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 찾은 겨울 철새 귀족 ‘미오새’

한겨레 2021. 2. 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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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겨울 진객 혹고니 44마리가 시화호를 찾아왔다.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시화호 한쪽 귀퉁이 물이 얼지 않은 곳에서 혹고니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청머리오리, 흰비오리, 물닭, 청둥오리가 혹고니 주변을 맴돈다.

그런데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 혹고니 부부가 날개를 반쯤 올린 위협적인 동작으로 다른 혹고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계속해서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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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조용하고 기품 있는 백조…‘미운 오리 새끼’ ’백조의 호수’ 등장하는 친근한 새
시화호를 찾은 혹고니가 우아하고 귀티 나는 모습으로 헤엄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겨울 진객 혹고니 44마리가 시화호를 찾아왔다. 지금껏 시화호에서 관찰된 최대 마릿수다. 1월 15일부터 사흘 동안 이들을 관찰하였다.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시화호 한쪽 귀퉁이 물이 얼지 않은 곳에서 혹고니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큰고니도 함께 있다.

시화호에 이렇게 많은 혹고니가 몰려든 일은 처음이다.
호수 바닥의 매자기 등 수초 뿌리를 캐먹기 위해 자맥질하는 혹고니 옆에서 청머리오리가 먹잇감이 떠올라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혹고니가 자맥질할 수 있는 적당한 수심에 수초가 있다. 겨울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청머리오리, 흰비오리, 물닭, 청둥오리가 혹고니 주변을 맴돈다. 혹고니가 자맥질하며 수초를 뜯어 먹을 때 부유물과 함께 먹잇감이 떠오르는 기회를 오리들이 놓칠 리 없다.

휴식하던 혹고니가 먹이 터로 나가기위해 몸을 풀고 있다.
자맥질하는 혹고니들.

혹고니와 큰고니는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먹이활동을 한다. 가벼운 신경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 혹고니 부부가 날개를 반쯤 올린 위협적인 동작으로 다른 혹고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계속해서 쫓아낸다. 상대를 부리로 물어서 공격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혹고니의 영역 다툼

침입한 다른 무리에 달려든다.
입을 벌려 경고음을 내고 깃털을 부풀려 겁을 준다.
경고가 먹히지 않자 몸으로 밀친다.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깃털을 물어뜯는다.
침입자는 허겁지겁 도망친다.

새끼를 보호하고 더 많은 먹이를 확보하려는 행동이지만 지나칠 정도다. 부부는 새끼 곁을 떠나지 않고 다른 고니들을 멀리 쫓아내는 행동을 온종일 반복한다. 다른 고니들처럼 혹고니도 가족이 길을 잃거나 죽게 되면 슬퍼하며 상대가 살던 곳에 머무는 일도 있다(▶짝 잃은 고니의 ‘애도’에 독일 고속열차가 멈춰 섰다). 혹여 슬픈 상처가 마음에 남아있는 것일까?

깃털을 다듬는 혹고니.
겨울철 깃털 다듬기는 몸을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혹고니가 목을 굽히고 부리를 수면으로 향한 채 우아하게 헤엄을 치는 모습은 독보적이다. 그래서인지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나 차이콥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에도 주인공으로 나올 만큼 사랑받는다.

발레복을 떠올리게 하는 혹고니의 깃털.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고니 중에 혹고니는 가장 무거운 새 중 하나다. 몸길이 151~154㎝, 몸무게는 12~15㎏이나 되는 대형 고니다. 큰고니보다 먹이활동이 왕성하며 하루에 최대 4㎏을 먹는다. 큰 몸집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큰 위협요인이 없으면 잘 날지 않는다. 불필요한 힘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방편이다.

혹고니 부부.

혹고니는 쉰 휘파람소리와 콧소리를 낸다. 다른 고니들처럼 번잡하게 떠들어대지 않는 무척 조용한 새다. 하지만 날 때는 날개 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이동할 때 무리를 사선으로 유지하며 난다. 혹고니가 경쟁자나 침입자에게 하는 대부분의 방어 공격은 큰 ‘쉿쉿’ 소리와 함께 시작되며 소리로 포식자를 쫓을 만하지 않으면 물리적인 공격이 뒤따른다.

혹고니는 큰 부리로 물기도 하지만 날개뼈로 적을 때려 공격한다. 오리 같은 작은 물새들은 부리로 잡아서 끌고 가거나 멀리 던져 버린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혹고니의 큰 날개는 공격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청둥오리는 아예 혹고니 옆에 자리 잡았다. 혹고니가 자맥질 할 때 떠오르는 부산물 때문이다.

혹고니의 번식지는 유럽 중·서부, 몽골, 바이칼 호 동부, 우수리 강 유역이다. 갈대와 해안식물이 무성한 호반이나 하구, 습지의 작은 섬에 갈대, 수초의 뿌리, 가지 등으로 사발 모양의 둥지를 튼다. 5~7개의 알을 낳아 부화시키지만 자라나는 과정에서 천적을 비롯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새끼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다.

깃털이 잿빛인 어린 혹고니.

포란 기간은 35~38일이며 새끼들은 150일 이후에 스스로 독립하여 생활할 수 있다. 성조는 온몸이 흰색이며 부리가 진분홍색이다. 어린 새는 온몸이 회색이고 부리는 검은색이다.

혹고니는 평생 일부일처로 부부의 연을 맺는다. 평균 수명은 28년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의 서단부, 흑해와 마르마라 해, 에게 해, 지중해에 둘러싸인 반도 지역과 북아프리카, 중국 동부, 우리나라에서 월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경포대, 송지호, 화진포에서 소수가 월동하며 드물게 시화호, 영종동, 천수만 부남호, 낙동강하구에서도 발견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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