하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총리의 특별지침이 적용된 11월 23일 이후 각종 모임을 스스로 자제한 고위 공무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업무추진비 사용건수가 많은 상위 10개 정부 기관을 조사한 결과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의 경우 장관과 1,2차관 등 3명이 지난해 12월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모두 80건으로 1월에서 11월까지의 월 평균 사용건수(53건)보다 27건 증가했다. 1인당 업무추진비 사용건수 역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41건으로 가장 많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같은 기간 45건에서 80건으로, 기획재정부는 49건에서 54건, 농림축산식품부 34건에서 40건으로 각각 증가했다. 공직사회 방역관리 강화 지침이 시행된 뒤 식사를 동반한 간담회와 회의 등을 줄이기는커녕 늘린 것이다.
허태웅 농촌진흥청장 업무추진비 사용 0건, "회의 후 식사 안 해도 업무수행 문제없어"
반면 업무추진비 사용건수가 10건 미만인 공직자는 15명으로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특별지침이 시행되고 12월말까지 업무추진비를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은 고위 공무원은 허태웅 농촌진흥청장 단 한 명 뿐이다.
이와 관련 성제훈 농촌진흥청 대변인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부분의 회의를 비대면으로 전환했고, 대면 회의가 불가피한 경우 회의를 마치고 나서 식사를 하지 않아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이 없는 것"이라며 "청장의 업무를 수행에는 전혀 차질이 없었다"고 말했다.
8인분 시켜 10명이 나눠 먹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김영란법 위반 의혹
뉴스타파는 장차관들의 업무추진비 내역을 들여다보다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광화문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사용된 업무추진비다. 이 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점심 메뉴는 1인당 3만4000원짜리. 그런데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는 10명이서 27만2000원, 즉 1인당 평균 2만7200원짜리 밥을 먹은 것으로 돼 있다.
뉴스타파가 식당을 찾아가 실제 주문 내역을 확인한 결과, 전현희 위원장이 주문한 음식은 3만4천원짜리 '들깨 신선로' 8개였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은 언론사 간부에게 1인당 3만 원이 넘는 식사 접대를 금하고 있다. 더구나 김영란법의 소관 부처는 바로 전현희 위원장이 맡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다.
전 위원장은 어느 언론사 기자들을 접대한 걸까? 그의 일정을 확인해보니 이날 오전 11시 30분 서울신문사를 방문한 것으로 돼 있다.
권익위는 서울신문 편집국 간부 3명과 전현희 위원장, 대변인실 직원 2명 등 6명이 한 방에서 식사를 했고, 위원장의 전·현직 수행비서 2명과 권익위 차량 운전기사 2명 등 4명은 식당내 다른 장소에 앉아 식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권익위는 또 3만4000원짜리 메뉴 8인분을 시켜 10명이 나눠 먹은 만큼 김영란법 위반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8인분의 음식을 6명과 4명이 어떻게 나눠 먹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전 위원장이 주문한 메뉴는 각각 시차를 두고 나오는 코스요리로 일부 음식은 1인분씩 서빙되기 때문에 사실상 나눠먹기 어렵다.
○ 기자 : 그럼 (식당에서) 가격을 깎아줬다는 건가요?
● 권익위 관계자 : 그걸 깎아줬다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음식이 넉넉하게 나오기 때문에 기관에서 식사를 하면 저희 부처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런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면 8인분 주문하고 10명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맞춰준다 그렇게 (식당 측에서) 말씀을 하셔 가지고 저희는 했던 거죠.
○ 기자 : 그런데 (운전)기사님들도 식사를 같이 드시나요?
● 권익위 관계자 : 같이 먹을 때도 있고 안 먹을 때도 있는데요. ○ 기자 : 그날은 같이 먹었나요?● 권익위 관계자 : 네네 같이 먹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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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들의 이상한 업무추진비 처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장·차관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면서 성윤모 장관이 지난해 12월 29일 표준정책간담회를 진행하면서 도시락 6개를 28만5000원에 구입했다고 밝혔다. 1인당 4만7500원짜리 도시락을 먹은 셈이다.
그러나 뉴스타파 확인 결과 실제 도시락을 구입한 개수는 6개가 아니라 11개였다.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나머지 5인분의 도시락을 장관실 비서진들이 나눠 먹었다고 해명했다.
불요불급한 식사모임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국무총리의 지시에 아랑곳하지 않는 장·차관들.
코로나19 방역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순 없다.
뉴스타파 황일송 ils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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