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野 "초국경" vs 與 "친일적" 논란.. '해저터널' DJ·盧때도 구상했었다

김영주 기자 2021. 2.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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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에 개통한 50.5㎞의 철도 터널인 ‘유로터널’ 입구에서 유로스타 열차가 나오고 있다. AP

- 한일해저터널 공약

韓·日 200㎞ 해저로 잇는 ‘현대판 실크로드’ 10년이상 걸리는 대공사… 정치권·민간 논의만 40년

과거사 문제·정치적 이해관계 걸림돌… 日정부 무관심 “양국관계 리스크 급등, 의기투합 가능성 희박”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일해저터널’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여당이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카드로 부산 민심 잡기에 나서자 야당이 가덕도 신공항에다 한일해저터널 카드를 추가로 얹어 역공에 나서면서다. 한일해저터널은 부산이나 거제도에서 출발해 일본 쓰시마(對馬)섬을 거쳐 일본 규슈(九州) 사가(佐賀)현 가라쓰(唐津)시 또는 후쿠오카(福岡)를 잇는 209∼231㎞의 터널이다.

야당은 가덕도 신공항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 부산이 동북아 최대 물류 허브 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일해저터널은 1980년대부터 논의됐으나 경제성 미달로 지난 40년 가까이 추진되지 못했던 사업이다. 경제성을 차치하고라도 수교 이후 최악의 한·일 관계 속에서 경부고속철도 건설 비용(약 20조 원)보다 최소 5배 정도로 많은 100조 원이 넘게 투입될 사업 추진은 장밋빛 구상에 머무를 수 있다. 야당이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선거용 카드로 내밀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여당의 비판 포인트는 경제성이나 실현 가능성이 아닌 “친일적인 발상”이라는 데 있다. 한국보다는 일본이 거두는 이익이 더 많기 때문에 ‘이적행위’라는 논리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져 오면서 40년 묵은 해저터널 이슈를 둘러싼 이 같은 정치 공방은 더 가열될 전망이다.

◇역대 대통령 단골 메뉴·2011년 정부 “경제성 없다” 일갈에도 민간 연구 지속 = 한·일 민간에서 구상한 한일해저터널은 209∼231㎞로, 일본 북부 세이칸(靑函) 터널(53.9㎞)이나 도버해협의 영불해저터널(50㎞)보다 무려 4배 정도로 길다. 현재까지 해저터널 연구는 양국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이뤄져 왔다. 1981년 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처음 해저터널 구상을 내놓은 직후인 1982년, 일본에선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이 발족해 예비 탐색 터널 공사, 지형조사 실시, 환경 역학조사 등이 진행했다.

한국에서도 1986년 사단법인 한일터널연구회가 설립돼 시추 조사가 이뤄졌다. 해저터널은 역대 한·일 정치 지도자들이 제시한 양국 관계 청사진의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 국회 연설에서 제안했고, 9년 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사업을 거론했다.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연장 선상에서 해저터널을 경의선 복원사업과 연계하려는 구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의 회담에서 사업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서 첫발을 내딛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성 부족이었다. 유럽의 경우 1800년대 초부터 유럽대륙과 영국을 해저터널로 연결하자는 구상이 나왔지만 200년 가까이 실현되지 못했다. 20세기 말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영불 정상 간의 합의에 힘입어 영불해저터널이 건설됐다. 한·일 민간에서는 양국이 세계 최고의 관련 기술력을 갖게 됐고 해저터널 건설을 통해 초국경 경제권을 형성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이 가진 물류 분야의 강점을 일본에 빼앗길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약 100조 원으로 추정되는 건설 비용 중 80∼90%를 일본이 내겠다고 하는 배경엔 가져가는 이익이 크다는 일본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저터널의 일본 종착점으로 거론되는 가라쓰시가 임진왜란 당시 왜구가 출격했던 지역이라는 점이 반일 여론을 자극하는 측면도 무시하기 어렵다. 2018∼2019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이런 논리로 해저터널 반대를 주장하는 청원이 여러 건 올라온 바 있다.

◇국힘 “부산을 부자 도시로 만들 것”vs 민주 “친일·이적행위”vs 日 “일본 큰 관심 없어” = 한일해저터널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오른 것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부산에서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해저터널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언하면서다. 적은 재정 부담으로 생산 부가효과와 고용유발 효과 등 엄청난 경제효과가 기대된다는 김 위원장의 논리를 박형준·이언주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들 모두 지지하고 나섰다. 이 후보는 지난 4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절망에 빠진 부산, 울산, 경남 남부권 지역 경제를 획기적으로 살리고 일자리가 넘쳐나는 번영하는 도시로 만들기 싫으냐?”며 해저터널을 반대하는 여당에 공세를 퍼부었다.

민주당은 해저터널에 ‘친일 프레임’을 씌웠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일 “부산이 일본 규슈 경제권에 편입되면 부산이 단순한 경유지가 된다”며 “(당내) 회의에서 (야당의) 북풍·친일 DNA를 말했더니 참석자들이 전적으로 공감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명나라를 정벌한다는 핑계로 조선 조정에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던 역사가 해저터널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내놓고 있다. 이에 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검토했던 사업”이라고 역공을 취했다.

정작 해저터널에 대한 일본 여론의 관심은 뜨겁지 않다. 9일 일본 외교 소식통은 “일본도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각해 규슈 등 남부 지역은 해저터널에 관심이 있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아니다”라며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려 있기 때문에 일본이 해저터널로 대륙 진출을 꿈꾼다는 주장은 맞지 않고, 일본이 얻는 경제적 이익도 한국에서 나오는 주장처럼 크지 않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무엇보다 최근 위안부 판결로 한·일 관계 리스크가 급등한 상황에서 한·일이 막대한 건설 비용이 투입될 사업을 위해 의기투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단 양국 정부와 국민 간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논해볼 수 있는 사안이라는 이야기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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