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팬' 에 찍히면 서울시장 후보 못되는 與 딱한 현실
"당이 특정 계파에 장악돼 민주주의 사라졌다" 비판 제기돼
[홍영식의 정치판]
‘원조 친문(친문재인)’ 대 ‘민주당 적자.’ 4·7 서울시장 보궐 선거 경선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우상호 후보 간 친문 구애 경쟁이 뜨겁다. 대표와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를 뽑은 2020년 ‘8·29 전당 대회’ 때도 후보들 사이에서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더니 이번에도 영락없다.
왜 그럴까. 우선 제도적인 측면을 보면 민주당 당 경선은 권리당원 50%, 여론 조사 50%를 반영해 후보를 뽑는다. 권리당원은 6개월 이상 당비를 내야 자격이 생긴다. 당비를 내지 않는 일반 당원과 달리 진성 당원이란 뜻이다. 이런 민주당 경선 규칙은 예비 경선에서 당원 20%, 여론 조사 80%를 반영하고 본경선 땐 여론 조사 100%로 당 최종 후보를 뽑는 룰을 정한 국민의힘과는 사뭇 다르다.
이 때문에 민주당 경선에선 권리당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여론 조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지도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반면 권리당원 조사는 조직력에 좌우된다. 경선 때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한 이른바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조직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민주당에선 친문 권리당원의 입김이 도드라지게 세다. 2016년 전당 대회 때 친문 지지를 업은 추미애 후보가 비문(비문재인)의 이종걸 후보를 제치고 대표에 당선되면서 권리당원의 영향력이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문팬(문재인 팬덤)’이 대거 권리당원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문팬’이 장악한 권리당원 잡지 못하면 경선 패배 불 보듯
2020년 ‘8·29 전당 대회’ 때도 권리당원들의 막강 파워를 재확인했다. 정세균계 중도 성향의 비문으로 꼽히는 3선 중진 이원욱 의원은 최고위원 경선에서 대의원 득표율 17.39%를 얻어 1위를 차지했지만 낙선했다. 권리당원 지지를 6.93%밖에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양향자 의원은 대의원 득표율 7.14%로 꼴찌였지만 권리당원 득표율 15.56%를 얻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삼성전자 임원(상무) 출신의 양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직접 영입했다.
국민의힘이 경선에서 일반 여론 조사 반영 비율을 대폭 높인 것과 달리 민주당이 권리당원 비율을 절반으로 그대로 두는 것은 당 여론을 선도하는 이들의 ‘입심·팬심’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4·7 재·보궐 선거’ 경선에 적용할 룰을 정할 때 여론 조사 반영 비율을 좀 높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당 일각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며 “그랬다가는 권리당원의 반발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논의 대상에서 배제했다”고 말했다.
박영선·우상호 후보가 친문 구애 경쟁에 나선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둘 다 ‘성골 친문’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누가 친문과의 거리 좁히기에 성공하느냐가 경선 판도를 좌우할 핵심 요인이다.
박 후보는 2012년 대선 경선 때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의원 멘토 단장을 맡았다. 당시 대선 경선에 나선 문 대통령과 다른 편에 선 것이다. 그 후 박 후보에게 ‘비문’ 딱지가 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친문으로 돌아왔다. 그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유튜브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2012년에는 제가 (문재인) 대통령을 모시고 다녔다.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해단식을 할 때도 펑펑 울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약간 갈등이 있었다. 제가 그때는 문 대통령에 대해 집착하고 있을 때였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래서 삐졌다. 회의에 오라고 하면 잘 안 갔다. 속마음은 (문 대통령이) ‘좀 와라’고 할 줄 알았는데 찾지도 않았다.”
박 후보는 “문 대통령이 2017년(대선 때)에도 저한테 전화를 하셨다”며 “안 받았는데 (만나서) 3시간 동안 섭섭했던 얘기를 했고 (섭섭한 게) 다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원조 친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문 대통령 생일 땐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썼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비문’이 아닌 완전한 ‘친문’으로 거듭났다는 뜻이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박 후보가 문재인 정부 장관(중소벤처기업부)까지 지낸 마당에 비문이라는 얘기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우 후보는 2016년 MBC 라디오에 출연해 당시 비문 진영의 사당화(私黨化) 비판에 대해 “친노도, 친문도 아닌 제가 원내대표로 있는 동안은 적어도 문 전 대표의 사당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19년엔 민주당 지도부의 손금주·이용호 무소속 의원 입당 불허 결정에 대해 “그 근거가 순혈주의로 흐르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130석 미만의 의석수로 개혁 입법 추진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이 우려스럽다. ‘반문연대’에 맞설 개혁연대의 구상을 토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친문 위주의 당 운영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랬던 우 후보도 현재 박 후보에 뒤질세라 ‘친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적자’를 내세우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27일 ‘정책 엑스포 in 서울’ 기조연설에서 자신을 ‘김대중 대통령이 영입한 민주당의 뿌리이자 적자’라고 규정하고 “어떤 위기에도 단 한 번도 민주당을 떠난 적 없이 당을 지켜 왔다”고 했다. 이어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도 역할을 다 했다”며 “문 대통령과 가장 잘 협력할 후보다. 반드시 이 선거를 승리로 만들어 문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 문재인 보유국” “문 대통령과 가장 잘 협력”
지난 1월 30일 온라인 친문 커뮤니티 ‘클리앙’에 ‘안녕하세요. 클리앙 유저 여러분! 국회의원 우상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인사 드리고 싶었는데 글쓰기 제한 규정 때문에 이제서야 인사를 하게 됐다”고 썼다. 또 “서울시장이 되면 문 대통령을 지키는 데 선봉에 서서 여러분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함께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이 경선 때마다 특정 계파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우선 다양성이 사라지면서 경선 흥행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지난 ‘8·29 전당 대회’가 그랬다. 모두 극성 지지층인 ‘문심(文心)’을 잡는 데만 혈안이 되다 보니 후보들 간 역동성 있는 경쟁이 사라지면서 대중의 눈을 잡지 못하는 ‘맥 빠진 경선’이 되고 말았다. 전대가 흥행은커녕 관심과 비전, 후보 간 논쟁이 없는 ‘3무(無) 경선’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특정 계파 의존은 민주주의에도 역행한다. 계파 패권주의가 만연한다면 능력 있는 다양한 후보군 형성이 어렵고 결국 당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심’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민심’과는 멀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인데 특정 ‘팬덤’이 당을 장악해 자신들과 다른 견해가 발 붙이지 못하게 한다면 권의주의 정당과 다를 바 없다. 지도자와 팬덤이 직접적으로 결합해 여론 수렴부터 의사 결정권까지 모두 장악한 정당은 ‘대중 독재’, ‘민중 독재’와 다를 바 없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