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은 대불황, 음식배달은 대호황..코로나가 뒤바꾼 美 요식업계

뉴욕=유재동 특파원 2021. 2. 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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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3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소호 지역에 있는 ‘고스트 키친’을 찾았다. 이곳은 여러 음식점이 한 데 모인 공유 주방으로 식당 내 손님을 받지 않고 배달 영업만 한다. 모두 6개의 음식점이 입점한 이곳에서는 점심시간에 맞춰 요리사들이 손님에게 배달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아침식사 시간에는 모닝러시, 저녁시간에는 디너러시가 있죠. 그 땐 배달물량이 많아져요.”

어번이라는 이름의 책임자에게 하루 얼마나 많은 음식 배달이 이뤄지는지 물었더니 “정확한 숫자는 갖고 있지 않다”면서 “최소 100번 이상은 한다”고만 말했다. 그와 얘기를 나눈 몇 분 동안에도 배달기사 5, 6명이 손님에게 배달할 음식을 픽업하러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했다. 어번은 배달기사들에게 “고객 이름이 누구라고요?”, “아. 아직 준비 안됐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며 바쁘게 응대했다. 한 눈에 봐도 하루에만 수백 번 이상의 배달이 이뤄지는 듯 했다.

어번은 “우리는 음식을 빠르고 따뜻하게 고객에게 배달하는 것을 중시한다”며 “팬데믹이라서 그런지 이런 고스트 키친에 입점하려는 식당 수요도 많다”고 말했다.

이 공유주방은 미국 내에서 음식점 업계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기존의 음식점들은 실내에서 손님을 받지 못해 매출이 줄고, 심한 경우 장사를 접는 일도 많아졌다. 그러자 이들은 고육지책으로 배달 서비스에 눈길을 돌렸다. 이에 따라 작년부터 각종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업체의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다.

하지만 식당들은 배달앱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너무 비싼 나머지 마진이 줄거나 적자를 보는 경우가 발생했다. 고스트 키친이라는 이름의 공유주방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어차피 실내 영업이 어려워진 마당에 식당 내 손님 받는 테이블을 없애고 주방만 설치해서 가게 운영비용을 확 줄일 수 있었다. 다른 레스토랑들도 직접 음식을 찾아가는 손님에게 할인 혜택을 주거나 자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 팬데믹의 산물…음식 배달업의 급성장

뉴욕시 퀸즈 지역에 사는 캐서린 씨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그럽허브, 우버이츠, 도어대시 등 다양한 음식 배달앱이 깔려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맨해튼에 있는 사무실이 폐쇄된 그는 거의 매일을 집에서 근무하면서 이 앱들을 통해 음식을 시켜 먹는다. 그의 배달앱 의존도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야외 식사가 불가능해진 요즘 더 높아졌다.

캐서린 씨는 “배달 수수료와 배달기사 팁이 붙어서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안전하고 편리한 것은 사실”이라며 “레스토랑위크 때도 배달앱을 유용하게 이용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있었던 뉴욕 레스토랑위크는 유명 식당의 메뉴를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행사다.

미국의 음식 배달앱 시장은 이번 팬데믹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분야 중 하나다. 시장조사업체 세컨드 메져(Second Measure)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음식 배달업의 매출은 1년 전보다 138% 급증했다. 미국 전체 소비자의 3분의 1이 넘는 35%가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억 명이 넘는 미국인이 배달앱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최대 배달앱인 도어대시는 지난해 12월 기업공개(IPO)를 통해 34억 달러(약 3조8000억 원)를 조달했고 기업 가치는 390억 달러로 평가됐다. 차량공유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던 우버도 음식배달 분야인 우버이츠의 사업 비중을 점점 높이면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럽허브는 뉴욕(50%)과 보스턴(36%) 등 북동부 지역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들 기업은 팬데믹 국면에서 미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날씨가 춥고 바이러스가 더 확산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그 필요성이 더 커진다. 요즘 맨해튼 거리에는 배달앱 플랫폼 로고가 새겨진 네모난 박스를 뒤에 싣고 다니는 자전거와 스쿠터를 흔히 볼 수 있다. 식당에서 갓 만들어진 음식을 보온 박스에 넣어 고객에게 배달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외출이 줄면서 길거리에선 행인들보다 이런 ‘라이더’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일 때도 있다.

배달 품목도 다양하다. 일반 음식은 물론, 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갖다 주기도 하고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 생활용품을 배달하기도 한다. 성인이라는 증명만 있으면 주류 배달도 된다.

최근에는 음식 배달 외에 장보기를 대신해주는 서비스도 성업 중이다. ‘인스타카트’라는 앱은 일정 수수료를 받고 고객이 주문한 품목을 대형마트 등에서 대신 사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재료 뿐 아니라 해열제 등 상비약이나 사무용품, 생활용품도 배달이 가능하다.

