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언니 챌린지] 흥이 차오른다..'국악 장인' 고영열의 남도 뱃노래
'흥 파티' 남도 뱃노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내 안의 흥’을 미처 알지 못했다. 수줍음도 모르고 광대가 치솟았다. ‘크로스오버 장인’과 ‘남도 뱃놀이’를 만나자, 끌어오르는 흥을 차마 주체할 수 없었다.
새해는 누구에게나 시작하기 좋은 때다. 우리에겐 우리 민족만의 ‘특권’이 있다. 이미 한 달여 전 새해는 밝았으나, ‘진짜 설’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구정’을 맞는다. 만약 새로운 날들을 위한 계획이 ‘작심삼일’에 그쳤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뱃노래’와 함께다. “앞으로 나갈 일만 있기를 바라는” 고영열 쌤의 염원이 담겼다.
‘고영열의 소리교실’이 다시 시작됐다. 본격적인 수업은 ‘뱃노래’로 열었다. 이날의 고영열 쌤은 ‘1인 다역’을 맡았다. ‘일타강사’였으며, ‘고수’였고, ‘명창’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는 지역마다 각각의 색이 짙게 밴 뱃노래가 이어져왔다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인 경기 뱃노래와 남도 뱃노래. 굿거리 장단에 맞춘 경기뱃노래, 자진모리 장단에 맞춘 남도 뱃노래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처럼 들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어기야 디여차”로 시작해, 장단을 늘인 듯 부르는 것이 경기 뱃노래라면, 남도 뱃노래는 빠르고 경쾌하다. 듣는 순간 마음을 흥이 난다. 고영열 쌤의 선택은 ‘남도 뱃노래’. “흥겹고 힘찬 기운으로 새해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이때만 해도 몰랐던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내 안의 ‘댄스 DNA’.
‘남도 뱃노래’를 부르기 전엔 ‘소리의 기초’ 3부작(‘고영열의 소리교실’ 1편 참고)을 떠올리면 더 쉽다. ‘본청’, ‘농음’, ‘꺾는 음’을 염두해야 한다. 중심이 되는 음을 ‘아아’하고 부른 뒤, 음이 흔드는 ‘농음’을 익히고, 몸을 확 꺾어주며 ‘꺾는 음’을 표현한다는 것을 염두한 뒤 ‘뱃놀이’로 돌입.
가사는 쉽고 간단하다. “어기야 디여차 어이야 디여차/어기야아 어기야아 뱃놀이 가잔다”가 바로 후렴 구간. 문제는 ‘어기야아 어기야’다. 음도 높은 데다 ‘꺾는 음’을 적용하려니 박자가 뒤처졌다. 양악이든 국악이든 음악에 있어선 바보나 다름없었다. 노래엔 재주가 ‘1’도 없는 데다, 내가 내고 있는 소리가 높은지 낮은지도 판단하지 모하는 바보. 고영열 쌤은 “지금 내는 음이 좀 낮은 것 같냐”고 물었지만, 제자는 똑부러진 답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까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잘한다”며 칭찬을 잊지 않았다.
소리의 어려움은 사라지고, ‘흥이 돋는’ 수업이 이어졌다. 이날의 ‘킬포’(킬링 포인트)는 ‘발림’이다 ‘발림’은 딱딱하게 표현하자면, “판소리 창자가 신체를 활용한 몸짓·표정이나 소도구인 부채로 극적인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동작”을 말한다. 이전에는 ‘너름새’라는 용어와도 함께 쓰였으나, 1990년대부터 ‘발림’으로 통일됐다. 너름새라고 할 경우 “무대에서 청중을 웃기고 울리며 판을 이끌어가는 솜씨”를 의미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창자가 발림을 더하면 스스로 흥이 더해진다는 점이다. “노를 젓듯 힘찬” 손동작과 몸동작을 곁들이니 지금 이곳은 더이상 ‘삶의 터전’이 아니었다. 짙푸른 산 아래 이어지는 강줄기 위의 나뭇배이기도 했고, 하늘을 이불 삼아 바다를 침대 삼아 떠있는 조각배이기도 했다. 뭐든 상상하기 나름이었다. K팝 스타들의 군무처럼 어려운 동작이 이어져 특출한 재능을 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내재된 장단 소화 능력이 있다면 더 좋은 동작이 나온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고영열 쌤의 발림과 비교하니 그렇다. 어찌됐건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신이 나 텐션이 올랐다.
“더이상 배우면 치사량 초과”라는 선생님의 배려로 후렴은 제자가, 절 부분은 고영열 쌤이 함께 하는 합창을 이어갔다. 흥에 겨워 한 곡조 뽑아보니 ‘환상의 듀엣’이라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공연해도 될 것 같다”며 선을 넘어봤다. 내내 칭찬을 이어가던 고영열 쌤은 손을 턱으로 가져가며 긁적. “공연할 정도는 아...아니고요...” 단호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지난 여름 첫 수업보다 “실력이 늘었냐”고 여쭈었다. 짧은 순간 고심하듯 다시 한 번 턱으로 손이 올라갔다. “실력보단 흥이 많아졌다”고 했다. 냉정한 평가를 한 번 더 부탁했다. 고영열 쌤의 시선과 손의 위치가 자꾸만 바닥을 향했다. 이날의 점수는 “80점!” 신년음악회를 기대했으나, “신년학예회”로 만족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신 새로운 재능이 발견됐다. “댄서로 영입할게요!” 소속사의 파격 제안이 이어졌다. (기다리고 있다고요 !) ‘흥’이 죽지 않았다. 세상 시름 다 잊을 흥이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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