● 배달 수수료 폭리 논란…당국 규제 강화

대세로 떠오른 배달앱 서비스는 그 편리함 만큼 이용자의 불만이나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가장 큰 불만은 배달앱에 지불해야 하는 각종 수수료가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배달앱으로 음식 주문을 하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기자가 우버이츠를 통해 인근 스타벅스에서 5.25달러짜리 카라멜 마키아토 한 잔을 시켰더니, 각종 부대요금이 무더기로 붙어 전체 지불해야 하는 총액은 10.71달러로 불어났다.

서비스 수수료(2달러)와 배달료(0.99달러), 세금(0.47달러)이 더해지고 주문액이 낮아서 소액 주문료 2달러가 더 추가됐다. 여기에 고생하는 배달원에게 팁도 1, 2달러 얹어 주면 커피 한 잔을 배달해 먹는 비용은 12, 13달러 안팎이 된다. 그럽허브 등 다른 배달앱들도 소폭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다.

그런데 고객들이 잘 모르는 사실은 이 배달 수수료를 음식을 시켜먹는 소비자 뿐 아니라 음식점도 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달 대행 수수료와 커미션, 마케팅 비용 등의 명목으로 음식점이 배달업체에 매번 지불하는 돈은 음식값의 최대 20~30%에 이른다. 기존처럼 식당에서 손님을 받을 때보다 매출이 그만큼 깎이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안 그래도 적은 마진으로 힘겹게 버티던 음식점들이 이제 배달앱에 주는 수수료 때문에 적자를 보는 상황도 생긴다. 그럼에도 이들이 배달 영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실상 매출이 ‘제로’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에 배달앱 업체들은 소비자와 음식점을 연결해주는 각종 사업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수수료 부과는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배달앱의 과도한 수수료 부과가 논란이 되자 미국 내 지방정부들은 행동에 나섰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대도시는 음식점으로부터 받는 배달 수수료를 음식값의 최대 15%로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업주의 동의나 별도 계약 없이 식당을 배달앱의 서비스 목록에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규제한 곳도 있다.

규제가 강화되자 일부 배달앱은 식당에서 못 받는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추가로 전가하기 시작했다. 시카고선타임즈 등 지역 언론들에 따르면 한 배달앱은 지난해 말 시카고 의회가 배달 수수료 규제안을 도입하자 주문 당 1.50달러의 ‘시카고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추가로 부과하기 시작했다.

● “트렌드 오래 간다”…공유주방 등으로 각자도생

‘배달 주문을 하시려면 반드시 저희 전용 배달 플랫폼을 이용해주세요. 거기서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뉴욕의 피자체인 모토리노의 홈페이지에 적힌 글이다. 고객들에게 다른 배달앱 말고 자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가게는 “그럽허브를 통해 주문하면 동네 음식점이 아닌 부자 기업만 돕게 된다”며 “곧 여러분을 우리 식당 안에서 모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모토리노는 이와 별도로 대면 또는 전화로 피자를 두 번 주문하면 3번째 피자를 무료로 주는 마케팅도 하고 있다.

‘파이브 냅킨 버거’라는 이름의 뉴욕 식당도 마찬가지다. 이 식당도 공지문을 통해 “어려운 음식점을 위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 하는 고객들이 많다”면서 “당연히 그 해답은 식당에서 직접 주문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직접 주문하면 여러분이 지불하는 돈이 다른 회사로 가지 않고 식당에 그대로 전달된다”며 “우리는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하는 고객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 식당들의 이런 모습은 배달앱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한 자구책이다. 팬데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음식을 팔 때마다 많은 수수료를 내며 ‘적자 영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음식점 체인들은 팬데믹이 촉발한 배달 음식 트렌드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이참에 사업 모델의 과감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멕시칸 음식점으로 유명한 치폴레는 지난해 11월 뉴욕주에 첫 ‘디지털 주방’을 열었다. 실내 식사가 불가능하고 픽업과 배달만 가능하다. 매장 픽업을 원하는 고객은 사전에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로비에서 음식을 찾아가야 한다. 치폴레 측은 “기존 크기의 식당 입점이 불가능한 도시 지역에 더 많은 디지털 주방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욕 소호 지역에 있는 고스트 키친 등 공유주방 업체들도 적은 운영비용과 낮은 진입 장벽 등을 내세워 기존 식당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높은 임차료에 허덕이는 뉴욕의 레스토랑에게는 디지털 식당이나 공유 주방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음식점의 실내 영업이 계속 어려워지면서 ‘고스트 키친’의 개념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관련 시장 규모가 향후 10년 안에 1조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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